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김영조 기자] 24일 늦은 2시부터 서울 한겨레신문사 3층 청암홀에서는 한겨레신문사(대표이사 정영무) 주최, 한겨레말글연구소(소장 박창식) 주관으로 “정치적 올바름과 언어의 문제”란 주제를 가지고 제11차 연구발표회를 열었다.
이날 발표회에는 한겨레말글연구소 박창식 소장의 경과보고에 이어 한겨레신문사 정영무 대표이사의 인사말과 한글학회 김종택 회장의 축사가 있었다. 김종택 회장은 축사에서 “보통 국어학회 발표장에서는 나오지 않는 귀중한 발표들이 있어 나는 한겨레말글연구소의 발표회는 기꺼이 참석한다. 그리고 발표 자료는 절대 버리지 않고 귀하게 보관하는데 이는 이 발표회가 내게도 좋은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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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말글연구소 발표회에서 경과보고를 하는 박창식 소장, 인사말을 하는 한겨레신문사 정영무 대표이사, 축사를 하는 한글학회 김종택 회장(왼쪽부터) |
발표회는 1부 “정치적 올바름과 언어의 문제”, 2부 “우리 언어를 풍부하게 사용하기 위한 사전의 구실”로 나눠서 가졌다.
먼저 한겨레말글연구소 박창식 소장의 사회로 열린 1부에서는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김하수 교수의 "정치적 올바름과 언어의 문제 개념 논의", 전 동아일보 조병래 기자의 "언론보도와 정치적 올바름", 윈지코리아컨설팅 인근형 대표의 "정치적 올바름과 정치권의 언어 왜곡"의 발제가 있었다. 이에 토론자로는 광운대 김예란 교수와, 전 경향신문 김지영 편집인이 나섰다.
발제에서 전 동아일보 조병래 기자는 “언론에서는 '범죄 시한폭탄 불법체류자', '귀족노조', '청년들에게 100만 원 살포', '무차별 복지', '복지 장사', '인민재판'은 물론 심지어 '종북 좌빨' 같은 객관적이지 못한 왜곡되고 폭력적인 어휘를 마구 써서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어휘뿐만 아니라 '평화 집회도 이젠 지겹다는 게 국민들 심정', '혼란과 소요 사태를 즐기는 세력'과 같은 자극적인 문장도 마구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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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효회 1부 “정치적 올바름과 언어의 문제” 발표자들과 토론자들 |
1부가 끝난 뒤 토론에서 한 방청객은 “언론이 이런 폭력적인 언어를 쓰는 것은 정말 심각하다. 한겨레신문이 나서서 이를 바로잡는 운동에 적극 나서달라.”고 주문하였고 한겨레말글연구소 박창식 소장은 “당연히 우리 한겨레가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앞으로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2부는 한겨레말글연구소 최인호 연구위원의 사회로 《미친 국어사전》의 박일환 지은이가 “표준국어대사전의 한계와 극복 방안”이란 주제로 발제를 했으며, 겨레말큰사전 한용운 편찬실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이윤옥 소장, 국립국어원 김선철 언어정보과장, 한국어문기자협회 이승훈 회장, <한겨레21> 전진식 기자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발제에서 박일환 지은이는 먼저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의 문제점과 장점을 거론했다. 그리곤 《표준국어대사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그는 국어 교사로 현장에서 뛰면서 겪은 국어사전의 여러 심각한 문제점들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면서 특히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전문어를 지나치게 많이 싣고 있는 대신 일반어나 생활어는 충실하게 실려 있지 못함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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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표회 2부 “우리 언어를 풍부하게 사용하기 위한 사전의 구실” 발표자와 토론자들 |
또한 그는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아직도 ‘소라색’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다. 이 말이 일본말이라는 걸 아는 사람도 많이 있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은 이 말을 표제어로 올려두고 있는데, 형태 분석에 [+{일본어}sora[空]+色]라고 해 놓음으로써 일본말이라는 걸 밝혀 놓았다. 문제는 일본말 ‘소라(sora)’에 해당하는 ‘공(空)’을 사용한 ‘공색(空色)’이라는 낱말이 두 사전에 모두 실려 있지만, '하늘색'이란 순화어는 제시되어 있지 않다. ‘소라색(sora色)’과 ‘공색(空色)’은 결국 같은 말인 셈이다.”라면서 사전 속의 일본말과 비표준어, 방언 등의 문제점들을 꼬집었다.
이에 토론자로 나선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 이윤옥 소장은 “토론자는 《오염된 국어사전, 부제 표준국어대사전을 비판한다》라는 책을 냈지만 사실 이 책의 제목은 《표준국어대사전을 불태워라》로 정하고 싶었다. 우리 사전에서 일본말 찌꺼기를 제대로 밝히고 걸러내는 작업만 제대로 해도 이런 발표회는 필요없을 지 모른다. 예컨대 발표자의 지적처럼 배추꽃이 총상화서로 핀다고 하였는데 이는 사전 집필자들이 배추꽃을 한번도 보지 않고 책상 머리에서 일본사전을 베낀 탓이다. 이제라도 ‘깨끗한 흰 바탕에 배달겨레말로 풀이한 알기 쉽고, 쓰기 쉬운 우리말글로 풀어 넣은 제대로 된 사전을 만들어야만 한다.”라고 지적했다.
이날 우리말에 관심이 있어 발표장을 찾았다는 서울 금호동 성만영(57) 씨는 “우리말을 아끼고 가꾸려는 좋은 발표회를 열어 참으로 뜻 깊었다. 객관적이지 못한 그리고 왜곡된 표현을 쓰는 언론이 한심하고 《표준국어대사전》이 그 지경이라니 참 심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새로 만드는 국어사전은 이러한 이야기들을 모두 반영하길 바란다.”라고 참관 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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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표회 모습 |
그러나 우리말을 아끼고 가꾸자는 발표회 내내 기자는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그것은 대부분 발표자와 참석자들이 “~불구하고”란 일본어 투의 사족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곳이 그럴진대 일반인들이 저 “~불구하고”를 쓰지 않는 날이 오기나 할까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럼에도 이날 열린 발표회는 우리말 사랑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 했다. 자고나면 쏟아져 들어오는 외래어와 정치 당사자들 간의 자극적이고 왜곡된 용어, 일본말 찌꺼기 등 아직도 제자리를 잡지 못하고 잇는 우리말이지만 그나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올바른 우리말'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 무척 다행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