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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은 하늘이 잠시 맡겨둔 것, 이웃을 위해 써야

[서평]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 종가》, 김영조, 얼레빗

   
▲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 종가(김영조, 얼레빗)》 표지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김영조 소장이 이번에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 종가라는 책을 냈습니다. 김소장은 우리 문화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하여 사람들에게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라는 메일을 벌써 12년째 하루도 쉬지 않고 보내고 있습니다. 저도 그 독자 중에 한 사람이지요. 그뿐만 아닙니다. 김소장은 <우리문화신문>이라는 인터넷 신문(http://www.koya-culture.com/) 편집자로 독자들에게 한국문화 알리느라고 매일 매일 바쁜 하루를 보냅니다. 그렇게 사명감으로 바쁘게 살아가시는 분이 이번에 모처럼 틈을 내어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 종가라는 책까지 내셨네요.  

김 소장은 2013년부터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 종가를 사람들에게 알려야겠다는 또 하나의 사명감에 전국의 명문 종가를 찾아 나섰습니다. 반만년 역사 오랜 우리나라에 종가는 많지만 김 소장이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 종가로 세운 기준은 이렇습니다. ‘1. 재물을 나눠 배고픈 이웃을 구휼했는가? 2. 재물을 쏟아 교육으로 베풀었는가? 3. 모든 것을 나라의 독립을 위해 바쳤는가?’ 김 소장이 이런 기준을 세우고 종가를 뒤지니 뜻밖에도 이런 기준을 충족하는 종가는 많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 책에는 김 소장이 이런 기준으로 찾아낸 총 22군데 종가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모두 김 소장이 발품을 팔아 직접 종가를 찾아가 조사하고 종손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글로 풀어낸 결과물이지요. 김 소장은 종손들을 만나보고 느낀 점을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번에 찾은 종가는 나눔과 베풂을 아낌없이 실천한 집안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도 훌륭하지만 그보다 더 훌륭한 일은 종손들이 이런 나눔과 베풂을 자랑으로 삼지 않고 당연한 일이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점이다.” 

 

   
▲ 아낌없이 나눔을 실천하고 독립운동 자금을 댄 경주 최부잣집 최준 선생

경주 최부잣집 최준 종가의 최염 주손 같은 경우에는 이 종가에서는 종손이라고 하지 않고 주손이라고 한다네요 - 재산은 하늘이 우리 집안에 잠시 맡겨둔 것으로 나라를 위해서나 가난한 이를 위해서 필요하다면 언제든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답니다. 나눔과 베풂을 자랑하지 않고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종손들. 가히 나눔을 실천한 명문 종가라고 할 만 합니다. 

이제 이들 22개의 종가들이 어떻게 나눔을 실천하였는지 대표적인 몇 개의 사례만 보도록 합시다. 남을 도와준다면 사람 심리상 뭔가 우쭐하고 자신의 이런 행동을 드러내고 싶지 않겠습니까? 우리 주위에서도 정치가나 기업인이 연말에 고아원 등에 찾아가 생색내고 사진은 그럴 듯하게 찍어가는 경우를 보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나눔을 실천한 명문 종가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구례 운조루 류이주 종가의 경우에는 가난한 이웃들이 눈치 보지 않고 쌀을 가져가도록 쌀뒤주를 주인과 마주치지 않는 사랑채 헛간에 두었습니다. 저도 운조루에서 그 쌀뒤주를 본 적이 있습니다. 뒤주에는 타인능해(他人能解)”라고 쓰여 있었지요. 다른 사람들이 능히 가져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 가난한 이웃들이 눈치 보지 않고 쌀을 가져가도록 한 운조루의 쌀뒤주 “타인능해(他人能解)”

   
▲ 밥 짓는 연기가 보이지 않도록 굴뚝을 섬돌 밑으로 낸 운조루(왼쪽), 낮게 낸 남파 박재규 종가

   
▲ 역시 굴뚝을 낮게 낸 경주 최부잣집(왼쪽)과 예천 사고 이덕창 종가

논산 윤증 종가의 경우에는 가을에 추수를 한 뒤 나락을 집으로 들어오는 길목에 며칠 동안 쌓아두었답니다. 그리고 밤에 동네 사람들이 가져가도 일부러 모른 체 했다는군요. 그리고 류이주 종가나 나주 남파 박재규 종가, 예천 이덕창 종가 등 많은 종가들은 밖에서 밥 짓는 연기가 보이지 않도록 굴뚝을 섬돌 밑으로 내거나 굴뚝을 낮게 했습니다. 밥도 못 짓는 이웃이 밥 짓는 연기를 보면 속상해 할까봐 배려를 한 것이지요. 

