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 속풀이에서는 지난 7월 1~2일 열여덟 번째로 가졌던<한ㆍ중전통음악 학술 및 실연교류회>의 개최 배경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이러한 교류행사가 시작된 계기는 1991년도로 죽(竹)의 장막이었던 중국 연변의 예술대학에서 민족성악을 전공했던 전화자 교수가
한국으로 유학을 오면서 연변의 음악상황을 알려주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이야기, 즉 연변에 전통음악을 공부하는 예술학교가 있다는 점, 전통민요와
판소리, 가야금이나 피리, 장쇄납, 저대, 해금과 같은 전통악기들을 배우는 학생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했다.
또 김진 교수를 비롯하여
피리와 퉁소, 단소와 해금, 작곡이나 이론 등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이야기, 특히 가야금산조의 창시자로 알려진 김창조의 제자 안기옥에게 김진이
배운 산조를 연변예술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었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남쪽에서 전승되어 온 김창조-한성기-김죽파의 가야금 산조와
김창조-안기옥-김진으로 이어진 북쪽의 가야금 산조는 상호 어떠한 모습일까 하는 점들도 관심의 대상이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에
더하여 전통음악을 가르치는 대학뿐이 아니라, <조선족예술단>이라는 연주단체가 힘겹게 민족의 음악을 지켜가고 있다는 사실도 전해
들었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그들이 연주하는 악기는 어떤 형태일까? 우리와 같은 악기일까? 북한의 악기를 그대로 사용할까? 아니면 중국의 영향을 받아 이러한 악기들을
개량해서 쓰고 있을까? 또한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기악 교수들의 계보는 어떠할까?
그곳은 북쪽이니까 북방 고구려의 악기인 거문고가
그곳에서 활발하게 연주되고 있을까? 또한 노래는 어떤 노래들을 어떠한 창법으로 부르고 있으며 각 지방의 민요, 특히 함경도나 평안도의
소리라든가, 판소리의 특징을 어떠한 방법으로 표출하고 있을까? 또한 춤은 어떨까?
모든 것이 궁굼하고 확인하고 싶은 충동만이
커져갔다. 그럴 때마다 전화자 교수를 붙들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만날 때마다 집요하게 물어보는 나에게 그는 이렇게 권고하는 것이었다. “동무,
그렇게 묻지만 말고 직접 가서 보고 오기오.”
그렇다. 한번 방문해 보는 것이 좋겠다. 백번 듣는 것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것이 최상의 방법이라는 생각을 굳히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그리고는 곧바로 방문 준비에 들어갔다. 당시 나는 단국대 국악과 교수로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충남국악관현악단의 상임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을 때여서 대학의 교강사들이나 악단의 단원들, 그리고 주위의 명인, 명창, 명무들과
접촉하기가 용이하였던 것이다.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직접 방문하는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당시 뜻을 함께 한
단원들이 16명이 되었다. 서한범을 단장으로 거문고의 황득주(작고), 해금의 조주우, 대금에 홍도후(작고), 경기소리에 김금숙, 춤에 김영숙
등이 연변예술학원의 초청장을 받아들고 1991년 여름, 홍콩으로 가서 북경-장춘을 거쳐 캄캄한 밤에 연길 공항에 내린 것이다. 공산국가를 처음
방문하는 나와 단원들은 무척이나 긴장을 했던 것은 사실이나 학교 측에서 사무직원 한 사람을 북경으로 파견하여 우리를 안내해 주었기에 큰 위안이
되었다.
공항에는 그 동안 편지와 전화로 접촉해 왔던 대학의 정준갑 부학장 외 여러분의 교수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아침에 벽산호텔에서 눈을 뜨고 창문을 열어보니, 앞 건물에는 <공산당 0000>기관명이 쓰여 있고, 주차장에는 평양 번호판을 달고
있는 승용차들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와 이곳이 중국땅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했다. 곧이어 정준갑 부학장의 안내로 학교에서 보내준 작은 버스를 타고
대학을 처음으로 방문하게 된 날, 우리는 거리의 풍경에서, 사람들의 표정이나 언어에서, 그리고 복장이나 복색 등에서 새로운 분위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우리가 방문했던 대학의 공식명칭은 <길림예술학원 연변분원(吉林藝術學院 延邊分院)>이란 곳이었다. 버스에서
내리니 김삼진 원장을 비롯하여 공산당 서기, 3인의 부학장, 원로 교수님들, 가야금의 김진교수, 작곡의 방용철교수, 피리의 김석산교수, 해금의
이일남 교수가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이었다. 그때의 그 모습은 지금도 가슴속에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하다.
25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은 이분들의 제자들인 리훈 학장을 위시하여, 김성삼, 신광호, 박춘희, 남희철, 최성룡 등 젊은 교수들로 바뀌었으니 새삼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 제18회 교류의식이 끝나고 난 직후, 민족음악의 산실-연변예술학원에서는 11절목을 준비해
주었다. 기합합주로 <백두의 넋>, 남도민요로 <진도아리랑>과 <진달래>를 박은연의 창으로 들었고, 리군의
대피리 독주 <룡강타령>, 신광호의 신민요 <압록강2천>과 <여랑수레 령넘어가네>, 박학철 리명숙의 해금 2중주
<능수버들>, 김순희의 경기민요 <태평가>와 <해란강전설>들이었다.
또 주광호, 안예화 등의
목관4중주로 <새봄과 종다리> 리홍관의 서도민요 <긴난봉가> 외, 리수련의 옥류금독주 <도라지>, 박춘희의
신민요 <비단짜는 처녀>와 <일하기도 좋고 살기좋은 나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변대학 예술학원 교학실천 예술단 민족악단의
기악합주 로 <옹헤야> 등이었다.
이러한 연주곡을 감상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의 뿌리가 하나라는 점을
확인하였고, 그래서 우리의 감정과 정신이 녹아있는 민족음악을 함께 지켜가야 한다는 의지를 더욱 굳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고 자부하고 있다.
이러한 교류활동에 더 많은 음악인들과 후원자들이 동참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