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도미와 아랑. 삼국사기 <도미전>에 나오는 이 부부는 한국 설화에서 가장 애절한 사랑을 보여주는, ‘세기의 한 쌍’이다. 백제 개로왕이 용모가 아름다운 아랑을 보고 욕심이 일어, 남편 도미의 눈을 멀게 하고 강제로 취하려 하자 도망친 아랑이 다시 도미와 해후하여 고구려 땅에서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이 절절한 사랑은 후대의 많은 작가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의 우물이 되었다. 월탄 박종화는 이 설화를 바탕으로 단편소설 ‘아랑의 정조’를 썼고 최인호 작가도 이 소설, 《몽유도원도》를 길어 올렸다. 머리말에서 그는 ‘우리나라 설화 속에서 이와 같이 피처럼 절실하고, 죽음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일찍이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라며 한 편의 고서화를 보는 것 같은 ‘고졸한’ 느낌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머릿말) 나는 《몽유도원도》에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의 설화 중에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하나쯤 빌려와 낡은 고서화를 보는 것 같은 고졸한 느낌의 소설 하나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줄임)… 제목을 ‘몽유도원도’라고 한 것은 조선 세종 때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노닐던 도원경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강효백 경희대 법무대학원 교수가 쓴 《新 경세유표》를 읽었습니다. 강 교수는 대만정치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베이징대학과 중국인민대학 등에서 강의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주대만대표부와 상하이 총영사관을 거쳐 주중국대사관 외교관을 12년 동안 지낸 중국통입니다. 그렇기에 《G2시대 중국법 연구》, 《중국인의 상술》, 《차이니즈 나이트 1ㆍ2》 등의 중국 관련 책들을 냈으며, 이 밖에도 다양한 저술 활동을 하면서 모두 30권의 책을 펴냈습니다. 《新 경세유표》는 올 1월 말에 나온 책입니다. 《경세유표》라면 우리가 잘 알듯이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도중 쓰신 책 아닙니까? 다산은 썩어빠진 조선의 정치, 경제, 사회 체제 등을 어떻게 하면 올바른 방향으로 고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경세유표》를 쓰셨지요. 그러니까 《新 경세유표》라면 강 교수가 현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고민을 하고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쓴 책임을 직감할 수 있겠네요. 강 교수는 책 머리말에서 ‘나는 의문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학문은 세상의 모든 마침표를 물음표로 바꾸는 데서 시작한다고 합니다. 그렇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세상은 생각하는 대로 되지 않습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것이 날아다니려 하고 땅 위에 터전이 없는 것들이 하늘에 집을 지으려 하는 무리가 있습니다. 새롭게 나타난 곤충이냐고요? 아니죠. 생각 없는 이상주의자들입니다. 권력만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건 일시적인 굴종을 끌어낼지는 몰라도 마음이 괴리된 상태에서는 지속성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무식하면서 소신이 있거나 무식하면서 근면하거나 무식하면서 요직에 있다면 재앙을 일으킬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산야에 칡이 참 많습니다. 요즘은 칡을 캐는 사람도 별로 없으니 나름대로 그들은 천국을 이루며 살고 있지요. 그러한 덩굴성 식물도 원칙을 갖고 삽니다. 칡은 오른쪽으로 감으며 자라고 등나무는 왼쪽으로 감으며 성장합니다. 물론 왼쪽과 오른쪽의 구분이 없는 더덕 같은 식물도 존재하지요. 이들 규칙은 자연의 공생과 관련이 있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효율적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찾은 것이지요. 식물도 그러한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는데 권력에 취하여 최소한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며 살아가는 인물들이 있습니다. 헌법 제1조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번 주 월요일은 휴일이었다. 주초부터 휴일? 