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예술과 문학을 통한 독립운동(경북지역)’이라는 주제로 이야기주제정원(스토리테마파크) 누리잡지(웹진) 담(談) 10월호를 발행하였다. 경북은 의병과 독립운동이 꾸준히 진행되어 온 지역이다. 우리는 흔히 무장투쟁과 의열투쟁으로 독립운동을 기억하지만, 글로, 음악으로, 그림으로 일제의 탄압과 지배에 저항한 독립운동가도 있다. 이번 호에서는 이들을 기리며 옅어지는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다. 의병항쟁의 중심, 경북 의병장들의 문학 <경북지역 의병항쟁과 의병장들의 문학>에서 김항기 연구위원(독립기념관)은 경북지역에서 벌어진 의병활동과 그들의 저항정신이 담긴 문학작품을 소개한다. 일제는 1894년 동학농민전쟁에 개입하면서 조선에 대한 본격적인 침략 정책을 진행하였다. 이에 대항하는 의병은 전기의병이 봉기한 뒤 1905년 중기의병, 1907년 후기의병 단계로 나뉘는 범민족적인 저항운동을 펼쳤다. 경북지역은 1896년 1월 17일 안동의진을 시작으로 곳곳에서 창의하였다. 안동의진을 이끈 김도현 의병장은 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며 시대를 탄식한 <탄시사(歎時事)>를 지었다. 그는 망국으로 인
[우리문화신문=김수업 전 우리말대학원장] “울도 담도 없는 집에 시집 삼 년을 살고 나니……” 이렇게 비롯하는 <진주 난봉가>는 지난 시절 우리 아낙네들의 서럽고도 애달픈 삶을 그림처럼 이야기하는 노래다. ‘울’이나 ‘담’이나 모두 삶의 터전을 지켜 주고 막아 주는 노릇을 한다. 이것들이 있어야 비로소 사람은 그 안에서 마음 놓고 쉬고 놀고 일하며 살아갈 수가 있다. 울도 담도 없다는 것은 그만큼 믿고 기대고 숨을 데가 없이 내동댕이쳐진 신세라는 뜻이다. ‘울’은 집이나 논밭을 지키느라고 둘러막아 놓은 가리개의 하나로, ‘바자’로 만드는 것과 ‘타리’로 만드는 것의 두 가지가 있었다. ‘바자’는 대, 갈대, 수수깡, 싸리 따위를 길이가 가지런하도록 가다듬어 새끼줄로 엮거나 결어서 만든다. 드문드문 박아 둔 ‘울대’라고 부르는 말뚝에다 바자를 붙들어 매어 놓으면 ‘울바자’가 된다. ‘타리’는 나무를 심어 기르거나 다 자란 나무를 베어다 세워서 만든다. 탱자나무, 잔솔나무, 동백나무 같은 나무를 심어서 기르면 저절로 자라서 ‘생울타리’가 되고, 알맞게 자란 나무를 베거나 가지를 쳐서 세우고 울대 사이를 새끼줄로 엮어서 묶으면 그냥 ‘울타리’가 된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납량특선 2-익숙하면서도 낯선, 토속신앙’이라는 주제로 이야기주제정원(스토리테마파크) 누리잡지(웹진) 《담(談)》 9월호를 펴냈다. 믿을 수 없으면서도 믿을 수밖에 없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이번 호에서는 오랫동안 한 지역ㆍ겨레가 공유하고 지켜온 믿음들이 어떻게 형상화되는지 살펴본다. 몸으로 깨닫는 무속의 진정성 <무속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에서 이용범 교수(안동대학교)는 무속이 한국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의미를 통해 무속의 진정성을 살펴본다. 우리 사회에서 무속은 모순된 시각의 혼재 속에 실체가 모호한 경제적 현상으로 남아 있다. 불합리하고 비현실적인 관습으로 사람들을 미망에 빠트리는 미신에 불과하다고 치부하기도 하지만, 고유한 전통문화를 지닌 중요한 민속 전통이나 여러 종교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기도 한다. 유교를 지배 이념으로 성립되었던 조선에서도 무속에 대한 인식의 혼란이 드러났다. 유교, 특히 성리학의 관점에서 무속은 부정의 대상이었기에 공적 영역에서는 무속이 금지되었지만, 사적 영역에서는 풀리지 않는 삶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공하는 종교 가운데 하나로 기능하였다. 《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관직자의 사명’이라는 주제로 이야기주제정원(스토리테마파크) 누리잡지(웹진) 담(談) 4월호를 펴냈다. 