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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똥 누는 놈 주저앉히고” 놀보의 심술대목

[국악 속풀이 305]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조선조 후기, <흥보가>를 잘 불렀던 명창으로 권삼득, 염계달, 문석준의 이름이 전해지는데, 문석준은 궤를 떨어 돈과 쌀을 쏟아내는 대목을 직접 짜 넣었고 잘 불렀다는 이야기, 한송학이나 정창업, 정흥순, 최상준도 유명한 명창이었는데, 특히 정창업의 소리는 서편제 소리로 고종 때 5명창의 한 사람이었던 김창환에게 이어졌다는 이야기를 했다.

 

여기서 5명창이란 1900년 전후에 이름을 날렸던 김창환, 송만갑, 이동백, 김창룡, 정정렬 등을 가리키는데 특히, 김창환의 더늠은 제비가 박씨를 물고 흥보집까지 날아오는 과정, 즉 제비노정기였다는 이야기, 이 대목은 김창환의 제자뿐 아니라, 동편제 소리꾼들도 그의 더늠으로 불러왔다는 이야기, 김창환의 흥보가는 김봉학, 오수암, 박지홍을 통하여 정광수, 박초월, 박동진에게 전해 졌다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송만갑의 더늠은 박타령이었고 동편제 소리는 기교보다는 발성 자체가 힘차고 꿋꿋한 소리제로 그 계보는 송흥록으로부터 시작하여 송광록-송우룡-송만갑-김정문-박녹주로 이어졌고, 박녹주는 김소희, 박귀희, 한애순, 성우향, 박초선, 조상현 외에 수많은 판소리 명창들에게 전해져 풍성한 결실을 맺었다는 점, 박녹주의 <흥보가>에서 놀보 박타는 대목이 생략되어 있는 것은 재담과 놀이패들의 잡가 대목이 많아서 이를 꺼려한 이유라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흥보가 중에서 잘 알려진 눈 대목들을 모아 사설의 이해와 함께 그 속에 담겨진 멋을 감상해 보기로 하겠다.



 앞에서 흥보가의 계보를 언급했듯이, 송만갑의 소리는 장판개, 김정문, 박봉래 등에게 전해 졌는데, 장판개의 소리는 전승이 끊어졌고, 김정문과 박봉래의 소리만이 전해지고 있으며, 김정문의 소리는 박녹주와 강도근 등에게 전승되었다.

 

특히 박녹주로부터 흥보가를 배운 제자들이 많아 그의 소리가 현재까지도 전국적으로 널리 불리고 있는 것이다. 송만갑의 제자 박봉래는 그의 동생 박봉술에게 전하였는바, 박봉술은 그의 형으로부터 배운 흥보가를 지구레코드사에서 녹음하여 음반으로 남겨두어 방송이나 교육자료로 널리 소개되고 있다.

 

이번 호에서는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송만갑-김정문-박녹주-박송희-정순임으로 이어지는 흥보가의 사설을 중심으로 하고, 여기에 박봉술의 흥보가를 참고하면서 유명한 눈 대목을 감상해 보기로 하겠다.

 

판소리 흥보가의 시작 역시 대뜸 소리부터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타 다른 소리처럼 아니리로 시작한다. 아니리라고 하는 말은 가락이나 장단에 얹어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억양을 넣어 말로 하는 대사부분을 가리킨다.


 

완창이 아닌 토막소리의 경우라도 대부분은 처음부터 소리로 시작하지 않고 대사로 극의 이야기를 전하거나 상황을 알려주어 청중들에게 흥미를 더해주고 극의 상황이나 내용을 소개한 후에, 소리를 하게 되는 것이다. 아니리로 시작되는 판소리 흥보가의 시작부분을 따라가 보기로 한다(이 사설은 정순임의 제자 김예진 양이 제공해 준 사설집에 의한 것이며 발음 그대로 옮긴 것이기에 맞춘법이 표준어와 다른 부분이 있다).

 

아동방(我東方)이 군자지국(君子之國)이요. 예의지방(禮儀之方)이라. 십실지읍(十室之邑)에도 충신이 있고, 칠세지아이도 효도를 일삼으니 어찌 불량헌 사람이 있으리요마는, 우리나라 경상, 전라, 충청, 삼도 어름에 놀보 형제가 사는디, 놀보는 형이요, 흥보는 아우라. 놀보란 놈이 본대 심술이 많은데다가 그 착한 동생을 쫓아낼 생각으로 밤낮 집안에 들어 앉어 심술 공부를 허는디, 꼭 이렇게 허것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흥보가의 시작부분을 <아니리>로 열고 있다. 대체로 아니리 부분은 본격적으로 창을 하기 전의 도입부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어려운 말이 나오지 않고 쉽게 이해가 되는 내용이 많다. 이 부분이 끝나면서 놀부의 심술대목을 자진모리 장단에 맞추어 창으로 부르게 된다. 이 대목은 사설도 재미있거니와 흥겹고 빠른 자진모리에 가락을 얹어서 어깨춤이 저절로 나오는 흥미있는 눈 대목이다.

 

놀보의 심술 대목 사설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대장군방(大將軍方) 벌목(伐木)허고, 삼살방(三煞方)에 이사권고, 오귀방(五鬼方)에다 집을 짓고, 불 붙는디 부채질, 호박에다 말뚝 박고, 길가는 과객(過客)양반 재울 듯이 붙들었다 해가 지며는 내어 쫓고, 초란이 보며는 딴 낯 짓고, 거사 보면 소구 도적, 의원 보면 침 도적질, 양반 보며는 관을 찢고, 다 큰 큰애기 겁탈, 수절과부는 모함잡고, 우는 애기 발가락 빨리고, 똥 누는 놈 주저 앉히고, 제주병(祭酒甁)에 오줌싸고, 사주병(蛇酒甁) 비상 넣고, 새 망건(網巾) 편자 끊고, 새 각 보며는 땀띠 떼고, 앉은뱅이는 태껸, 곱사동이는 되집아 놓고, 봉사는 똥칠허고, 애 밴 부인은 배를 차고, 길가에 허방 놓고, 옹기전에다 말 달리기, 비단전에다 물총 놓고, 이놈의 심사가 이래노니 삼강(三綱)을 아느냐? 오륜(五倫)을 아느냐? 이런 제기를 붙을 놈이


위 놀보 심술대목에는 온갖 못된 짓을 하는 놀보의 행위가 그림을 그리듯이 잘 묘사되고 있다. 대장군방이나 삼살방, 오귀방 등은 8방위 중에서도 나쁜 방위이며 불길하다는 방위인데, 이러한 곳에 집을 짓게 하거나 이사를 권하는 심보는 보통사람으로는 행하기 어려운 심술이다. 또한 길가에 허방을 놓는다는 말은 땅을 판 뒤에 위에다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놓고 풀잎이나 흙으로 살짝 덮어 지나가는 사람을 빠지게 하는 놀이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못된 마음을 강조하는 내용이다.

 

이 놀부의 심술대목은 박붕술이 부르는 대목과 대부분 유사하지만, 박봉술 창의 시작은놀보 심술 볼작시면 술 잘 먹고 쌈 잘하기로 시작해서 대장군방으로 이어진다. 또한, 중간에도 돈 세난듸 말 묻기와 글 쓰난듸 옆 쑤시고등의 사설이 들어 있다. 그런가 하면 끝 부분도 이런 제기를 붙을 놈과 다른 표현인 이런 난장을 맞을 놈이!’로 되어 있어서 부분적으로 사설의 차이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