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머님(오희옥 애국지사)은 3주 전, CT촬영시 팔이 골절되는 사고가 발생하여 긴급히 깁스를 해야하는 위급한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지금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다만 호전되기까지는 다소 시간이 걸릴 듯 합니다.” 오희옥 지사님의 아들 김흥태 선생은 이렇게 최근 어머님의 근황을 전했다. 노환에 그러잖아도 기력이 쇠해가는 판에 골절까지 생겨 고생하고 계시는 어머님의 상태를 지켜봐야 하는 가족들의 안타까움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생존해 계시는 유일한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께서 병원 생활을 한 지 올해로 어언 만 5년을 넘기고 이제 다시 새해를 앞둔 지금, 어제(11일)는 모처럼 병원을 찾은 반가운 사람들이 있었다. 오희옥 지사께서 입원 중인 서울중앙보훈병원을 찾은 사람들은 경기도 용인의 영문중학교 강연수 교사와 학생들이다. 이들은 손수 오희옥 지사께 드릴 목공예품 선물 ‘뒤주’와 아름다운 꽃 그리고 호두과자와 정성스런 편지를 써 가지고 와서 오희옥 지사의 쾌유를 빌었다. 코로나19가 해제되긴 했어도 병실 면회는 여전히 금지되어 있는 가운데, 병문안 온 학생들은 오희옥 지사께서 입원해 있는 병실에는 들어가지 못하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는 “평생을 함께하며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부부 독립운동가 문일민(1962년 독립장), 안혜순(2019년 건국포장) 선생을 〈2023년 12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라고 밝혔다. 삶의 동반자이자 부부 모두가 독립운동에 투신해 고난을 함께하며, 가정뿐만 아니라 나라를 되찾기 위한 항일운동을 지속해서 펼친 부부독립운동가들의 굳센 의지와 헌신은 조국 광복을 이뤄낸 귀중한 토대였다. 또한, 부부 가운데 여성독립운동가는 남편과 함께 의열투쟁에 가담하거나 광복군 대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며 임시정부에서는 지도자와 독립운동가들을 살피는 한편, 때로는 남성들과 함께 총을 드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평안남도 출생의 문일민(1894년) 선생은 1919년 3ㆍ1만세운동 당시 만세 시위에 참가한 뒤 그해 7월, 남만주 서간도 지역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여 군사훈련을 받았다. 이후 남만주 독립운동 단체인 한족회에 가입, 평양에 잠입하여 애국청년회의 연락기능과 조직을 강화하고 만주로 복귀했다. 선생은 1919년 대한청년단연합회에 가입하여 별동대 회원으로 활동했다. 아울러 당시 광복군총영에서 서울ㆍ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는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일남 애국지사가 30일(목), 향년 98세로 세상을 떴다고 밝혔다. 이일남 지사는 1942년 6월, 전주사범학교 재학 시에 비밀결사 단체인 「우리회」를 조직하여 항일활동을 하였으며, 독립운동 자금 조달을 목적으로 1945년 1월 충남 금산사방관리소 인부로 취업하고 있다가 들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이후 같은 해 8월, 전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기소되었다가 광복을 맞아 출옥하였다. 정부는 이일남 지사에게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이일남 지사는 30일(목) 저녁 7시, 지병으로 대전성모병원에 입원 중 병세가 악화되어 임종을 맞았으며, 대전성모병원장례식장에 빈소가 마련됐다. 고인은 2일(토) 아침 9시 발인한 뒤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이일남 지사가 세상을 떠서 생존 애국지사는 7명(국내 6명, 나라 밖 1명)만 남게 되었다. 국가보훈부는 고 이일남 지사와 그 유족에게 국민적 예우와 추모를 위해 안장식이 거행되는 오는 2일(토), 세종 본부는 물론 전국 지방보훈관서와 국립묘지, 소속 공공기관에 조기를 게양할 예정이다. 애국지사 추모 조기 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어제(27일) 낮 3시, 서울 여의도 광복회관 3층 대강당에서는 광복회(회장 이종찬)와 국립인천대학교(총장 박종태)간의 뜻깊은 업무협약식이 있었다. 이날 협약식은 발전적인 사업 부분의 협력자로서 ‘미서훈 독립유공자 발굴ㆍ포상신청 및 독립운동사적지 발굴ㆍ연구사업’ 분야에 서로 이바지함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날 협약을 맺기에 앞서 박종태 국립인천대 총장은 인사말에서 “선열들의 숭고한 희생과 독립정신을 받들어 후손들의 민족정기를 되살리고 애국 선양에 힘쓰고 있는 광복회야말로 민족대통합의 선도적 역할을 하고있는 애국과 독립의 상징적인 단체입니다. 