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추적하여 이를 시로 승화시킨, 그리하여 이를 <서간도에 들꽃 피다>라는 시리즈로 책을 낸 이윤옥 교수가 이번에는 《창씨 개명된 우리 풀꽃》이란 책을 냈습니다. 한동안 여성 독립운동에 천착하던 이교수님이 이번에는 어떻게 풀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교수는 책을 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 창씨개명된 우리 풀꽃》, 이윤옥, 인물과사상사 책 표지
몇 해 전 봄날, 벗에게 앙증맞은 들꽃 사진 하나를 슬기전화(스마트폰)로 받았다. 은은한 푸른빛의 어여쁜 이 들꽃 이름이 ‘큰개불알꽃’이라는데 놀랐다. 누가 이름을 붙인 것인지 참 안 어울린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일본 말 이누노후구리(犬の陰囊)를 옮긴 이름이었다. 맙소사! 올해로 일본어를 공부한 지 37년째, 고전이 전공인 내가 팔자에 없는 풀꽃 이름에 매달리게 된 것은 큰개불알꽃 때문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교수님 참 대단하십니다. 우리의 예쁜 풀꽃들의 이름이 일본말로 창씨개명 되었다고 하니까, 곧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식물도감을 뒤지면서 일본말에 오염된 우리 풀꽃들을 찾기 시작하다니요. 그런데 이교수가 이렇게 도서관을 뒤졌는데도 화려한 사진을 넣은 ‘사진 자랑 도감’은 많지만 일제 강점기에 우리 식물 이름이 어떻게 집중적으로 왜곡되었는지에 대해 알려주는 책은 없었다고 합니다.
▲ 오이누노후구리(大犬の陰囊)라는 일본 이름을 번역한 "큰개불알꽃", 작가 이윤옥이 이 책을 쓰게된 계기가 되었다.
그러자 이교수는 결심합니다. “우리 식물학자들이 손 놓고 있으면, 나라도 나서서 해보자.” 그때부터 이교수는 온통 도서관을 뒤지면서 창씨 개명된 우리 풀꽃을 찾는데 정열을 쏟습니다. 그 결과물이 이렇게 이번에 《창씨 개명된 우리 풀꽃(이윤옥, 인물과사상)》이란 책으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창씨개명 된 우리 풀꽃들에 대해 조금 얘기해볼까요? 수줍게 보라색 꽃망울을 숙이고 있는 청초한 꽃 금강초롱 있지요? 이 금강초롱을 예전에 화방초(花房草)라고 하였답니다.
한자 뜻으로 본다면 꽃으로 장식된 예쁜 방의 풀? 그런데 그게 아닙니다. ‘화방’은 초대 일본 공사인 하나부사 요시모토(花房義質)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랍니다. 일본의 식물학자 나카이 다케노신이 한반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식물 조사를 하면서 우리 전통 꽃 이름을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이름을 붙였는데, 그 중 하나인 금강초롱에 하나부사의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 초대 일본 공사 하나부사의 이름을 따서 "화방초(花房草)"라 불렀던 <금강초롱>-왼쪽, 악명 높은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에게 바쳐진 이름의 <사내초(寺內草)>
또 있습니다. 사내초(寺內草)라고 있는데, 이 또한 절 경내에 피는 풀이라 사내초라고 이름 붙인 것이 아닙니다.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합병하였을 때 초대통감으로 온 데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의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나카이는 사내초라고 이름 붙이게 된 사연을 식물학 잡지 1913년 10월호에 이렇게 썼습니다.
평양고등보통학교 교사인 이마이 한지로 선생이 2년 전 한 개의 백합과 식물을 다른 조선 식물과 함께 검정해달라고 내게 보내와서 살펴보니 학계에 아직 보고되지 않은 신속(新屬)인지라 조선 총독 데라우치 백작의 이름을 붙여 각하의 공을 길이 보존코자 했다.
