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명창이나 광대라도, 사회적 지위는 낮아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춘원 이광수(李光洙)의 궁정의 악공(樂工)과 민간의 광대(廣大)들이야말로 민족음악이란 유산을 전해 온 공로자들이라는 이야기, 사회는 광대 예술의 진가를 모르고, 또 광대는 자기의 품격을 보전하려는 자각과 수양이 부족하다는 《조선창극사》의 저자, 상곡의 이야기, 그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오늘을 미루어 100년 전 상황을 되돌려 보는 듯하여 더욱 안타깝다는 이야기했다. 금주에는 ‘파농(跛聾)’을 쓴 김명식(金明植)의 이야기다. 그는 일본 와세다 대학을 졸업한 사람으로 유학 기간에, 아시아 지역의 피압박 국가 청년들로 구성된 국제적 반일단체인 <신아 동맹단>에서 활동하다가 귀국하였다. 그는 동아일보에서 기자 생활을 하던 중, 필화(筆禍)사건에 연루되어 함흥형무소에서 복역하였는데, 이때 얻은 휴유증으로 인해 평생 장애를 안고 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쓴 《조선창극사》 서문(序文) 가운데 한 구절이다. “이러한 현실에 있어서 음률이 파괴되고, 악사(樂士)가 자취를 감춘 것은 필연이다. 그리고 가(歌)와 시(詩)가 분리되어 시인과 가인(歌人) 간에 아무런 교통이 없게 되어 시인이 전성할 시대에 있어서도
- 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 2024-05-14 1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