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정관념은 경험의 산물이다. 물체가 아래로 떨어지는 것만 보면서 자란 사람에게는 허공에 떠 있는 지구가 신기하게 여겨진다. 그러나 로케트를 타고 우주를 날아다니는 만화 영화의 주인공 ‘우주 소년 아톰’이 볼 때에는 우주 곳곳에서 별들과 지구가 허공에 떠 있는 모습이 당연하게 생각될 것이다.
“경험은 가장 좋은 스승이다”라는 말은 대개는 맞지만 경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때로는 답답하다. 현대건설에서 성공하여 회장 자리에까지 올랐던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청와대 참모회의에서 정책을 결정하면서 “내가 해 봐서 잘 아는데...”라는 말로 참모의 의견을 무시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경험에 근거한 고정관념의 위험성이 어리석은 사람들의 전유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재미있는 일화이다.
새로운 사상이나 새로운 관점은 경험의 한계를 벗어날 줄 아는 몇몇 사람에게서 시작된다. “지구는 살아 있다”는 생각을 이론으로 정립한 사람은 러브록(J. Lovelock)이라는 영국의 과학자이다. 그는 미국 항공 우주국의 화성 탐사 계획에 참여할 정도로 훌륭한 과학자였는데, 1969년에 자신의 생각을 ‘가이아 가설’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였다.
가이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으로서 혼돈에서 태어나서 그 밖의 모든 신을 탄생시켰다고 한다. 러브록 이전에 과학자들은 지구는 생명이 없는 암석과 대기, 물, 흙 등이 모인 물질 덩어리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러브록은 지구를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살아 있는 하나의 유기체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러브록에 의하면 지구라는 하나의 생명체는 단순히 주변 환경에 적응하기만 하는 소극적인 존재가 아니며, 자연 환경을 변화시키면서 진화를 거듭하는 능동적인 존재이다. 지구가 하나의 생명체로서 살아 있는 존재라고 보는 러브록의 주장은, 인간만이 영혼을 가진 생명체라고 보는 서구의 기독교적 자연관과는 화해하기 어렵다. 기독교적 전통에 의하면, 자연은 인간처럼 생명체라고 볼 수는 없고 단지 물질의 집합체일 뿐이다.
그러나 동양 사상에서는 가이아 가설이 새롭지 않다. 예로부터 우리는 대지를 지모신(地母神)이라고 불렀으며, 땅이란 단순한 물질이 아니라 기(氣)를 가진 존재로서 인간이 태어난 곳, 인간이 발붙이고 사는 곳, 인간이 죽으면 돌아갈 곳이라는 생각이 강했다. 우리에게 자연은 신과 같은 성스러운 존재였다. 땅에는 지신(地神)이 있으며, 산에는 산신령, 나무에는 목신이 있다고 믿었다. 큰 나무를 벨 때에는 고사까지 지냈다. 자연 파괴 현상이 자연을 객관적인 물질로만 보는 서양에서 시작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구의 나이는 46억 살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생물체가 처음 나타난 것은 지금부터 30억 년 전으로 추정된다. 처음에는 바다에서 미생물인 조류(藻類)가 나타났으며, 이어서 삼엽충 같은 무척추동물, 어류, 육지의 식물, 파충류, 조류(鳥類)가 등장했다. 인류가 속한 포유류가 번성한 것은 지금부터 6,500만 년 전으로, 지구 역사에서 보면 지극히 최근의 일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공룡은 그리스 말로 ‘무서운 도마뱀’이라는 뜻이며 가장 큰 파충류였다. 공룡은 2억 년 전 중생대에 나타나 6,500만 년 전에 대사멸기라고 부르는 비교적 단기간 동안에 사라졌다. 공룡 중에서 가장 큰 종은 브라키오사우루스(Brachiosaurus)인데 키가 12 미터나 되고 몸무게는 85 톤이라고 하니 5층 건물을 연상하면 된다. 이들은 덩치가 너무 크고 몸을 지탱하기가 힘들어서, 땅에서는 살지 못하고 호수에 몸을 담그고 부력을 받아 움직이면서 수초를 먹었다고 한다. 물론 공룡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지 화석으로 남아 있는 뼈와 발자국, 알 등을 분석하여 추측할 뿐이다.