이번 호에서는 이번 달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맞이하여, 조선시대 관리들이 사명감을 다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부패하고 탐욕스러웠던 행태를 통해 관직자가 가져야 하는 덕목과 자세를 살펴보았다. 붕새의 깃을 치며 날아오른 권상일 <청대 권상일의 관직 생활>에서 이근호 교수(충남대학교)는 청대(淸臺) 권상일(權相一, 1679~1759)의 관직 생활을 통해 소명의식을 지니고 국정에 임했던 관리의 모습을 살펴본다. 권상일은 과거에 합격한 뒤 친구들과 열었던 문회계(文會契)에서 “만 리 큰 바다 내가 먼저 길을 나서, 차례대로 여러 붕새의 깃을 치며 날아오르리”라는 시를 지었다. 여기서 붕새[鵬]는 원대한 꿈을 뜻하는데, 이는 관직에 나선 자신의 큰 포부와 함께 친구들에 대한 바람을 표시한 것이다. 권상일은 ‘밤에 쓰러져도 낮에는 분주하게’ 움직이는 고단한 관직 생활을 이어갔다.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소망하던 외직에 입직한 뒤 무신란(戊申亂)이 발생했을 때도 장정을 모아 반란 세력에 대비하였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조선의 눈으로 고려를 보다’라는 주제로 이야기주제정원(스토리테마파크) 누리잡지(웹진) 담(談) 3월호를 펴냈다. KBS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은 기존 사극 시청층뿐 아니라 젊은 세대의 높은 호응과 지지를 얻으며 고려 시대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을 촉발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조선의 지식인들이 고려에 가졌던 인식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동북 9성을 이룬 윤관을 기리다 <윤관의 9성에 대한 조선 시대 지식인의 인식>에서 이정신 교수(한남대학교)는 고려 숙종과 예종 대에 활약한 문신 윤관(尹瓘, 1040∼1111)에 관한 조선 시대 지식인들의 평가를 담았다. 고려는 현종(顯宗) 때에 거란의 침략을 받은 이후부터 서북방면 진출은 포기하고 동북쪽으로 영토를 넓히는 데 주력했다. 예종 2년에 윤관은 별무반을 편성하여 완안부 여진을 소탕하고, 9성을 설치하여 여진인을 내보내고 남도 주민을 이주시켜 완전히 고려의 영토로 만들었다. 이로써 고려는 임금을 중심으로 하는 강력한 통치 질서의 수립뿐 아니라 영토 확장을 통한 농경지 획득이라는 경제적인 효과를 가져왔으나 화평론을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손님맞이’라는 주제로 이야기주제정원(스토리테마파크) 누리잡지 <담(談)> 2024년 2월호를 펴냈다. 조선 시대 집에 찾아온 손님을 잘 예우하는 풍경을 통해 따뜻한 정이 오갔던 이야기를 살펴본다. 접빈객을 통한 세상과의 소통 <조선의 손님맞이와 상차림은?>에서 김현숙 박사(이화여대)는 종부(宗婦, 종가의 맏며느리)가 직접 작성한 일기를 바탕으로 향촌 사회에서 ‘손님맞이’의 의미를 담았다. 조선 양반가에서 ‘접빈객’은 세상과 소통하는 창구이자 사회적 통신망(네트워크)을 확대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그러므로 안주인은 심혈을 기울여 손님을 접대했다. 1849년 말부터 약 16달의 기록이 전해지고 있는 충남 홍성군 갈산면 수한리 안동김씨 선원파의 종부 유씨 부인 일기를 통해 손님의 사회적 지위에 따른 다른 상차림을 엿볼 수 있다. 손님의 수는 현직에 있을수록, 그리고 높은 관직에 있을수록 늘어난다. 따라서 이들의 수는 주인의 사회적 권세와 추종자의 수를 상징하였다. 한 예로 1850년 늦가을 손님, 청양 현감에게는 조반으로 육개국(개고기)과 만두, 점심에는 신설로, 오후 간식으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뜨끈뜨끈 온돌의 맛’이라는 주제로 이야기주제공원(스토리테마파크) 누리잡지(웹진) 담(談) 2024년 1월호를 펴냈다. 