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의 구성원을 무생물, 식물, 동물, 그리고 인간으로 분류하였다. 그에 따르면 무생물이라는 질료(형식을 갖춤으로써 비로소 일정한 것으로 되는 재료)에 나서 자라고 번식의 능력을 갖춘 것이 식물이다. 식물의 속성에 추가로 운동과 감각의 능력을 갖춘 것이 동물이고, 동물의 속성에 이성을 추가로 갖춘 것이 인간이다. 인간을 식물이나 동물보다 높은 차원의 존재로 보는 이러한 자연관은 인간의 자존심을 만족시켰다. 이러한 자연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제자이며 서양 철학의 원조 격인 플라톤을 거치고, 신약성서의 서간문들을 쓴 바울을 통하여 기독교에 흡수되었다. 유태교에서 비롯된 기독교에서는 인간은 하느님의 형상을 닮은 영혼을 가졌기 때문에 강과 산은 물론, 다른 동물과 식물과는 질적으로 구별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기독교 사상은 오랫동안 서양인의 자연관을 지배했다. 현대의 환경위기가 기독교의 잘못된 자연관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매우 도전적인 견해가 미국의 역사학자인 화이트(L. White) 교수에 의해 1967년 Science 지에 발표되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본래 유럽 사람들은 물활론(세상 만물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지난 주말 광화문에서 명동 쪽으로 사람을 만나러 가기 위해 서울시청 앞을 가로질러 광장 쪽으로 가는데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보인다. 그런데 보통 때 이정도 사람이면 뭔가 확성기에 소리가 크게 들릴 텐데 무척 조용하다. 광장에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뭔가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고, 등 뒤쪽으로는 대부분 양산을 쓰고 있다. 비스듬히 누워있는 이들, 가까이 가 보니 아빠 엄마와 같이 있는 자녀들이 책을 들고 보고 있고 혹은 혼자서 책을 보는 젊은이들도 꽤 있다. 바닥에 깔고 있는 것은 쿠션 겸 의자로 쓸 수 있는 간이의자라고나 할까, 잔디가 말끔하게 입혀진 광장 바닥 위로 이렇게 붉은색, 주황색, 노란색, 자주색 우산과 쿠션이 멋진 그림을 이루고 있었다. 둘러보니 저쪽에 안내판이 있다. 이것이 서울시에서 주최하는 '책 읽는 서울광장'이란 행사의 하나로 주말, 곧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만 열리는 '열린 도서관' 행사임을 알겠다, 서울도서관과 함께 광장을 야외 도서관으로 꾸며 시민들이 광장에서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한 것이란다. 편안하게 책을 볼 수 있도록 쿠션 겸 좌석을 빌려주고 양산도 빌려준다. 광장 아무 데나 자리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13) 1923년, 마침내 내가 완성됐어. 멋지고 당당한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지. 산 아래 마을 사람들도, 서울에 사는 외국인들도 나를 구경하러 왔단다. 메리는 내게 ‘딜쿠샤’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어.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을 뜻한다 하더구나. 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번지, 아주 특별한 집이 한 채 있었다. 누가 지었는지, 언제 지었는지, 왜 지었는지 베일에 싸여 있던 곳. 사람들은 그곳을 광복 뒤 보금자리로, 전쟁 중 피난처로, 전쟁 뒤 공동주택으로 썼다. 태풍에 무너질 뻔하고 화재로 불에 탈 위기도 있었지만, 이 은행나무 아래 집은 행촌동 언덕 위에서 거의 100년을 버텼다. 이 책 《딜쿠샤의 추억(서울시 종로구 행촌동 1번지 아주 특별한 집)》은 2017년 8월 8일, 등록문화재 제687호로 공식 등록되어 2021년 시민들에게 개방된 ‘딜쿠샤’에 얽힌 이야기를 담고 있다. 독립문역에서 약 10분만 가면 쉬 닿을 수 있는 이 저택은, 그 이국적인 이름만으로도 무한한 추측과 신비를 자아낸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을 뜻하는 ‘딜쿠샤’는 주인을 잃은 뒤, 오랫동안 진짜 이름은 잊힌 채 ‘붉은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당신 불교도입니까?” 이런 질문은 다소 좀 그렇고, “당신도 불자지요?” 이렇게 물으면 “네 그렇습니다만”이라고는 답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서 무슨 교도니 아니니 하고 상대방에게 물어보는 것 자체가 거북스러운 것은, “무슨 무슨 교도”라는 말에 굳이 종교를 구분하고 누구의 신앙이니 아니니 하고 따지려는 생각이 깔려있다는 느낌 때문이리라. 