공룡이 왜 사라졌는지 그 원인에 대한 이론이 분분하지만, 흥미로운 것은 공룡이 사라질 무렵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의 95퍼센트가 죽었다는 사실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여러 가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직경 10킬로미터 이상의 큰 유성 또는 혜성의 핵과 같은 물체가 지구와 부딪혔다는 충돌설이다.
이러한 충돌은 엄청난 양의 먼지를 일으켜 햇빛을 차단했고 식물은 광합성을 할 수 없었다. 식물이 죽자 식물을 먹이로 하는 동물도 죽게 된 것이다. 흔히들 공룡을 덩치는 크고 머리는 작아서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멸한 대표적인 종으로 간주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고정 관념이다. 공룡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동물’이라고 비웃는 인류의 생존 기간은 겨우 200만 년으로서 공룡이 산 기간의 67분의 1에 불과하다.
지구의 역사에서 생물의 대멸종은 모두 다섯 차례가 있었다고 한다. 최근에 지구 생태계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과학과 기술의 눈부신 발전으로 문명이 발달하고 인구가 증가하게 되었다.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자 인류는 지구생태계에서 상호 의존하며 함께 살아가는 다른 동식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고 있다.
최근 지구 온난화, 사막화, 오존층 파괴, 산성비, 환경 호르몬, 방사능 오염 등등 지구 차원의 환경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인류는 환경오염으로 인하여 자신은 물론 다른 생물종까지도 멸종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인류세(人類世, Anthropocene)’라는 새로운 단어가 있다. 지질학적으로 구분하면 현재의 지질 연대는 1만 2000년 전부터 시작된 홀로세(Holocene)이다. 네델란드의 과학자 파울 크뤼첸은 2000년에 “18세기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오존층에 구멍이 나기 시작하면서 지구는 새로운 지질 연대로 접어들었다”며 “인류 전체가 지구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므로 현 지질시대를 인류세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학자들은 인류세에 접어들면서 생물종이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고 우려한다. 일부 학자들은 현재 지구에서 6차 대멸종이 진행 중이라고 분석한다. 미국 생물다양성센터는 “우리는 6,500만 년 전 공룡들의 멸종 이래로 가장 심각한 대멸종 사태에 직면해 있다.”며 “하루에도 10여 종이 멸종하는 가운데 현재 대멸종이 진행되는 속도는 과거 대멸종의 1,000배에서 1만 배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 센터는 향후 50년 내에 현존 생물종의 30%에서 50%가 멸종할 우려가 있다는 전망을 발표했다.
인류가 핵전쟁을 일으키거나 또는 지구온난화나 오존층 파괴 등의 지구환경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생물종으로서의 인류는 100년 안에 멸종할지도 모른다. 인류는 지구상에서 약 200만년 동안 존재하다가 사라질 가능성을 부인할 수 없다. 인간이 무려 1억 3500만년 동안이나 지구에서 살았던 공룡을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여 멸종했다.”고 비웃는다는 것은 당치도 않은 일이다.
인류가 멸종에까지 이르지는 않아도, 하나뿐인 지구가 너무 오염되어 ‘거주 불능’ 판정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다른 별로 이사 가서 살 수는 없다. 태양계 내에는 사람이 살 수 있는 행성이 없다. 가장 가까운 별은 지구에서 4.3광년 떨어져 있다. 빛의 속도로 가더라고 4년이 넘게 걸리는데, 초속 30킬로미터의 우주선을 타고 간다면 43,000년이 걸린다.
지구가 오염되어도 인류가 다른 별로 이주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싫으나 좋으나 우리는 이 지구에서 함께 살아야 한다. 우주의 한 구석에 외로이 떠 있는 지구를 오염시키지 않고 잘 보존하는 일은 모든 인류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