한편 국립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는 2023년 11월 현재 4,377명의 미서훈 독립운동가를 발굴하여 국가보훈부에 서훈 신청을 해온 국내 유일의 연구소입니다. 앞으로 미서훈 독립운동가 발굴과 독립운동사적지 발굴사업에 관한 학술적 자료와 연구 등 상호 긴밀한 교류를 통해 발전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이어 이종찬 광복회 회장은 인사말에서 “이번에 광복회와 국립인천대가 업무협약을 할 수 있게 되어 기쁘고 영광스럽습니다. 다년간에 걸쳐 미서훈 독립운동가 발굴에 심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환국(1945년 11월 23일) 78주년을 맞아 나라 밖에서는 처음으로 중국 베이징에서 임시정부의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국가보훈부는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오는 11월 24일(금)부터 2024년 3월 6일까지 중국 베이징에 있는 주중한국문화원에서 ‘환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돌아오다’를 주제로 첫 나라 밖 순회전시회를 연다”라고 밝혔다. 주중한국문화원과 함께 여는 이번 전시회는 지난해 3월 1일 개관한 임시정부기념관의 개관특별전과 대통령기록관(세종시)에서 열린 국내 순회전시를 발전시킨 것으로, 임시정부의 수립과 활동, 임시정부 요인들의 귀국 과정, 그리고 서울운동장에서 성대하게 열렸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개선 전국 환영대회 등과 관련한 유물 63점을 전시한다. 모두 5부로 구성된 전시의 1부는 ‘승리하고 돌아가리라’라는 내용으로 임시정부의 수립과 수반들의 활동을 소개하고, 특히 1940년대 임시정부의 외교와 군사 활동을 전시한다. 주요 전시물로는 2대 국무령 홍진 선생을 소개한 독립신문 192호(1926), 김구 주석의 취임 선서(1944)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일(對日)선전성명서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는 제84주년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워싱턴 회의’를 앞두고 만세 시위를 이끈 양일석 선생(애족장), 국내와 일본을 넘나들며 일본의 천황제와 식민 통치를 정면 비판한 민병구 선생(건국포장), 조선총독부의 황국신민화 정책에 반대하다 옥중 순국한 최인규 선생(애족장) 등 67명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한다. 양일석 선생은 1921년 11월, 전남 목포에서 사립 영흥학교 재학 중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군비 축소 관련 국제회의인 ‘워싱턴 회의’가 열리자, 한국 독립 문제의 상정을 촉구하기 위해 만세 시위를 벌이다 체포되어 징역10월을 선고받았으나, 법정에서 ‘독립운동은 평소 소신’이라고 당당히 밝혀 한인 청년의 넘치는 기개와 독립운동에 대한 변함없는 확신을 보여주었다. 민병구 선생은 1933년 부산에서 동래공립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조선총독부의 민족 차별적 학교 교육에 반대하는 동맹휴교에 참여하다 무기정학을 받았고, 1939년 일본 야마구치 고등학교 재학 중 비밀결사(‘여우회’) 활동으로 체포되는 등 식민지하의 억압적 교육 환경 속에서 국내와 일본을 넘나들며 학생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최인규 선생은 1940년, 강원 삼척군에서 천곡교회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일제강점기, 미국 하와이에서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경제적 후원과 외교 활동 등의 독립운동을 하고, 광복 뒤 세상을 뜬 독립유공자 정두옥 애국지사(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의 주검이 조국을 떠난 지 120년 만에 고국산천으로 돌아온다. 국가보훈부(장관 박민식)는 10일 “제84회 순국선열의 날(11.17.)을 앞두고 조국 독립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 정두옥 애국지사(1889.11.21.~1972.9.9.)와 배우자 이봉아님의 주검을 함께 국내로 봉환해 오는 15일(수) 낮 11시부터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유해 봉환식과 안장식을 거행한다”라고 밝혔다. 