그저 신앙이라는 말, 믿음이라는 말도 그렇지만, 종교라는 것은, 불교건 기독교건(개신교이건 카톨릭이건), 그저 죽자 살자 매달리는 무슨 이념이 아니라,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도 마음에 평안을 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일상의 공기, 혹은 목이 마를 때의 시원한 물이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종교마다 축일이나 기념일이 되면 그 종교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그러한 평안을 받게 되는 것이리라. 이달 5월에는 8일이 부처님 오신 날이고 또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는 날이었다. 이렇게 딱 겹친 것은, 지금까지 몇십 년 삶을 살아오면서 처음 만난 것 같다. 그것이 뭐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도, 그만큼 드문 일이었다고 하겠는데, 부모님 은혜를 생각하는 일과는 별도로 그즈음에 나는 우연히 경기도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흔히 ‘부자 3대 못 간다’라는 말이 있다. 대를 이어 부를 지키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재산도 일정 수준 이상이 되면 지키는 것 자체가 일이다. 관리해야 할 것도, 신경을 써야 할 것도 많다. 그래서 300년 이상 ‘재벌가’로 부를 이어간 가문을 보면, 응당 그 비결이 궁금해진다. 18세기부터 20세기까지, 무려 300년 동안 만석꾼으로 이름을 떨친 ‘경주 최부잣집’은 그 어려운 일을 해냈다. 임금이 바뀌면 멸문지화를 당하기도 하던 시절, 굳건한 처세와 대를 잇는 철학으로 무려 12대 300년 동안 부를 지켜냈을 뿐만 아니라, ‘사방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는’ 나눔의 정신으로 조선 최고의 ‘적선지가(積善之家)’가 되었다.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 必有餘慶)’이라 했던가. 덕을 쌓은 집안에 복이 있듯, 최부잣집은 부를 베풀수록 나날이 번성했다. 부를 베풀고, 민심을 얻고, 그 민심이 더 큰 부를 불러들이는 부의 선순환. 그것이 바로 최부잣집 300년 부의 비밀이었다. 이 책, 《명가-나눔을 실천한 최부잣집》은 그 부의 비밀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최부잣집을 소재로 2010년 방영한 사극 《명가》를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全身四十年前累(전신사십년전루) 온몸에 사십년 동안 쌓인 찌꺼기를 千斛淸淵洗盡休(천곡청연세진휴) 천 섬 되는 맑은 물에 씻어 버리리 塵土倘能生五內(진토당능생오내) 그래도 티끌이 오장에 생긴다면 直今刳腹付歸流(직금고복부귀류) 당장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리 남명 조식(南冥 曹植. 1501~1572) 선생이 1549년에 제자들과 거창 신원면의 감악산을 유람할 때 지은 시라고 합니다. 남명은 감악산 계곡물에 들어가 몸을 씻으며 이 시를 지었다고 하지요. 조선의 양반이 홀라당 벗고 계곡물에 들어가지는 않았을 것 같고, 아마 탁족(濯足) 곧 물에 발을 담그고 이 시를 짓지 않았을까요? 남명은 16세기 조선의 대유학자입니다. 그런데 그런 유학자가 티끌이 오장에 생긴다면 당장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다니요! 그만큼 자신의 의지를 강조하는 것이겠지만, 유학자의 시치고는 좀 과격하지 않나요? 그러나 항상 은장도 같은 칼을 갖고 다니면서 때로는 칼끝을 턱 밑에 괴고 혼미한 정신을 일깨우기까지 하며, 또 자신이 나태해지는 것을 경계하고자 옷깃에 성성자(惺惺子)라는 방울도 달고 다녔던 남명이라면 능히 이런 시를 지을 만하다고 하겠습니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혜민 스님은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란 책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몸이든 마음이든 비우면 시원하고 편안해집니다. 반대로 안에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으면 몸이든 마음이든 병이 납니다. 뭐든 비워야 좋습니다." 삶이 곤고할 때는 바다에 가 보는 것이 좋습니다. 바다는 왜 바다일까요? 일설에 의하면 모든 것을 다 받아주기 때문에 바다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낮은 위치에 있으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넓어졌다는 말씀도 있지요. 어쩌면 자신을 비워내고 비워내어 낮추고 낮춤이 거대한 채움으로 돌아왔는지도 모릅니다. 채움은 생득적인 것입니다.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을 욕구가 충족될 때까지 채우고 또 채우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니까요. 