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흥보가의 시작은 여타 다른 소리처럼 아니리로 시작하는데, 이것은 가락이나 장단에 얹어 부르는 소리가 아니라, 억양을 넣어 말로 하는 대사라는 이야기, 그래서 완창이거나 또는 토막소리의 경우라도 대부분은 아니리로 시작하면서 내용을 전하거나 상황을 알려준다는 이야기를 했다.
흥보가의 시작부분은“아동방(我東方)이 군자지국(君子之國)이요. 예의지방(禮儀之方)이라.”로 시작되는 아니리에 이어 놀부의 심술대목이 나오는데, 이 대목은 사설도 재미있거니와 흥겹고 빠른 자진모리에 가락을 얹어서 어깨춤이 저절로 나오는 흥미있는 대목이라는 이야기, 놀보 심술대목에는 온갖 못된 짓을 하는 놀보의 행위가 그림 그리듯 잘 묘사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이 대목은 박붕술이 부르는 것과 대부분 유사하지만, 박봉술 창의 시작은‘놀보 심술 볼작시면 술 잘 먹고 쌈 잘하기’로 시작한다는 점, 중간에도‘돈 세난듸 말 묻기와 글 쓰난듸 옆 쑤시고’등의 사설이 들어 있다는 점, 끝 부분도‘이런 제기를 붙을 놈’대신에‘이런 난장을 맞을 놈이!’로 되어 있어서 같은 흥보가라고 해도 전승계보에 따라서, 또는 명창이나 창자에 따라서는 부분적으로 사설이나 가락, 장단에 있어서 차이를 보인다는 이야기 등을 덧붙였다.
이번 주에는 흥보가 좋아라 부르는 돈타령 이야기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굶고 있는 식솔들을 보면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게 된 흥부가 드디어 어떤 결심을 하고 집을 나서려고 한다. 관가를 찾아가 환자섬이나 탈 생각으로 나서는 것이다. 환자섬이란, 관가에서 먹을 것이 떨어진 백성들을 상대로 꾸어주는 곡식이다. 그러니까 곡식을 차용한 사람은 가을에 추수를 해서는 이자를 더해서 갚는다는 조건을 지켜야 한다.
먹을 식량이 떨어지고, 돈이 없으니 양반 신분이라 해도 당당함을 드러내지 못하는 흥보의 처지가 안쓰럽다. 예나 지금이나 재물이 없는 사람들은 어깨가 늘어지고 매사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일지도 모른다.
돈이란 사람이 살아나가는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대상이다. 궁핍한 사람들은 최소한의 생활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돈이고, 그렇다고 잘 사는 사람들은 돈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어찌 보면 더욱 더 많이 원하게 되는 것이 돈일지도 모른다.
돈 때문에 부모 자식 사이에 다툼이 생기고, 돈 때문에 친구와 갈라서며 돈 때문에 이웃과 원수가 되는 그야말로 돈과 관련해서 웃고 울고 하는 이야기는 몇 날 며칠을 해도 끝이 없을 것이다.
그 옛날 가난의 상징이었던 흥보도 많은 식솔을 거느리고 돈 때문에 이만 저만 고생이 아니었을 것은 미루어 짐작이 된다. 가족을 위해 중대한 결심을 하고 관가를 찾아 들어가는 흥보의 입장을 나타내는 <아니리>로 읊는 대사가 재미를 더한다.
“흥보가 들어가다 별안간 걱정이 생겼지, 내가 아무리 궁수남아(窮手男兒)가 되었을망정, 반남(潘南)박가(朴家) 양반인디, 호방을 보고 ‘허게’를 허나, 존경을 허나, 아서라. 내가 말은 허되, 끝은 짓지 말고 웃음으로 닦을 수밖에 도리가 없지. 질청을 들어가니 호방이 문을 열고 나와
‘박생원 들어오시오’‘호방 뵌지 오래군. 하하하’
‘어찌 오셨소?’‘양도(糧道)가 부족해서 환자 한 섬만 꾸어주면 가을에는 착실히 갚을 터이니 호방 생각은 어떨는지 모르제, 허허허허’
‘박생원, 그러지 말고 품이나 하나 팔아 보실라요?’
‘아 돈 생길 품이라면 팔고 말고 허것는가?’
‘다름이 아니라 우리 골 좌수가 병영영문(兵營營門)에 잡혔는데, 대신 가서 곤장 열대만 맞으면 한 대에 석냥씩 서른 냥은 꼽아 논 돈이요. 마삯까지 닷냥 제지(除之)했으니 그 품 하나 팔아 보시오’
흥보가 이러한 제의를 받고 돈에 대한 욕망, 매에 대한 두려움으로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다가 결국은 돈을 벌기로 마음을 굳힌다.
판소리속의 아니리는 “흥부가 이만허고 서있더니 매 맞으러 가는 놈이 말 타고 갈 것까지야 없고, 내 이 두 정강이 말로 다녀 올테니 그 돈 닷냥을 나를 주지”로 되어 있다. 아전(衙前)이 돈 닷냥을 내어주니 흥보가 받아들고 좋아라 돈 타령을 부르게 되는데, 이 대목도 <흥부가> 중에서는 눈대목으로 꼽을 만큼 재미있고 그래서 널리 불리고 있는 것이다. 감상해 보기로 한다.
“얼씨구나 좋구나, 돈 봐라, 돈, 돈 봐라, 돈 돈, 돈 돈 돈 돈 돈 돈봐라 돈, 이 돈을 눈에 대고 보면 삼강오륜이 다 보이고, 조금 있다가 떼고 보면 삼강오륜이 끊어져도 보이난건 돈 밖에 또 있느냐? 돈, 돈, 돈, 돈. 떡국집으로 들어를 가서 떡국 한 푼어치를 사서 먹고, 막걸리집으로 들어를 가서 막걸리 두 푼어치를 사서먹고, 어깨를 느리우고 죽통을 빼뜨리고 대장부 한 걸음에 엽전 서른 닷냥이 들어를 온다”
흥보가 막걸리 한 잔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서 집안 어른이 어디 갔다가 들어오는데도 영접하지 않는다고 호기를 부리자, 흥보 부인이 나오며 돈을 보자고 하니 흥보가 또 다시 돈타령을 시작한다.
“잘난 사람도 못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맹상군(孟嘗君)의 술래바퀴처럼 둥굴둥굴 생긴 돈, 생살지권(生殺之權)을 가진 돈, 부귀공명이 붙은 돈, 이놈의 돈아, 아나 돈아, 어디 갔다 이제 오느냐? 얼씨구나 절씨구, 돈, 돈, 돈, 돈돈, 돈돈, 돈 봐라”
과거에도 돈의 위력은 대단했던 모양이다. 부귀와 공명에도 돈이 붙어있고, 더구나 사람을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권능을 지니고 있는 것이 돈이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그 위력이 오늘이나 다름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