유해봉환식에 앞선 13일(월) 아침 9시(현지시간), 미국 하와이 현지에서 호놀룰루 총영사관 주관으로 유족과 교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열리며, 국가보훈부는 정두옥 지사의 유해 봉환을 위해 11일(토) 유해 봉환반을 파견했다. 봉환반은 영현의 반출과 검역 절차 간소화 등 출입국을 지원한다. 정두옥 지사의 주검은 현지 추모식이 끝난 뒤 한국으로 출발해 14일(화)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고국 땅을 밟는다. 국가보훈부는 인천국제공항에서 주검을 영접(18시 40분)한 뒤 국립대전현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는 “중일전쟁 이후 학생비밀결사를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이어간, 서상교(1963년 독립장), 최낙철(1963년 독립장), 신기철(1990년 애족장) 선생을〈2023년 11월의 독립운동가〉로 꼽았다”라고 밝혔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면서 언론ㆍ집회ㆍ출판ㆍ결사가 금지되었으며, 일제의 감시와 탄압, 수탈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학생들은 비밀결사를 결성하여 항일투쟁을 이어가다 모진 시련을 겪기도 했다. 이때의 대표적인 학생독립운동 인물이 서상교ㆍ최낙철ㆍ신기철 선생이었다. 대구 출생의 서상교(1923년) 선생은 대구상업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2년 5월, 김상길ㆍ이상호와 함께 항일비밀결사인 ‘태극단’을 조직, 민족의식을 드높이고 학술 연구, 체력 향상 등의 활동에 나서는 한편, 군사학에도 관심을 두고 관련 서적의 번역, 폭발물 제조에 관해서도 연구하였다. 그러나 주위의 밀고로 단장 이상호가 대구경찰서 고등계 형사에게 체포되었으며, 그의 집에서 태극단 관련 문서가 발견되어 서상교 선생을 비롯한 26명의 단원 모두가 체포되면서 태극단은 와해 되었다. 선생은 1944년 대구지방법원에서 “일본제국의 국시[國是]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국가보훈부는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함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친일파 처단 등 의열활동을 펼친 독립유공자, 이종암(1962년 독립장), 이강훈(1977년 독립장), 엄순봉(1963년 독립장) 선생을 〈2023년 10월의 독립운동가〉로 뽑았다. 대구광역시 출생의 이종암(1896년) 선생은 1918년 2월 만주로 망명했다. 서간도 신흥무관학교에 입학하여 속성과정을 거쳐 1919년 10월 수료했고, 동창생들과 의기투합하여 의열단*을 11월에 창립했다. * 1919년 11월 만주 지린성에서 조직된 항일무력독립운동단체로써 1920년대 일본 고관 암살과 관공서 폭파 등을 펼침 선생은 국내로 밀입국해 최수봉(崔壽鳳, 호적명 최경학, 1963년 독립장)을 만나 폭탄 거사를 제의, 최수봉이 12월 27일 밀양경찰서로 진입해 거사를 성공시킨 뒤 1921년 12월 중국으로 탈출하여 북경의 의열단 본부에 합류했다. 또한, 일본 육군대장 다나카 기이치(田中義一, 경신참변 당시 육군대신)가 상해를 방문한 1922년 3월 28일, 황포탄 부두에서 의열단의 다나카 암살 거사에 참여했으나 실패한 뒤 탈출했다. 선생은 의열단 조직정비 때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열정과 집념의 여인, 이윤옥 교수님이 《동고동락 부부독립운동가 104쌍 이야기》를 펴냈습니다. 제가 열정과 집념의 여인이라고 하니까, 아부성 발언을 한다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교수는 벌써 십수 년 동안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새롭게 조명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작업을 시작하여 첫 작품으로 낸 것이 《서간도에 들꽃 피다》입니다. 그리고 꾸준히 작업을 계속하여 <서간도에 들꽃 피다>는 10권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교수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 《46인의 여성독립운동가를 찾아서》, 《경기의 얼, 여성독립운동가 40인의 삶》, 《여성독립운동가 100분을 위한 헌시》를 냈고, 시화집 《나는 여성독립운동가다》도 냈습니다. 이 정도면 제가 ‘열정과 집념의 여인’이라고 하여도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사실 전에는 ‘독립운동’하면 남성들을 먼저 떠올렸고, 실제 독립운동사도 남성들 위주도 되어있던 것은 부인할 수 없지요. 이교수는 이에 여성독립운동가를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으로 역사학자도 아니면서 이 일에 뛰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