[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돌아오지 않기 위해 가는 저 강물을 보아라 돌아오지 않기 위해 가는 저 강물을 보아라 츠르르르촤아— 기슭의 자갈돌을 씻으며 철퍼덕철퍼덕— 서로 엉덩이를 두드리며 돌아오지 않기 위해 가는 저 강물을 보아라 울먹이는 목메임도 명치끝의 쓰라림도 가는 것은 모두가 한 모양새이거니 돌아오지 않기 위해 가는 저 강물을 보아라 어제 같은 오늘도 오늘 같은 래일도 겹치고 또 겹치고 물결과 같은 것 돌아오지 않기 위해 가는 저 강물을 보아라 해설 이 시에서는 “돌아오지 않기 위해 가는 저 강물을 보아라”고 세 번이나 반복하면서 인생무상을 암시했지만 어떤 인생태도를 취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구태여 언급하지 않았다. 이는 읽는 이들의 몫으로 남겨 놓았을 뿐이다. 바로 이처럼 절제의 미가 있기에 이 시는 씹을 맛이 더 있고, 절에서 울려오는 범종(梵钟)소리처럼 더 긴 여운을 끌고 있다. 특히 “돌아오지 않기 위해 가는 /저 강물을 보아라”는 이 제목이 민요의 가락처럼 세 번이나 반복되면서 내 마음속의 공명대를 건드려 놓았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영원한 예술적 매력을 가지고 있는 시들은 바로 인류의 보편적인 공명을 일으킬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나무꾼과 선녀 선녀를 돌려주세요 선녀를 돌려주세요 어림도 없는 말, 제 발로 아니 제 날개로 훨훨 날아간 선녀를 누가 돌려준단 말인가. “하늘의 뜻이었기에 서로를 이해하면서” 이제는 물러 갓 맥주병에 이마가 꽃이 피기 전 네 나무지게를 걷어 안고 썩 꺼져버렸! 이 미련한 놈아! = 해설 이 시는 노래가사 혹은 설화를 패러디한 전형적인 장르 패러디 시이다. 백두산 폭포수 밑에서 선녀를 잃어버린 나무꾼이 나무지게를 걸머지고 천지의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빛보다도 더욱 영롱한 네온등불빛이 명멸하는 용정과 연길의 네거리에 와서 잃어버린 선녀를 찾고 있다. 레스토랑, 나이트클럽, KTV룸살롱, 댄스홀, 커피점, 양고기뀀점, 당나귀고기집, 닭곰집, 국숫집, 개탕집, 좌우간 불빛이 번쩍이는 곳은 다 들여다보았지만 잃어버린 선녀는 없다. 이 시에서 보면 나무꾼이 잃어버린 선녀를 찾아다닌다는 기본 상황은 변함이 없다. 그러나 설화나 노래에서 선녀가 자기가 살던 고향인 하늘이 그리워 날개옷을 찾아 입고 하늘로 날아올라간데 반하여 시의 선녀는 금전과 향락을 위하여 용정과 연길의 번화가에 와버린다. 또 원작의 나무꾼이 동정과 도움을 받아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생각하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이 된다 매일 아침 화장실에 들어가 쭈크리고 앉으면 틀림없는 로댕의 그 자세다 이제 하루 들이켰던 온갖 잡동사니와 온밤 꿈자리를 어수선하게 만들었던 끄나풀 끙 끙 아래로 힘을 줄 때마다 눈앞에서 불이 빈짝반짝 켜지고 한줄기 도통한 기가 숫구멍으로 뻗힌다 “생각하는 사람” 매일 아침마다 그 자세를 하고나면 시원하다 후련하다 오늘 또 그 비여낸것만큼 무엇이 가득차겠지만 “인생은 살기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해설 로댕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은 우람한 근육질의 한 남자가 벌거벗고 바위에 앉아 발은 밑에 모으고 주먹은 입가에 대고 “지옥의 문”우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겨 무겁게 침묵하고있는 모습을 부각시켰다. 이는 고독에 다다른 인간이 자신의 운명에 맞서 명상하고 있는 즉 “생각하는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시적센스가 빠른 시인 석화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자세를 화장실에 들어가 쭈크리고 앉았을 때의 자세로 비틀어놓고 익살과 유머아로 아이러니하게 자기의 기발한 생각을 내비추었다. 