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갠 뒤, 쏟아지는 겨울 햇살이 유난히 반가운 날입니다. 비록 바람은 차갑지만 이렇게 햇살 좋은 날, 낮밥(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아, 일광욕 좀 하니까 살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나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일광욕(日光浴)’이라는 한자말은 어딘가 병원에서 처방받은 치료법 같은 딱딱한 느낌을 줍니다. 이럴 때, 햇살의 따스함과 마음의 여유를 모두 담아 ‘볕바라기’라고 해보는 건 어떨까요? ‘볕바라기’는 말 그대로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볕을 쬐는 일’을 뜻합니다. 그저 햇볕을 쐬는 움직임이 아니라, 볕을 간절히 바라고 즐기는 마음이 담긴 말입니다. 춥고 움츠러드는 겨울, 따뜻한 양지를 찾아 잠시 멈춰 서는 그 순간의 나른한 행복을 이보다 잘 표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비슷한 말로는 우리에게 꽃 이름으로 더 익숙한 ‘해바라기’가 있습니다. 사실 해바라기는 꽃뿐만 아니라 ‘추울 때 양지바른 곳에 나와 햇볕을 쬐는 일’을 뜻하기도 합니다. 소설가 황순원은 그의 작품 <목넘이 마을의 개>에서 이 모습을 이렇게 그렸습니다. “신둥이는 방앗간으로 돌아오자 볕 잘 드는 목에 엎드려 해바라기를 시작했다.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하고 두 달이 지난 1444년(세종 26년) 2월에 최만리를 비롯해 신석조, 김문, 정창손, 하위지, 송처검, 조근 등이 한글을 반대하는 상소문을 올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들은 한글 창제는 중국을 떠받드는 사대주의에 어긋나는 일이며, 학문에 정진하는 데 한글이 손해를 끼치며, 억울한 죄인이 생기는 것은 죄인을 다루는 관리들이 공정하지 못한 탓이지 죄인들이 문자를 몰라서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세종대왕은 중국의 것을 따를 것은 따르되 우리의 것을 지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말했고,, 한글 창제는 학문만을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이 편안하게 쓰는 데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렇게 세종대왕은 신하들을 설득해 더욱더 철저하게 한글 반포를 준비했다. The Officials Petition Against Hangeul Two months after King Sejong the Great created Hangeul, in February 1444 (the 26th year of Sejong’s reign), an incident occurred where officials, including Choi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서도소리의 중심 영역인, <산타령>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산타령의 첫 구성 악곡인 <놀량>은 첫 곡으로 느리게 시작하면서 차차 빨라지는 앞산타령의 <사거리>, 뒷산타령의 <중거리>, 자진산타령의 <경발림> 순으로 이어간 다음, 그 뒤로 잘 알려진 민요조의 노래도 덧붙여 부른다는 점, 구성 악곡의 이름이나 순서는 경기 지방과 같거나 비슷하지만, 창법이나 노랫말, 악곡의 전개 형태, 표현 방법, 시김새 등등은 서로 달라 상호 비교가 되고 있다는 점, 등을 소개하였다. 앞에서도 지적한 바와 같이, 경기 지방의 <산타령>은 현재 무형의 유산으로 지정된 상태여서 국가의 지원으로 전승이 이루어지고 있으나, 서도(西道)입창은 전문 소리꾼들에 의해 겨우 단절의 위기만을 모면해 가는 실정이다. 평소, 글쓴이는 <산타령>과 같은 합창 음악은 다른 일반 민요와는 달리, 가사의 내용이 매우 건전할 뿐 아니라, 국내 곳곳의 명산(名山)이나 강(江)의 이름, 인물의 소개 등, 상식이 풍부한 지역의 특징들을 주 내용으로 삼고 있어서 학생들의 음악과 일반 상식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한해 가운데 가장 춥다는 한추위, '대한(大寒)'이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문을 나서기가 무섭게 찬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요즘입니다. 날마다 '강력한 한파'가 닥쳤다는 기별이 이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혹시 지난 좀추위, 소한(小寒) 무렵, 제가 알려드렸던 ‘맵차다’라는 말을 기억하시는지요? 