그것은 하루 전 일요일이 한글날 공휴일이었는데 일요일로 쉬지 못하니 대체해서 휴일을 하나 더 내주었기에 휴일이 된 것이었고 이 때문에 직장인들은 사흘 연휴를 일주일 만에 다시 즐긴 셈이 되었다. 이렇게 연휴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한글날이 공휴일이기 때문이고, 이렇게 한글날을 공휴일로 기리게 된 것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주신 덕택이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자 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세 이런 전차로 어린 백셩이 니르고져 홀베이셔도 마참네 제 뜨들 시러펴디 몯할 노미하니라 내 이랄 윙하야 어엿비 너겨 새로 스믈 여들 짜랄 맹가노니 사람마다 해여 수비니겨 날로 쑤메 뻔한킈 하고져 할 따라미니라 고등학교 시간에 배운 이 훈민정음 서문은 세종대왕이 이 새로운 글자를 만든 뜻을 천명한 것으로 유명하고 아마도 많은 우리 국민은 다 외울 것이다. 정말로 백성들이 서로 의사소통이 잘 안되는 어려운 실정을 풀어주기 위해 새로운 문자체계인 훈민정음을 만든 까닭을 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다만 이 글을 실은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면 맨 뒤에 댱시 예조판서인 정인지가 이 어제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문맹(文盲)이란 글을 해독할 수 없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우리나라의 문맹률은 0%에 가깝습니다. 세종대왕이 만들고 발전시킨 한글의 영향이 크지요. 하지만 글을 읽고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실질 문맹률은 75%에 달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인류 보편 교육이 없었던 시절엔 글을 해독한다는 것이 특권층에만 해당하는 소통 도구였을 것입니다. 유럽에 조각상이 그리 많은 이유는 글을 해독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신화나 종교, 지식을 설명하기 위함이라는 말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불교에서도 윤장대(輪藏臺)가 있습니다. 내부에 경전을 넣어두고 회전할 수 있게 만든 것으로, 한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는 것과 같은 공덕이 쌓인다고 하지요. 이 또한 글을 해독할 수 없는 일반 백성을 위한 도구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글이란 인간의 사고를 시각화해서 생산, 저장, 유통하는 도구입니다. 어쩌면 만국 공통어는 그림입니다. 회화는 그 어떤 언어의 프레임을 씌운 사전 지식이 필요 없으니까요. 훈민정음 창제 당시 최만리 등 많은 신하가 반대합니다. 그 까닭은 한자(漢字)로 된 문화와 예악, 학문 등이 한글로 풀이되면 그 품격이 천박해진다는 논리였지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에 나오는 말처럼, 오래, 그리고 자세히 볼수록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우리 옛집도 그렇다. 한옥 지붕 처마의 유려한 곡선에서, 강건한 주춧돌에서, 야트막한 담장에서 문득, 아름다움을 느낄 때가 있다. 한겨레신문 문화부 기자인 지은이 구본준도 그런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쓴 《별난 기자 본본, 우리 건축에 푹 빠지다》에는 우리 옛집에 대한 애정이 듬뿍 담겨있다. 사실 그도 처음에는 전통 건축을 취재할 계획이 없었다. 그런데 동료 기자가 갑자기 출장을 가면서 동료가 기획해두었던 기사를 얼떨결에 대신 쓰게 됐다. 가끔은 이런 예기치 못한 일이 새로운 세계로 향하는 길이 된다. 지은이는 처음에는 너무나 막막했지만, 신기하게도 건축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우리 옛집이 좋아졌다고 한다. 어느새 우리 옛집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그는 전국을 돌며 취재했고, 발로 뛰며 찾아낸 우리 건축 이야기를 누구나 읽기 쉬운 재밌는 글로 풀어냈다. 이 책에는 한옥에 대해 나름 안다고 생각했던 이들도 ’이건 몰랐을 것 같은‘ 몇 가지 대목이 있다. 우리 옛집에 다시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RE100은 (Renewable Energy 100%)은 기업들이 지구촌의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하여 기업 내에서 쓰는 전력을 모두(100%)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로 공급하겠다는 협약이다. RE100은 영국에 기반을 둔 비영리단체인 ‘더클라이밋그룹(The Climate Group)’이 공동 주관하여 2014년부터 시작한 일종의 사회운동인데, 명목상으로는 구속력이 없다. 