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도 갈라놓을 수 없는 사랑
[우리문화신문=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새벽잠에서 깨어난 현영감의 마음은 지푸라기 헝클어뜨린 것 같았다. 단 한 번 본 사람이 그렇게 또렷하게 꿈에 나온다는 게 영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비만증에다 하지정맥류로 고생하는 할멈을 부축해 오줌을 뉘고 다시 자리에 누웠으나 잠 껍질은 한 꺼풀씩 벗겨져 나가기만 했다. 창에는 성에가 고사리처럼 자라나고 있었다. 다시 볼 일이야 없겠지만 전화번호라도 받아 놓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멈 몰래 빠져나와 거실을 서성이며 조반시간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수화기를 들었다. “여 청소이시더. 박 씨 양반 댁이니껴?” “아, 그렇지 않아도 아버님 당부도 있고 해서 삼우가 지나면 전화 드리려고 했습니다.” 박 씨. 야위어 보여도 단단한 구석이 느껴지던 사람. 전화번호를 또박또박 눌러쓰는 작은 손이 맵차 보이던 사람. 얄궂은 운명이 아니었더라면 매제가 될 뻔했던, 눈꼬리가 유난히 부드러운 사람. 그가 현영감을 찾은 건 두어 달 전 가을 거두미*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저, 여기가 월외리가 맞습니까? 아까부터 낯선 이가 집집이 다니며 주인을 부르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목소리가 현영감네 차례까지 온 것이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
- 김상아 음악칼럼니스트
- 2023-01-03 1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