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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연의 이육사 시화 36] 편복(蝙蝠)

[우리문화신문=마완근 기자] 

 

                                          편복(蝙蝠)

                                                                        이육사

   광명을 배반한 아득한 동굴에서
   다 썩은 들보라 무너진 성채(城砦) 위 너 홀로 돌아다니는
   가엾은 빡쥐여! 어둠에 왕자여!

   쥐는 너를 버리고 부자집 고()간으로 도망했고
   대붕(大鵬)도 북해(北海)로 날아간 지 이미 오래거늘
   검은 세기(世紀)에 상장(喪裝)이 갈가리 찢어질 긴 동안

   비둘기 같은 사랑을 한 번도 속삭여 보지도 못한
   가엾은 빡쥐여! 고독한 유령이여! 

   앵무와 함께 종알대어 보지도 못하고
   딱짜구리처럼 고목을 쪼아 울리도 못 하거니
   만호보다 노란 눈깔은 유전(遺傳)을 원망한들 무엇하랴
 
 

   서러운 주교(呪交)일사 못 외일 고민(苦悶)의 이빨을 갈며
   종족과 홰를 잃어도 갈 곳조차 없는
   가엾은 빡쥐여! 영원한 보헤미안의 넋이여! 
 

   제 정열에 못 이겨 타서 죽는 불사조는 아닐망정
   공산(空山) 잠긴 달에 울어 새는 두견새 흘리는 피는
  그래도 사람의 심금을 흔들어 눈물을 짜내지 않는가!
  날카로운 발톱이 암사슴의 연한 간을 노려도 봤을
  너의 머―ㄴ 조선(祖先)의 영화롭던 한시절 역사도
  이제는 아이누의 가계(家系)와도 같이 서러워라!
  가엾은 빡쥐여! 멸망(滅亡)하는 겨레여!
  

  운명의 제단에 가늘게 타는 향불마자 꺼젓거든
  그 많은 새짐승에 발붙일 애교라도 가졌단 말가?
  상금조(相琴鳥)처럼 고흔 뺨을 채롱에 팔지도 못하는 너는
  한 토막 꿈조차 못꾸고 다시 동굴로 도라가거니
  가엽은 빡쥐여! 검은 화석의 요정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