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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 인장, “절하고 절한다[拜拜]”

국립고궁박물관, 수장고 속 “왕실유물 이야기”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국립고궁박물관에는 조선 왕실에서 쓴 다양한 인장(印章)들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인장에는 엄격하게 정제된 격식에 따라 만든 국가 업무용 국새 또는 관인이나 의례용 어보도 있지만, 한 개인의 인격과 개성을 풍부하게 담아 만든 사인(私印)도 있습니다. 왕을 비롯한 왕실 가족도 시(詩書畵)와 같은 예술을 감상하고 나아가 스스로 예술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개성을 표출하려는 욕구가 있었고, 그 하나로 다양한 사인을 새겨 썼던 것이지요. 이들 사인은 장서나 편지 끝, 서예나 그림 작품에 자신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1898)도 많은 인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원 철폐령, 통상 거부 정책 등 정치가로 유명한 인물이지만, 개인적으로는 글씨와 그림에 능한 예술가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난 그림은 대원군의 호인 석파(石坡)’를 따서 석파란이라고도 불립니다. 당시 너도나도 대원군의 글씨와 난 그림을 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대원군은 매우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작품에는 자신을 나타내는 다양한 인장을 찍었습니다.

 

대원군 인장 중 오개삽입인(五個揷入印)’이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인장은 재료의 한 면을 인면으로 삼아 나타내고자 하는 글자나 도형을 새겨 만들지만, 이 인장은 한 면이 뚫린 정육면체 모양으로 만들어 크기순으로 포개지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가장 안쪽의 작은 인장은 여섯 면, 그 밖의 4개는 뚫린 면을 제외한 다섯 면에 여러 가지 인문을 새겨 넣었습니다.


 


가장 작은 인장은 한 변이 1.5cm에 불과합니다. 10원 주화의 지름이 1.8cm이니 그 위에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의 크기지요. 작은 인장에는 편지를 봉한다는 뜻인 호봉(護封)’, 편지의 끝에 쓰는 말인 절하고 절한다[拜拜]’ 등의 말이 쓰여 있습니다. 한편 바깥쪽의 가장 큰 인장은 한 변의 길이가 3.5cm 정도이며 매화 핀 누각에서 봄을 나고, 연꽃 핀 정자에서 여름을 보내며 스스로 즐거워할 뿐[梅閣留春荷亭銷夏自娛而已]’ 등의 글귀가 새겨져 있는데, 서화 작품에 찍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파란만장했던 대원군의 생애는 그의 예술작품에도 투영되었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흥선대원군 인장은 그가 실각한 후 만년(70대 초반)에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인장에 새겨진 다음 글귀가 세파에 지친 인간 이하응의 솔직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남이 나의 진실을 혐오할까 두렵다[畏人嫌我眞].”  

 

                                                                                           박경지(유물과학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