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가곡의 원형은 <만대엽(慢大葉)>, <중대엽(中大葉)>, <삭대엽(數大葉)>이고, 삭대엽은 다시 <초(初)삭대엽>, <이(貳)삭대엽>, <삼(參)삭대엽>으로 확대되었다는 이야기, 그러나 이들 악곡의 이름은 <삭>이 아닌, <수>로 발음하여 <초수대엽>, <이수대엽>, <삼수대엽> 등으로 불러왔다는 이야기, 월하의 이수자 발표회에서 김영기가 부른 <이수대엽>은 봄날, 한 여인의 마음속 근심을 풀어내는 노랫말이 아름다웠고, 그 가사 위에 느린 흐름과 긴 호흡으로 이어가는 선율 구조, 특히 여성 특유의 속청으로 들고 내리는 창법이 돋보였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이번 주에는 월하의 뒤를 이어 무형유산 <가곡>의 예능보유자로 인정받은 김영기의 가곡 인생 이야기로 이어가 보도록 한다. 그가 여창 가곡과 만난 때는 중학교 3학년 때인 1970년대 초로 거슬러 오른다. 당시 《국립국악원》에 근무하던 아버지의 권유로 <가곡>의 예능 보유자, 월하 명인을 만나게 되었으며, 첫 전수 장학생으로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잔치마당 소극장》의 기획 프로그램으로 김묘선의 승무 이야기를 하였다. 1900년대 초, 원각사에서 <춘앵전>, <검무>와 함께 <승무>를 추었다는 증언이 있는 점으로 이 시기에 이미 대중 예술로 확산했다는 점 등을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춤꾼 김묘선의 활약상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본다. 그는 한 시대를 승무와 살풀이의 명인으로 국가 무형문화재의 예능보유자로 활동하다가 세상을 뜬 이매방 명무의 제자이다. 스승의 자리를 이어받는 승무의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인정 예고가 2019년, 9월 초에 있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예능보유자 0순위였던 김묘선이 탈락한 것이다. 전통 무용계는 물론이고, 국악계, 문화계가 시끄러웠다. 보통은 예능보유자가 세상을 뜨면 그 뒤를 잇는 자리는 전수조교 가운데서 뽑아 왔으나, 승무의 경우에는 유일한 전수조교인 김묘선이 배제되고, 그 아랫급인 이수자 가운데서 한 사람이 예능보유자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어떠한 필연이 존재하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무형문화재 전승제도에 관한 필자의 의견은 그가 한 분야에서 얼마나 많은 활동을 해 왔는가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