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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자전거 평화기행

지속적인 분쟁, 일본을 미국의 속국 자리에 가두어

[오키나와 자전거 평화기행 ⑤]
평화기념공원, 비석에 새겨진 조선인 447명 불과

[우리문화신문=이규봉 교수]  헤노꼬를 지나 329번을 타고 난조시로 들어와 다시 331번을 타고 해안을 따라 이토만시로 향했다. 아침나절 간헐적으로 계속 내리던 비는 오후가 돼서 그쳤다. 길가 아주 조그만 식당에서 점심을 했는데 평범한 음식이 우리 돈으로 만 원이 넘고 맥주도 5천 원이 넘는다. 확실히 오키나와의 물가는 우리나라보다는 비싸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우연히 들린 한 카페에서 또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카페는 고즈넉하고 아늑한 분위기의 조그만 나무집이었다. 치즈케이크와 커피를 주문했는데 커피는 자신이 알아서 몇 번이고 가져다 마실 수 있었다. 가까운 곳 탁자 위에 뜨거운 커피, 냉커피, 얼음, 그리고 몇 개의 차가 준비되어 있어 알아서 가져가면 되었다. 잠시 후 치즈케이크가 하얀 접시에 아주 예쁘게 담겨 나왔다. 값은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 적절했다. 목마르던 차에 몇 잔이나 냉커피를 마셨는지 모르겠다.

 

일본은 왜 미국에 종속되기를 자처할까?

 

우리나라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고 기득권 세력이 일제강점기 시절 친일파의 후손이니 기득권 유지를 위해 미국에 스스로 종속적인 나라가 되려고 한다고 억지로나마 이해할 수 있는데, 왜 일본은 스스로 굴욕적인 종속을 자처할까? 맥코맥의 분석에 따르면 일본은 구미에 대한 혐오감도 있지만 열등감에 따른 경외심도 갖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시아의 다른 민족에 대해에서는 우월감을 갖고 있다.

 

A급 전범인 일본 왕 히로히또는 신헌법이 시행되자 미국에게 일본의 안전보장을 맡긴다.”고 노골적으로 맥아더에게 말했고 미국의 반공파들과 직접적인 통로를 만들어 강화조약과 안보조약 등 중요한 정책 체결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의 거대기업을 배후로 반공 세력이 로비를 벌여 전범들과 관료들이 공동으로 재벌을 부활하고 재군비정책을 벌여 미일관계를 지탱해 왔다. 이러한 공모관계로 형성된 속국 관계가 현재 소련이 붕괴하고 중국이 자본주의화 되어가는 현재까지 전 분야에 지배해 왔다고 한다.

 

한편 미국은 냉전 초기 아시아 전략에서 일본을 서방에서 확보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 그래서 미국은 미국 주도 아래에 일본과 군사적으로 일체화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일본을 이웃나라와 우호적으로 지낼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 지역 긴장이 커지고 그 결과 미군기지를 유지하고 군비를 확충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오키나와를 일본에 복귀시켰으나 동중국해의 센까쿠는 입법, 사법, 행정의 삼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한(시정권)만 넘겨 영토분쟁을 야기했다. 뿐만 아니라 독도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영토분쟁은 미군의 오키나와 주둔을 일본이 더 받아들이게 하고 미국에 더 오래 의존하도록 미군기지의 주둔을 정당화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곧 중일과 한일관계의 지속적인 분쟁은 일본을 미국의 속국 자리에 가두게 만드는 것이다. 일본은 분쟁을 위한 외교적 노력보다는 미일 안보조약에 근거한 일본의 시정권 아래에 있는 영토가 무력공격을 받았을 경우 미군이 일본을 지키도록 규정한 조항에 의지하고 있다.

 

일본은 전후부터 지금까지 집단자위권과 중국 위협론을 근거로 미군이 오키나와에 주둔하는 전체 경비의 3/4를 부담하고 후텐마 기지 이전 비용도 일본이 부담하는 등 오키나와 군사기지를 강화하며 중국을 봉쇄하는 구조를 건설하여 스스로 미국에 협력하는 속국으로 전락했다.

 

조선인 위령탑이 있는 평화기념공원



 

이토만시(糸滿市)에 속하는 오키나와 남부 끝자락 바닷가에 있는 평화기념공원에 들렸다. 공원은 매우 넓게 조성되어 있다. 오키나와 전투 종결 50주년을 기념하여 1995623일에 건립된 이 공원은 이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23만여 명의 모든 사람을 추도하고 영혼을 위로하면서 평화의 귀중함을 일깨우고 세계평화를 위해 만들어졌다.

 

오키나와는 일본에서 유일하게 지상전이 벌어진 곳으로 수많은 목숨을 잃고 문화유산이 파괴된 곳이다. 공원 내 평화의 초석에는 평화의 불이 켜져 있는데 이 불은 오키나와 전투 당시 최초 상륙지였던 곳에서 채화한 것과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나누어 받은 것을 합친 것이라고 한다.


 

또한 검은 비가 빼곡히 서 있는데 여기에 비참한 전쟁의 체험을 후세에게 바르게 전하기 위해 국적과 신분을 불문하고 전투에서 목숨을 잃은 모든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는 조선인을 위한 위령공원도 따로 있다. 만여 명이 넘는 조선인이 희생되었지만 20146월 현재 평화의 초석에 이름이 새겨진 조선인은 남북한 합해 447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굳이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구분해야 했을까? 나머지는 아직도 이름조차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