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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풍경

다양성의 도시 샌프란시스코를가다.<4>

샌프란시스코한인회를 찾아서

우리문화신문=양인선 기자]  백여 년 전 한국이 일제 식민치하에서 신음할 때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이주해 와있던 한국인들은 조국광복을 위해 노동으로 번 돈을 모아 독립자금으로 상해 임시정부에 송금했다그리고 전명운, 장인환 같은 분들은 직접 독립투사로 활동한 분들이다. 이분들의 발자취를 찾아  지난 4월 중순 샌프란시스코한인회를 방문했다.


샌프란시스코 한인회는 꽤 넓은 건물에 다양한 자료와 사무실을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회의실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장인환, 전명운 의사의 동상을 마주하게 되니 가슴이 뭉클했다.  1908년 3월 23일 오전 9시 30분, 샌프란시스코 페리 부두 정거장 앞에서 세 발의 총성이 울려 한국민족운동사상 첫 의열투쟁이 만천하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장인환(張仁煥, 1876~1930)과 전명운(田明雲, 1884~1947) 두 의사는 한국정부의 외교고문이라는 직함을 가지고 일제 한국침략의 앞잡이로 광분하던 미국인 스티븐스(durham w. steve ns)를 총살 응징한 것이다.


한편, 이곳 한인회 벽면에는 21세기를 맞이하며 선열들이 후손들에게 당부하는 애절한 글이 실려있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 카리포니아

마즈막으로 우리에게 남아있는

단 하나의 고향 카리포니아

우리자식들이 어렵게 어렵게 뿌리를 내린 땅

오천년의 얼을 등에 업고 태평양 넘어 여기 와서

우리는 이제 이천년의 새 태양을 가슴에 안고

한 점 한도 없고 부끄럼도 없이 살다가

저 언덕아래 뼈를 묻어야할 땅

너희들아!

너희가 내린 뿌리위에 정직과 자유의 꽃을 피워

사람으로 살아 볼만한 세월

이십일 세기가 너희와 너희 후손들 앞에 오게 하라






선열들이 낯선 이국땅에 와서 어떠한 자세로 살아갔고 또 미래를 어떻게 살아가려는지를 잘 나타낸 글이라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한편 벽면에는 ‘1983년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 공원에서 열린 한미수교 100주년 기념행사사진도 걸려있었는데 한국문화와 전통을 잊지 않고 공동체를 잘 유지하고 살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중국인들은 한국인들보다 샌프란시스코에 더 일찍 건너왔다. 그들 역시 차별과 열악한 노동에 시달렸지만 오늘날 거대한 차이나타운을 건설했을 뿐 아니라 이곳의 경제권을 당차게 쥐고 있다. 또한 일본인들도 해마다 4월이면 저팬타운에서 벚꽃축제(실제 벚꽃은 없는 이름만 벚꽃축제)를 열어 자국을 홍보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에는 중국이나 일본에 견주어 다소 늦게 진출해서 인지 상권의 규모가 적지만 샌프란시스코 근교에 있는 생필품점인 국제수퍼마켓’ 같은 곳은 규모가 상상 외로 커서 놀랐다. 샌프란시스코에 이미 많은 교포와 유학생들이 많다는 반증이다.  중국이나 일본과 달리 일제침략이라는 고난의 역사를 겪은 한민족이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오늘의 샌프란시스코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는 동포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니 기쁘다. 동포들의 활약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