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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변호사의 세상바라기

《그들이 사는 마을》을 넘겨다볼까?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73]

   
▲ 《그들이 사는 마을》, 스콧 새비지 엮음, 느린 걸음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어느 날 문득 내가 왜 이렇게 살지?”라고 생각해보신 적 없으십니까? 기계문명의 거대한 흐름에 밀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그저 남들이 가는 대로 자신도 따라가고 있는 모습을 보며 흠칫 놀라신 적은 없으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것을 느꼈을지라도, 이 거대한 흐름 앞에 한 개인이 뭘 어찌 하겠느냐는 체념 속에 그저 묵묵히 흐름을 따라 갈 것입니다. 아니, 그 흐름에 뒤쳐지지 않으려고 다시금 그 흐름 속에서 경쟁하며 탐욕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그런 흐름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나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스콧 새비지가 엮고 느린 걸음출판사에서 낸 책 그들이 사는 마을이 바로 그런 사람들의 기록입니다. 

그들이 사는 마을은 미국의 비영리단체 소박한 삶을 위한 모임에서 발행하는 잡지 플레인(Plain)에 실린 글을 위 잡지의 편집자 스콧 새비지(Scott Savage)가 엮은 책입니다. ‘Plain’이란 단어 자체에 소박한의 뜻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들이 사는 마을이란 바로 이런 흐름을 떨쳐버리고 나온 사람들이 소박하게 사는 마을을 뜻하겠지요.  

아미쉬(Amish)’가 바로 그런 마을입니다. 아미쉬 마을은 18세기에 종교의 박해를 피하여 미국으로 건너온 유럽의 재세레파 교인들이 세운 마을입니다. 케이커 교도인 윌리암 펜이 펜실바니아(펜의 이름을 딴 지명)에 자유로운 신앙의 신천지를 만들고는 이들을 초청하였던 것이지요.  

새비지는 소박한 삶을 위한 모임은 주로 소박한 삶을 꿈꾸는 케이커 교도로 이루어진 작은 비영리단체로 재세례파와 퀘이커 전통을 전파하고자 한답니다. 그러므로 이 모임에는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도 많겠지만, 처음부터 그런 공동체에서 태어나지는 않았더라도, 현대 기계문명의 문제점을 깨닫고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도 많다고 하지요. 

그들이 사는 마을에서는 기계문명의 이기(利器)를 거부하고, 지금도 마차를 타고 전통적인 농법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합니다. 또한 텔레비전은 물론 컴퓨터도 거부합니다. 그래서 잡지 플레인도 한 장 한 장 손으로 활자를 조판하고 목판화를 새기고 오래된 태양열 수동 인쇄기로 인쇄한다는군요.  

현대 문명사회에서 이들의 삶이 극단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그들의 주장에는 경청할만한 것이 많이 있습니다. 책을 보면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란 글에서 엘모 스톨은 이 세계는 가속도가 붙은 채 내리막을 빠르게 달려가는 기차와 같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차가 향하는 방향을 바라보며 경악하지만 아무도 안전하게 뛰어내리는 법을 찾지 못해 그저 앉아있는 듯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엘모 스톨은 현대 기술 자체가 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다만 기술에 지배당하기보다는 기술을 지배하기를 원하여 이 생활을 택했다고 합니다. 

학교가 빼앗아간 아이들의 시간이란 글에서 존 테일러 개토는 학교는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인간을 길러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을 기계문명, 소비문명에 길들여진 노예로 만든다면서 이렇게 말을 합니다.  

물리적 기계든 학교나 제도 혹은 세계적 기업 같은 사회적 기계든, 기계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속속들이 그 기계의 영향을 받는다. 냉정하게 말해서, 자신이 지나치게 의존하는 그 기계를 섬기는 노예 기계가 되고 만다.” 존 테일러 개토가 요즈음 우리나라의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를 본다면 주체적으로 사고하는 인간보다는 오직 국가가 요구하는 이념에만 순종하는 노예를 만드는 것 아니냐고 비판할 것 같습니다. 

한편 제리 맨더와의 인터뷰 글 기업과 기계의 지배에 맞서에서 제리 맨더는 컴퓨터의 문제점을 이렇게 말하네요.  

컴퓨터를 사용하는 아이들은 그 특정 방식으로 생각하고 인식하는 법을 습득하게 되죠. 다양한 감각을 활용하는 게 아니라, 기계를 통해서만 해석되는 디지털 정보를 다루면서 특정 시스템 안에서 생각하는 법을 연습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기계와의 관계 속에서 하루를 경험하고 기계로부터, 기계가 전달하는 좁은 형식의 지식을 얻을 뿐입니다.... 이제는 데이터가 지식과 지혜를 대체하고 있다고들 합니다. 그와 동시에 예전 방식의 앎은 억압되고 있고요.”  

그렇군요. 저만 하여도 컴퓨터가 주는 편리함에 취해 이런 문제점은 생각도 안 해 보고 살았습니다. 

엮은이 새비지는 우리보고 (현대 기계문명에 접속하는) 플러그를 뽑으라고 합니다. 플러그를 뽑기만 한다면 우리 삶을 틀어쥔 이 기계문명의 악력을 쉽게 약화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새비지 자신이 현대문명에 관련된 것이라면 듣지도 보지도 사지도 않겠다고 전면적으로 거부하자, 자기 행동과 생각을 지배하던 그 힘이 사라지기 시작했다는군요.  

플러그를 뽑으라고 하니까 언플러그드 뮤직도 생각나네요. 책에는 이뿐만 아니라 데이비드 클라인의 흙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 빌 듀싱의 소유를 줄이고 향유를 늘리기’, 프랭클린 세이지의 컴퓨터 밖의 진짜 세상’, 진 록스던의 메마르고 상처 입은 이 세상에등 총 27편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영성을 가지고 현대문명에 대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는 박노해 시인도 그래서 다른 길이라는 책도 냈습니다. - 이 책의 발간을 축하하며 책머리에 오래된 친구라는 시를 썼구요. 

어떻습니까? 이들을 쫓아갈 수 있겠습니까? 이미 현대문명에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진 우리로서는 이들의 삶을 도저히 따라갈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문제의식을 느낄 수는 있지 않습니까? 새비지는 이 책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사람들의 무력감을 날려주는 해독제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시간이 날 때 그들이 사는 마을을 펼치면서, 그들이 사는 마을에서는 어떤 생각과 이야기가 오고가는지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