그러면 이 시에서의 석화의 생각은 무엇일까? 그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아침에 부르는 처용가 아침 일어나 보니 머리카락 서너 오리 베개 위에 떨어져 있다 이젠 내 두피와 영영 작별한 저 것들을 지금도 내 것이라고 우길 수 있을까 지난겨울 둘러보았던 충남 부여의 고란사와 낙화암과 백마강이 떠오르고 삼천궁녀 꽃 같은 치맛자락이 베개 위에 얼른거린다 백제는 이미 망해 간 곳이 없고 그를 이긴 신라도 사라졌으니 고구려의 높고 낮은 무덤들조차 북국의 차디찬 적설에 묻혀있을 뿐이다 어제까지 내 머리에 붙어 있던 저것들 지난 밤 어수선하던 꿈의 조각들처럼 떨어져가고 흩어져가고 지워져가고 그리고 이제는 모두 잊혀 갈 것인가 “원래는 내 해인데 앗아가니 어찌 하리요." 체조하는 달밤도 아닌데 「처용가」한 가락이 저절로 흥얼거려 진다. 해설 석화의 이 시는 “처용가”를 재치 있게 패러디하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처용가(處容歌)”는 일연(一然)이 편찬한 《삼국유사(三國遺事)》 중의 “처용낭망해사조(處容郞望海寺條)”에 실려 있다. 처용은 헌강왕(憲康王)의 아들이었는데, 왕은 처용에게 미녀를 아내로 주고 그의 마음을 잡아두려고 급간(級干)이라는 벼슬을 주었다. 그런데 역신(疫神)이 처용 처의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천지꽃과 백두산 이른봄이면 진달래가 천지꽃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피어나는 곳이다 사래 긴 밭을 갈면 가끔씩 오랜 옛말이 기와쪼각에 묻어나오고 용드레우물가에 키 높은 버드나무가 늘 푸르다 할아버지는 마을 뒷산에 낮은 언덕으로 누워계시고 햇살이 유리창에 반짝이는 교실에서 우리 아이들은 공부가 한창이다 백두산 이마가 높고 두만강 천리를 흘러 내가 지금 자랑스러운 여기가 연변이다 해설 이 시는 석화의 연작시 “연변”의 머리시로 “연변” 제1번의 부제를 “천지꽃과 백두산”으로 하였다. 연변에서는 진달래를 천지꽃이라 부른다고 한다. 시인이 말하는 연변이란 도대체 어떤 곳인가. “사래 긴 밭을 갈면 가끔씩 / 오랜 옛말이 기와조각에 묻어 나오고 / 룡드레우물가에 / 키 높은 버드나무가 늘 푸른” 곳이다. 이 두 번째 연에서 시인은 연변이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풍습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곳이며, 드높은 기상이 뚜렷이 남아 있는 곳임을 암시하고 있다. 마을 뒷산에는 조상의 뼈가 묻혀 있고 교실에서는 아이들이 한창 공부를 하고 있다. 연변의 과거와 현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제3연에 이어 시인은 4연에 가서 내가 지금 살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편집자말] 연변 토박이로 중국 연변조선족 사이에서 대표적 시인으로 인정받는 석화 시인의 시를 연재한다. 시인은 우리문화신문과 손을 잡을 연변의 인터넷신문 “해란강닷컴” 문학 담당 이사다. 시인의 시는 우리 겨레의 정서와 핏줄이 그대로 뚝뚝 묻어나는 아름다운 노랫말로 가득하다.시인은 연변 토박이말로 시를 쓰지만 한국의 독자들이 이해하기에 전혀 무리 없는 것이라서연재에 주저함이 없었다. 석 화 나는 나를 위해 구슬픈 장송곡 목메게 부르며 나는 나의 무덤을 판다 나는 나의 흙 묻은 괭이를 던지고 나는 나의 안식처 나의 무덤에 드러눕는다 시커먼 구덩이는 구슬픈 기도 읊조리고 서리 찬 기운은 쓰다듬어 안아준다 그러면 내가 무져놓은 흙더미 내 몸을 묻어주고 그러면 무덤은 둥그런 언덕이 된다 그러면 파묻힌 내 몸에서 심장만이 살아 아, 그러면 심장만이 살아서 싹터 오른다 심장은 한그루의 나무가 되여 하늘 찌르며 자란다 그 나무에선 주렁주렁 새 심장들이 가득 열린다. 해 설 이 시는 1982년 4월 20일에 쓰여 1986년 《아리랑》 잡지에 발표되고 이듬해 “아리랑문학상”을 받은 “나의 장례식”의 전문이다. 이 시에서 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