그것이 심화하면 필요 이상으로 쌓아놓고도 갈증을 풀지 못합니다. 우리 몸도 채움을 기본으로 하고 있습니다. 일단 먹는 행위를 통하여 들어온 물질은 몸 밖으로 잘 내보내지 않지요. 잘못 단백질을 내보내면 단백뇨, 당을 내보내면 당뇨가 되는 것이니까요. 자연에서는 언제 굶주림이 찾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비축을 하려는 경향이 있으니 이것이 결국 비만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 그러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요즘 필자가 매일 아침 올라가는 북한산 둘레길 8구간은 꽃잔치다. 초봄처럼 잎이 없는 꽃들이 아니라 잎이 무성한 가운데 피는 꽃이고, 그 가운데 대표가 아카시다. 꽃다리마다 층층이 꽃줄이 있고 그 줄마다 꽃들이 활짝 피어났는데, 우유빛 뽀얀 색깔만이 아니라 거기서 나오는 진한 향기에 길 가는 사람들의 취각이 마비되는 듯, 감탄사를 연발한다. 사실 필자는 일 년 가운데 아카시 꽃향기가 바람에 날리는 이때가 가장 싫다. 왜냐하면 냄새를 잘 구분 못 하는 취약(臭弱)이란 정체가 탄로 나기 때문이다. 아주 유명한 조리사 가운데 냄새를 잘 못 맡는 분이 있다는 것은 제법 알려졌지만, 필자도 이미 예전 파주 쪽에 살던 2000년 초 요맘때 출근길에 아카시 냄새를 맡니 못 맡니 하면서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있기에 새삼 겁날 것은 없지만 그래도 남들이 다 맡는 냄새를 제대로 못 맡으면서 냄새가 어쩌니저쩌니 하는 것이 부끄럽고 민망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만발한 아카시 꽃을 보면서 예전처럼 벌들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지 못했다. 이 정도 만발하면 벌들이 날갯짓하면서 이 맛있는 꽃의 꿀을 따야 할 터인데 그게 없더라는 것이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유년 시절 앞산의 오솔길을 지게를 지고 참 많이도 올랐습니다. 무언가 산에서 지고 내려온 기억은 많아도 지고 올라간 기억은 없습니다. 그건 산이 꾸준히 우리에게 무언가를 베풀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삶이 곤고하고 세상에 찌들었을 때 산에 올라보세요. 푸르름의 위로를 한껏 받을 수 있는 산은 위대함 자체여서 귀를 열면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자연의 맑은 음이 내장까지 시원하게 해 주고 하늘과 맞닿은 능선에 걸친 하늘과 구름이 세속의 찌든 때를 정갈하게 씻어주니까요. 산은 그대로 녹색 댐입니다. 우리나라로 국한하더라도 소양강 댐 10개에 버금가는 물 저장 기능이 있고 또한 그들이 광합성으로 생산한 산소는 1억 명 이상이 숨 쉴 수 있는 대단한 양이니 그 혜택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철마다 아름다운 들꽃으로 그리고 산야초와 나물, 각종 열매로 식탁의 풍성함을 주는 산이야말로 무진장입니다. 일망무제의 너름 속에서 두 팔을 벌려 탁 트인 맑은 기운을 호흡하면 새처럼 날지는 못할지라도 인간사 번뇌를 뛰어넘는 호연지기를 맛볼 수 있으니 그 또한 감사함입니다. 눈을 감아도 푸르름이 보이고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맑은소리가 들리는 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올리버 R. 에비슨의 제중원 운영 방침> 낼 수 없는 환자라도 진찰을 거부하지 않는다. 거치지 않고, 한국어를 배워서 직접 환자를 진찰한다. 모두 청결한 입원실로 만들어 되도록 많은 환자를 수용한다. 넉넉히 준비해 모든 종류의 수술이 가능하게 한다. 오늘날 전 세계가 찬탄해 마지않는 한국의 눈부신 의료기술. 의료관광을 오는 외국인이 많을 만큼 한국의 의학 수준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런 눈부신 성과도, 그 출발은 지극히 미미한 씨앗 한 톨이었다. 넓은 마당에 덩그러니 세워진 한옥 한 채, 그것이 전부였다. 그런 척박한 땅에 의술의 씨앗을 뿌리고 가꾼 이는 바로,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의사 올리버 R. 에비슨이다. 그는 캐나다에서의 안정된 의과대학 교수 생활을 뒤로하고, 캐나다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의료환경이 열악했던 조선 땅으로 왔다. 기본적인 의료 혜택조차 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수많은 조선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용기 있는 결정이었다. 이 책 《한국 최초의 의사를 만든 의사 올리버 R. 에비슨》은 슈바이처는 알아도 에비슨은 모르는 많은 사람에게, 150여 년 전 한국에 와서 수많은 생명을 구하고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