또한 이 운동은 연간 100 GWh 이상의 전력을 사용하는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중소기업은 해당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지구촌 기업인 구글, 애플, GM, 이케아, 마이크로소프트, BMW 등 모두 370개의 기업이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어서 그 파급력이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2022년 7월 기준으로 SK계열사, 현대차 계열사 등 21개 기업이 RE100 협약에 가입하였다. RE100을 달성하려면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력 모두를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재생에너지로 조달해야 한다. 기업에서는 직접 재생에너지 발전소를 짓거나, 재생에너지 발전사로부터 전력을 사서 쓰면 된다. 기업으로서는 RE100 협약을 무시할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세상의 모든 음악을 주유한 김진묵 선생님이 《새》라는 수필집을 내셨습니다. 그런데 표지의 제목 옆에는 ‘김진묵 다큐멘터리 에세이’라고 되어 있네요. 지난 30여 년 동안 선생의 삶을 다큐멘터리처럼 펼쳤기에 다큐멘터리 에세이라고 하는군요. 수필집을 펼치니 1982년 5월의 출근길을 잠깐 언급하고는 1988년 5월 아카시아 향기 자욱한 아침부터 다큐멘터리는 펼쳐집니다. 그런데 왜 1988년 5월부터일까요? 이날 선생의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돋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선생은 38살의 나이로 음악잡지 《월간 객석》의 기자가 되어 한창 정력적으로 활동할 때였습니다. 선생은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침 9시’ 이는 지상명령이다. 오랜 세월, 아침 9시를 위해 단잠을 포기하고 허겁지겁 과속을 했다. 충혈된 눈의 눈곱을 찬물로 닦아내고 9시를 향한 질주가 계속되었다. 매일 아침 9시까지 굴러 내린 돌을 정상에 올려놓아야 했다. 파도가 지속적으로 몰려오듯 9시를 향한 질주가 반복되었다.” 저는 김 선생님을 뵐 때마다 ‘자유로운 영혼’을 봅니다. 그런 자유로운 영혼이 매일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생활을 계속하였으니, 마음 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해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달'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달이 바뀌었다고 카톡에 날아오는 계절 축하카드를 뒤로 하고 우리, 곧 나와 집사람은 김밥이랑 물이랑 과일을 배낭에 넣어지고는 버스와 전철을 바꿔타고 멀리 과천 서울대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10시 대공원 입구에는 어린아이들 손을 잡은 젊은 부모들로 벌써 인산인해입니다. 사흘 연휴인 데다가 날씨가 너무 좋고 공기도 깨끗해 마치 5월 초 느낌입니다. 이들을 따라 공원 안으로 들어가면서 우리는 깜짝 놀랐습니다. 근 40년 만에 다시 보는 대공원은 수목이 울창하고 곳곳에 그늘과 쉼터가 있는 아주 좋은 공원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1980년대 초 몇 년 동안 과천의 작은 아파트에서 살 때 어린이였던 두 아들을 데리고 몇 번 온 적이 있는데 근 4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나 다시 보니 서울대공원은 막 개장했던 당시의 썰렁한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풍성한 수목원 같았습니다. 그리고 느티나무 등 몇몇 나무의 잎들은 벌써 가을을 맞는 기쁨을 뺨에 내보이고 있었고요. 동물원 한 가운데를 빙 도는 큰길 바깥쪽으로는 식탁 겸용 야외용 의자들이 많이 마련돼 있어서 어린이들을 동반한 젊은 부부들이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탐할 ‘람(婪)’, 질투할 ‘질(嫉)’, 질투할 ‘투(妬)’, 싫어할 ‘혐(嫌)’, 아첨할 ‘녕(佞)’, 허망할 ‘망(妄)’, 요망할 ‘요(妖)’, 노예 ‘노(奴)’, 기생 ‘기(妓)’, 노는계집 ‘창(娼)’, 간사할 ‘간(奸)’, 매춘부 ‘표(婊)’, 음탕할 ‘표(嫖)’ 여성이 부정적이고 혐오스러운 표현과 결부되어 ‘여(女)’ 자가 부수로 되어있는 한자들입니다. 사람들에게 여성을 경시하는 의식을 심어줄 수 있어서 말입니다. 그것을 고쳐 쓰자는 학자의 주장이 있습니다.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속담에도 그런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여편네 팔자는 뒤웅박 팔자다." "계집은 밖으로 돌면 못 쓰고, 그릇은 밖으로 돌리면 깨진다." "여자와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패야 제맛이다." "계집은 남의 계집이 더 예뻐 보이고, 술은 장모가 따라도 여자가 따라야 제맛이 난다." 이 밖에도 한자를 파자(破字)하면 의미가 선명해지는 글자도 있지요. 의미라는 것이 비하의 생각을 담고 있는 게 문제이긴 합니다. 아내 ‘처(妻)’ 자는 의복을 짓는 여자를, 아내 ‘부(婦)’ 자는 청소하는 여자를, 계집 ‘첩(妾)’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