금강초롱에 하나부사 이름을 붙인 나카이가 자기 이름은 안 붙였을까요? 맞습니다. 나카이는 우리 풀꽃에 학명을 붙이면서 학명 끝에 자기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를테면 ‘섬버들’ 같은 경우 ‘Salix Ishidoyana Nakai’라고 학명을 붙였습니다. 나카이가 이렇게 우리 풀꽃에 자기 이름을 넣은 것이 얼마나 될 것 같습니까? 나카이는 무려 한반도 고유종 62%에 자기 이름을 올렸답니다. 62%나? 으~음~~ 이거 자꾸 욕 나오려고 하네요.
나카이가 순수한 학문적 욕망에서 조사를 하였다면 이렇게 꽃 이름에 하나부사나 데라우치 등의 일본인 이름을 올린다던가, 자기 이름을 62%나 올릴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나카이는 식민지 수탈을 위한 식물 자원 조사가 목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우리 풀꽃 이름에 만행을 저지른 것입니다. 이외에도 우리 풀꽃에 이름이 들어간 일본인은 일본 식물학의 태두 마키노 도미타로, 조선의 식물 교과서를 만든 모리 다메조, 리기다 소나무를 들여온 우에키 호미키 등 이외에도 많다고 합니다.
▲ 등잔을 가리킨 "등대"란 일본말을 그대로 옮긴 <등대풀>
그리고 “등대풀”이라고 아십니까? 제가 전에 산을 오르면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꽃 모양에 이끌려 이 꽃 이름을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열심히 찾아보니 등대(燈臺)풀이라고 나오더군요. 저는 그 때 “외로운 섬 등대 근처에서 처음 이 꽃을 발견하고 등대풀이라고 이름 붙였나?”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교수님 책을 보니, 이 또한 일본의 도다이구사(燈臺草)에서 ‘초’만 ‘풀’로 바꾼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燈臺’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 등대가 아니라 등잔을 가리키는 것이랍니다. 그러니까 정확히 번역하려면 ‘등잔풀’이라고 했어야지요. 만약에 제가 꽃이름 찾아보았을 때, ‘등잔풀’로 보았다면 단박에 제가 본 꽃을 연상하면서, “아하! 내가 볼 때도 등잔을 연상했는데, 꽃이름도 등잔풀이네!”라고 했을 것입니다.
이밖에도 책에는 ‘모윤숙이 수필에 기록한 애기산딸나무’, ‘처녀치마의 오해와 진실’, ‘섬뜩한 왜장도를 번역한 칼송이풀’ 등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풀꽃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더 읽어보기]로 들어가 있는 글 중에도 재미있는 글이 있네요.
‘일본산 금송을 항일유적지에 심는 나라’라는 글을 보니 아산 현충사, 금산 칠백의총, 안동 도산서원 등에 금송이 심어져 있는데, 이 금송이 사실은 일본인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삼나무라고 합니다. 이교수는 다른 데는 몰라도 이런 유적지에 하필이면 일본산 금송을 심느냐고 혀를 차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경복궁 안 꼴불견 노무라단풍’이란 글에서도 우리의 왕궁에 굳이 노무라단풍을 심을 필요가 있느냐며 분개를 하고 있습니다.
올해가 광복 70주년 아닙니까? 책을 읽으면서 광복 70년이 되도록 아직도 우리의 산과 들에는 창씨 개명된 무수한 우리의 풀꽃들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풀꽃들이 지각없는 우리를 원망하면서 피고 지고 할 것을 생각하니, 우리 풀꽃들에게 부끄러워 얼굴을 들 수 없겠습니다.
그 동안 우리의 식물학자들은 무엇을 했는지... 늦었지만 식물학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윤옥 교수가 이렇게 화두를 던졌으니, 앞으로 우리의 식물학자들이 분발하여서 창씨 개명된 우리 풀꽃들의 이름을 되찾아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