또한 윤증 종가의 윤하중 선생은 1939년 흉년이 들어 주민들 생활이 극도로 어려워지자, 신작로에 석축을 쌓는 공사를 벌이고, 여기에 참여한 마을 사람들에게 노임으로 쌀을 주었답니다. 이거~~ 국가가 해야 할 취로사업을 종손이 직접 나서서 했군요. 그냥 무상으로 주지 않고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받아가게 하는, 그렇게 가난한 사람들의 자존심도 배려해주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 마을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주기 위하여 만든 용호정원

진주 용호정원 박헌경 종가의 경우에도 박헌경 옹은 1929년 큰비가 쏟아져 용산리 40여 집 가운데 절반이 넘는 24채가 물에 떠내려가는 재해가 발생했을 때, 마을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하여 용호정원을 만들었답니다.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인데 박헌경 옹은 용호정원을 담장 안이 아닌 담장 밖 마을 어귀에 지어 개인의 즐거움만을 위한 정원이 아닌 모든 사람이 같이 즐길 수 있는 정원으로 하였습니다. 정원 이름 자체가 만인의 정원이라는군요. 

그리고 이런 부잣집의 경우 마을사람들이 돈이나 곡식을 꿔달라고 할 경우 이를 꿔주는 경우가 종종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를 제대로 갚지 못하는 경우 졸부들 같으면 빨리 갚으라고 독촉을 하고, 재산을 압류하고 심지어는 농토를 빼앗는 경우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눔의 종가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 돈을 갚지 못하여 토지문서를 들고 오면 그 자리에서 갖고 있던 차용증서를 찢어버렸던 김사원 선생의 만취당 종택

의성 만취당 김사원 종가의 김사원 선생은 빌려간 이가 돈을 갚지 못하여 토지문서를 들고 오면 그 자리에서 갖고 있던 차용증서를 찢어버리면서 이렇게 말하였답니다. 차용증을 쓰게 한 것은 빌려간 곡식을 갚는데 게으르지 마라는 뜻이지 논밭을 뺏기 위함이 아니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느냐?”고 말입니다. 정말 나눔 종가의 베풂에는 진심이 있고 감동이 있군요.  

이런 이웃 사랑은 이웃보다 호의호식 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도 나아갑니다. 논산 윤증 종가의 경우 명재 윤증 선생은 초가삼간을 짓고 소박하게 살았을 뿐만 아니라, 그 초가삼간마저 무너져 긴 나무로 떠받쳐 지탱하였답니다. 명재 선생의 12대 손인 현 종손 윤완식 선생은 고구마를 잘 안 먹는답니다. 어릴 때 겨울만 되면 식량을 아껴서 남에게 베풀어야 한다며 고구마로 끼니를 때우곤 하여 고구마에 이골이 났기 때문이랍니다.  

서천 청암 이하복 종가의 경우에도 청암 선생은 사재를 털어 학교를 몇 개 세우면서도 자신은 죽을 때까지 초가에 살았답니다. 정말 나눔 정신의 극치이군요. 

 

   
▲ 평생 초가에서 청빈하고 살면서 교육사업을 한 서천 이하복 선생의 종택. 중요민속문화재 제197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동 학봉 김성일 종가의 경우 학봉 선생의 13대 종손 김용환 선생은 살아있을 때의 평판과 사후 평판이 극과 극입니다. 생전에 김용환 선생은 종택(宗宅)과 종가 전답 18만 평을 노름으로 처분했다고 조선 최대의 파락호라는 소리를 듣는 노름꾼이었지요. 심지어는 외동딸이 시댁에서 받은 장롱 살 돈까지 가로채 노름으로 날렸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그가 1946년 세상을 떠나고 난 후 진실이 밝혀졌습니다. 사실은 선생이 노름빚으로 탕진하는 것처럼 속이고, 그 돈을 독립군 자금으로 보낸 것이지요. 할아버지 서산 김흥락 선생도 의병대장을 숨겨주었다가 왜경에게 곤욕을 치뤘고, 선생 자신도 젊었을 때 독립운동을 한 적이 있기에, 왜경의 눈을 철저히 속이기 위하여 파락호로 위장한 것이지요. 선생이 돌아가실 때 진실을 알고 있는 오랜 벗이 이제는 말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여도, 선생은 끝까지 비밀을 가슴에 안고 눈을 감았답니다. 그렇지만 끝내 이런 진실이 밝혀져, 정부에서도 1995년 선생에게 건국훈장을 추서하였습니다. 

 

   
▲ 파락호를 자처하고 독립군 자금을 몰래 보낸 김용환 선생의 학봉종택

그 동안 고위 공직자들의 재산 공개시 부정하게 모은 재산이 밝혀지면서, 또 청문회에서 천박한 졸부 행태를 보면서, ‘우리나라엔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이렇게 없느냐?’며 의기소침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때에 김 소장이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 종가를 소개해주어서, 마음 한편으로 청량한 바람이 불어오는 듯합니다. 책에는 전통의 명문 종가만 나와 있는데, 아무쪼록 이 책이 계기가 되어 오늘날에도 새로운 명문 종가들이 속속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