옹골지게 매섭고 ‘차가운’ 기운을 뜻하는 말이었지요. 소한의 추위가 몸을 꽁꽁 얼리는 ‘맵찬’ 느낌이었다면, 바람이 강하게 부는 오늘 같은 날씨에는 ‘맵짜다’는 말이 참 잘 어울립니다. 비슷하게 들리지만, ‘맵짜다’에는 ‘차다(Cold)’가 아닌 ‘짜다(Salty)’의 느낌이 배어 있습니다. 본디 맛이 맵고 짤 때 쓰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람이 맵짜다”라고 하면, 단순히 기온이 낮은 것을 넘어 바람 끝이 고춧가루처럼 매섭게 살을 쏘고, 소금기처럼 쓰라리게 스친다는 뜻이 됩니다. ‘맵차다’가 추위에 몸이 굳는 느낌이라면, ‘맵짜다’는 바람에 살갗이 아린 느낌이랄까요.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는 추위의 느낌조차 이토록 꼼꼼하게 혀끝의 느낌으로 가려 불렀던 것입니다. 이 말이 우리 마음을 끄는 까닭은 그 속에 '단단함'이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곳에 따라 내리던 비나 눈이 그치고 하늘이 갤거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밖으로 나선 분들은 마냥 맑은 하늘을 반기기 어려우실도 있을 것 같습니다. 된바람과 함께 추위가 몰려 올 거라는 기별이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날씨를 두고 "비 온 뒤에 기온이 뚝 떨어진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저 '춥다'는 말로는 궂은 날씨가 떠난 자리에 휑하니 불어오는 이 바람의 헛헛함과 매서움을 다 담아내기 어렵습니다. 이럴 때, 그냥 춥다는 말을 갈음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쓰시던 좀 다른 느낌의 '비거스렁이'라는 말을 꺼내 봅니다. '비거스렁이'는 '비가 갠 뒤에 바람이 불고 기온이 낮아지는 현상'을 뜻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생각을 하나 더해봅니다. 비 온 뒤가 '비거스렁이'라면, 눈 온 뒤는 '눈거스렁이'라고 불러보면 어떨까요? 비록 아직 사전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비' 자리에 '눈'만 갈아 끼우면 얼마든지 만들어 쓸 수 있는 것이 우리말의 말맛입니다. 비든 눈이든 떠난 뒤끝이 매서운 건 매한가지니까요. 이 말들이 우리 마음을 끄는 까닭은 그 말이 주는 야릇한 '까칠함'에 있습니다. 고분고분 물러가지 않고 무언가를
[우리문화신문=김슬옹 교수] 지난해 우리 곁을 떠나신 이무성 화백님은 참 특별한 분이셨습니다. 대도레코드사에서 우리 대중음악 발전에 이바지하시다가, 은퇴 뒤 <우리문화신문>을 통해 붓을 드시고 그 붓끝으로 한글의 역사와 한국문화, 그리고 여성독립운동가를 되살려내셨습니다. 특히 2015년 광화문 《한글창제 28사건》 전시, 2019년 《한글을 빛낸 여성 19인》 전시, 2020년 서울도서관 외벽을 수놓은 《훈민정음 해례본 이야기》까지 아무도 하지 못했던 한글의 역사를 그림으로 풀어내신 일을 하신 것입니다. 그 이무성 화백님은 한글 역사의 완성판 《그림으로 보는 한글 역사 28》 끝내놓고도 빛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을 뜨셨습니다. 올해는 한글 반포 580돌, 한글날 제정 100돌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화백님께서 평생 빛내고자 하셨던 한글의 역사를 기리는 이 특별한 해에, <우리문화신문>은 김슬옹ㆍ김응의 글과 함께 화백님의 유작 《그림으로 보는 한글 역사 28》을 추모 연재로 선보입니다. (편집자 말씀) 조선 제4대 임금 세종대왕은 1443년(세종 25년) 음력 12월에, 초성 17자, 중성 11자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이제까지 서도소리 가운데 주로 앉아서 부르는 좌창(坐唱)과 관련한 노래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해 왔다. 특히, 지난주에는 “긴 시간 잊을 수 없는 꿈같은 마음”이란 뜻을 지닌 <장한몽(長恨夢)>이란 좌창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 노래는 남녀 간의 혼인 문제를 다룬 신파조(新派調)의 이야기로, 일제 강점기 《금색야차(金色夜叉)》라는 소설을 모방한 작품이란 점, 처음엔 창가(唱歌) 식의 형태였다가 서도(西道)의 좌창(坐唱) 형식으로 불러왔는데, 그 내용은 이수일과 심순애의 비련(悲戀)을 그려나가는 작품으로 물질적 값어치에 대항할 수 있는 사랑의 힘이, 바로 그 중심 주제라는 점을 얘기했다. 또 이 작품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타고, 개작(改作)되어 신파(新派)극의 대명사가 되었고, 또한 그것이 서도소리에도 영향을 주었다는 점, 이 노래는 무정형(無定形)의 절주라든가, 높은 음역의 가락들과 함께 극적(劇的)인 표현이 특이하고, 그 위에 특징적 시김새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어서 그 처리가 독특하다는 점도 덧붙였다. 