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고 묵계월 명창의 1주기를 맞아 임정란을 위시한 그의 제자 일동이 2015년 8월 25일, 장충동 소재의 국립극장 무대에 올리게 된 추모 공연 이야기를 하였다. 묵계월 명창을 두고“장시간 소리를 해도 지칠 줄 모르는 명창”이라고 하나, 실은 연습이 생활화 되어 있다는 표현이라는 이야기, 목청이나 음폭, 끊임없는 반복훈련, 소리를 대하는 태도 등으로 그는 이미 20 이전에 묵계월의 이름을 세상에 알렸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는 민요나 긴소리를 주로 잘 불렀으며 여기에 송서(誦書)까지 잘 불렀다는 이야기, 특히 이문원에게 배운 송서는 단절의 위기를 맞았을 뻔 했으나 그 명맥을 오늘에 잇게 되었다는 이야기, 묵 명창은 특히 미국의 UCLA 민족음악대학에 한국음악과가 폐과 위기를 맞게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거금을 쾌척하였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가곡의 예능보유자 김경배 명인이 출반할 시조와 시창 음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 선가 김월하 선생 20주기 추모음악회에서 정가를 부르는 김경배 명인
김경배 명인은 참으로 부지런히 공부하고 연구하는 가객이다. 그는 10여 년 전에 경북대학교 교수직에서 정년을 맞이하였는데, 당시에도 후배 및 제자 친지들이 정년 기념으로 <정가음악회>를 준비해 주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러나 정년퇴직 이후에는 더더욱 왕성하게 정가의 보급이나 전승활동을 하고 있어서 100세 시대의 표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알려진 바와 같이 그는 이미 30년 전에 김월하 여류 선가와 남녀창 가곡의 전곡을 취입하여 가곡계를 평정한 바 있다. 그리고 몇 해 전에는 12가사 전곡을 취입해서 세상에 내놓아 또 한 번 화제의 주인공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경제의 시조창과 함께 그 어렵다고 하는 시창(詩唱)까지도 음반에 담아 내놓은 것이다. 세칭 바른 노래 곧 점잖은 노래로 알려진 정가(正歌)의 원류를 소화나 섭렵정도가 아니라, 탁월한 예술성을 담아내고 표출해 내고 있기에 진정 가객의 칭호가 어울리는 사람이고, 그래서 한국음악사에 길이 남을 큰 업적을 쌓은 명인이라 하겠다.
오래전부터 나는 김경배(金景培) 명인을 <버추어스티-Virtuosity>라고 부르고 있다. 김경배 명인도 나를 그렇게 부른다. 그래서 우리는 대화를 나누거나, 또는 전화를 주고받을 때에도, 서로 상대에게 <버추어스티>로 통하고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 그런 것이 아니다. 김 명인과 나는 국악고의 전신이었던 국악사양성소의 선후배이었으나 김 명인이 군 복무로 늦어져 대학은 같은 해 졸업하였다. 당시 서울음대에서 이혜구선생의 강의를 같이 들었는데, 선생은 재주꾼이 아닌, 진정한 예술가라는 의미의 <버추어스티>라는 말을 자주 쓰셨고, 그 말이 좋아서 우리도 자주 입에 올렸기 때문에 지금도 습관적으로 그렇게 통하고 있는 것이다.
<버추어스티>라는 말은 기교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나 단지 손재주나 목재주가 아닌, 덕행과 인품의 예술인이 소리를 통해서 뿜어내는 예술적 향기, 곧 ‘예술상의 기교’를 뜻한다. 주변에 악기를 잘 타고 소리를 잘 하는 사람은 많지만, 듣는 이를 감동감화시키는 연주자나 소리꾼이 흔치 않은 것은 바로 이 버추어스티가 없기 때문이다.
▲ 선가 김월하 선생 20주기 추모음악회에서 제자들과 공연하는 김경배 명인
이번에 담아내는 시조창은 가곡에 뿌리를 두고 이를 부르기 쉽도록 영조 무렵부터 고쳐 만든 노래다. 초장, 중장, 종장 등 3장형식의 시조시를 3음 중심의 가락과 5박, 또는 8박형 장단에 얹어 부르는 간결한 노래인 것이다. 고악보인 《유예지》나 《구라철사금자보》에는 양금의 악보로 시조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 원류의 시조가 서울 경기를 중심으로 불려오다가 현재 전국으로 확산되어 여러 제(制)가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지방에 따라서 경상도 지방의 영제(嶺制), 전라도의 완제(完制), 그리고 충청도 시조는 내포제(內浦制)로 구분하고 있으나 대체적인 형태는 유사하고, 부분적으로 말붙임이나 고저, 표현법 등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김경배 명인은 가곡, 가사와 함께 시조창도 50년대 중반부터 국악사 양성소에서 이병성, 이주환 선생으로부터 배웠고, 그 이후에는 김월하, 홍원기 등에게도 공부를 했기 때문에 누구나 인정하는 경제시조의 원류요, 본령(本領)이라 할 것이다.
또한 한시를 율(律)에 얹어 읊는 시창(詩唱)은 박자라는 개념을 떠나 자고저에 맞춰 부르며, 형식이나 장단은 달라도 선율구조나 요성의 형태 등은 가사나 시조와 유사한 부분이 자주 나타나고 있어서 정가에 뿌리를 두고 있다 하겠다.
이와 같은 시창은 1950년대 영남의 최아당이나 정운산씨가 잘 불렀다고 하며 정운산의 시창이 김월하를 통해 오늘날 김경배에게 전해진 것이고, 다시 그의 제자 40여명에게 전수되고 있으니 정가보급과 확대 발전의 중심에 버추어스티, 김경배 명인이 서 있는 것이다.
이번에 취입한 시조 곡목은 평시조에서 다양하게 퍼져나간 지름시조, 사설지름시조 등 시조의 전반을 아우르고 있으며, 시창은 십이난간, 동경회고, 영남루, 군자정 등과 같은 품격높은 노래들이 선정되어 있다.
언제 들어도 힘이 실려 있으며 힘차고 깨끗한 음빛깔로 역동감을 살려 부르는 그만의 독특한 가락들은 정겹기만 한 것이어서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불만과 불쾌, 그리고 욕망으로 얼룩져 있는 우리 마음을 깨끗하게 치유해 주리라 믿는다.
가곡, 가사, 그리고 새롭게 출반된 시조와 시창의 음반이 이 분야를 공부하고 있는 전공자는 물론이고, 국문학계나 인접분야, 그리고 정가를 사랑하고 시조를 좋아하는 전국의 애호가들의 친근한 벗이 되리라 확신하여 추천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