혹독한 겨울날, 우리의 선조들은 온돌을 통해 어떻게 추위를 녹였는지 살펴본다. 양반이 온돌을 깔자 청계천이 범람하다 <구들을 덥히자 청계천이 범람했다>에서 김소라 교수(경인교대)는 17세기 조선 임금의 침소부터 온돌이 깔리면서 달라지는 조선의 풍경을 담았다. 특히 전 세계적으로 17세기에 소빙기의 여파가 극심했다. 조선은 현종 때의 경신대기근(1670~1671)과 숙종 때의 을병대기근(1695~1696)은 모두 황충(메뚜기) 피해, 냉해, 가뭄, 홍수 등의 피해로 조선 백성들은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당시 주거환경은 온돌과 비슷한 난방이 이미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으나, 따뜻한 바닥의 좌식 생활은 줄곧 하층민의 생활양식으로 여겨졌다. 상류층은 최소 조선 전기까지 입식 생활을 주로 영위하였고, 난방은 화로 등을 활용했다. 조선에서 가장 뒤늦게 온돌을 일상화하게 된 공간은 궁궐이었다. 소빙기의 여파로 인조 때 궐내 온돌 증설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며 궁궐에도 온돌이 설치된다.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집 대부분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담은 밖으로부터 안을 보호하고 침입을 막으며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도록 하고 공간을 나누기 위함입니다. 담을 언제부터 쌓았는지는 모르지만 대체로 지배집단과 피지배집단 간에 주거의 차이가 생기면서, 신분에 따른 권위를 유지하기 위해 담이 필요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담 높이가 6두품은 8척을, 5두품은 7척을, 4두품 이하는 6척을 넘지 못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는 담의 높이가 권력의 높이와 비례한다는 것이지요. 어렸을 때 우리 집은 나무로 울타리를 만들었습니다. 재미난 것은 울타리에 싹이 돋아 나무로 성장하기도 했다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담은 건축주의 신분에 따라 재료와 축조 방법이 다릅니다. 서민층에서는 울타리, 돌담과 같은 자연적인 모습의 담을 중상류나 궁궐은 벽돌담, 화초담과 같은 인공이 많이 드는 담을 쌓았지요. 서민의 담은 집의 경계로서의 성격이 강하지만 상류층이나 궁궐의 담은 외부에 대한 방어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미국 뉴욕시 맨해튼 남부에 금융가인 월가가 있습니다. 미국식으로 월 스트리트라고 부르지요. 오늘날 전 세계를 좌우하는 금융의 중심지입니다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웹진 <담(談)>이 창간 100호를 맞이하여 <100호 특집> “3015일간의 기억과 기록”이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6월호를 펴냈다. 2014년 3월에 창간한 웹진 <담(談)>은 스토리테마파크에 구축된 ‘이야기 소재’를 활용하여 현재의 우리와 소통할 수 있는 주제를 고르고, 현대적 콘텐츠로 소개한다. 이번 6월호는 ‘기억과 기록’이란 주제로 창간호 탄생부터 현재까지 3,015일 동안의 이야기를 담았다. 웹진 <담(談)>의 탄생 뒷이야기, 분야별 최다 집필진들의 좌담회를 비롯하여 조선시대 선인들의 일기에 나타나는 기억과 기록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를 소개한다. 담담하게 전통문화 자산을 젊은 세대들에게 재구성해주는 담(談) 김수영 교수의 [“담(談)”에 담담을 더하여]은 웹진 <담(談)>이 시작되었을 때 편집자로서 시작과 고민, 성과와 의미를 짚어주었다. 웹진 <담(談)>의 100호 가운데 중반까지 편집자를 맡아왔던 필자가 말하는 잡지는 “독주가 아니라 합주요, 독창이 아니라 합창”이라고 전한다. 또한 모든 것이 조화로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