알려진 바와 같이, 서도소리의 영역에는 앉아서 부르는 좌창(坐唱)이 있는가 하면, 서서 부르는 입창(立唱)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오늘의 날씨를 보니 온 나라가 대체로 맑지만, 충청과 호남, 제주 하늘빛이 밝지 않다고 합니다. 빗방울이 떨어지거나 눈이 날릴 수도 있다고 하네요. 우리는 흔히 이런 날씨를 보고 "날이 흐리다"거나 "우중충하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빗방울을 잔뜩 머금어 무겁게 내려앉은 저 하늘을 그저 '흐리다'는 납작한 말로 나타내기엔, 그 안에 담긴 긴장감과 분위기가 다 담기지 않아 아쉽습니다. 이럴 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하늘을 올려다보며 쓰시던 말 '끄느름하다'를 꺼내 봅니다. '끄느름하다'는 '날이 흐리어 어둠침침하다'는 뜻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이 말이 품고 있는 '기다림'의 정서입니다. '흐림'이 멈춰 있는 상태라면, '끄느름함'은 하늘이 참다 참다 곧 눈물을 터뜨릴 것만 같은, 어떤 일이 일어나기 바로 앞의 아슬아슬한 순간을 붙든 말입니다. 또한 이 말에는 '햇볕, 장작불 따위가 약하다'는 뜻도 있습니다. 구름 사이로 힘없이 비치는 옅은 햇살을 볼 때도 쓸 수 있고, 잘 타지 않는 장작불을 볼 때도 쓸 수 있지요. 오늘 창밖이 끄느름하다면, 그것은 하늘이 찌푸린 게 아니라 땅을 적시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는 것일지 모릅니다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소비자 가전 전시회(CES) 소식을 또 들었습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이제 우리 일상 깊숙이 들어왔음을 똑똑히 볼 수 있었습니다. 뉴스에서는 이를 두고 '새로운 시대의 시발점(始發點)'이라거나 '혁신의 계기(契機)'가 마련되었다고 말하더군요. 하지만 그 커다란 흐름을 그저 '시작되었다'거나 '계기가 되었다'는 딱딱한 한자어로 나타내고 말기에는 어딘가 아쉬웠습니다. 막막하던 미래가 뻥 뚫리는 듯한 그 벅찬 느낌을 설명하기엔 많이 모자라게 느껴졌다는 것이지요. 이럴 때, 우리네 농부들이 논둑에서 쓰던 토박이말 '물꼬'를 떠올려 봅니다. '물꼬'는 '논에 물이 넘나들도록 만들어 놓은 좁은 통로'를 뜻합니다. '논꼬'라도도 하며 '진전이 없거나 막혀 있는 상태를 푸는 실마리나 계기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많이 쓰지요. 재미있는 것은 이 말 속에 들어있는 생명력 넘치는 심상입니다. '시발점'이 기계가 움직이도록 단추를 누르는 듯한 차가운 시작이라면, '물꼬'는 막혀 있던 논둑을 허물어 메마른 땅에 생명의 물이 콸콸 쏟아져 들어오게 해 목마름을 가시게 해 주는 뜨거운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인공지능(AI)
[우리문화신문=이창수 기자] 추운 겨울, 밖의 찬 공기와 맞닿은 유리창을 보면 하얗게 얼어붙은 무늬들을 보곤 합니다. 과학 시간에는 '수증기의 승화'나 '결빙' 현상이라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그 꼼꼼하고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그저 '유리창에 성에가 끼었다'거나 '얼음이 얼었다'는 말로 퉁치기에는 어딘가 아쉽습니다. 붓으로 세밀하게 그리기도 어려울 듯한 그 모습을 설명하기엔 많이 모자라게 느껴집니다. 이럴 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쓰시던 토박이말 '서리꽃'을 떠올려 봅니다. '서리꽃'은 '유리창 따위에 서린 김이 얼어서 꽃처럼 엉긴 무늬'를 뜻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말 속에 들어있는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지만 말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꽃은 따뜻한 햇살과 부드러운 흙이 키워내지만, 이 꽃만큼은 가장 맵찬 추위와 딱딱한 유리가 키워낸다는 점입니다. "창문에 성에가 잔뜩 꼈네, 춥겠다"라는 걱정 섞인 말보다, "밤새 창문에 서리꽃이 활짝 피었네"라고 말할 때, 우리는 비로소 삭막한 겨울 풍경 속에서도 숨겨진 아름다움을 느끼게 됩니다. '결빙'이나 '응결'이 과학의 언어라면, '서리꽃'은 차가운 현실조차 시로 승화시켰던 우리네 삶의 말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