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 도쿄 이윤옥기자]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지난 23일(일) 오후 3시, 오사카의 끽차미술관(喫茶美術館)에서는 윤동주를 기리는 조촐한 모임이 있었다. 이날 모임의 취지는 윤동주가 한글로 시를 쓴다는 이유로 교토에서 ‘치안유지법’으로 잡혀 후쿠오카 형무소로 옮겨진 날을 기억하기 위한 자리였다.
윤동주가 후쿠오카 형무소로 잡혀간 것은 1943년 7월 14일로, 그 뒤 1945년 2월 16일 윤동주는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27살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잡혀갔을 때 까지 멀쩡하던 그가 형무소 안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에 대해 일본측 기술(記述)의 대부분은 “복역중 사망했다(服役中に死亡した)”라고 쓰고 있다. “왜 사망했는지?”에 대한 답이 없다.
하지만 그런 윤동주를 기억하는 일본인들의 모임이 있다. 2011년부터 모임을 가져 올해로 7년째를 맞이하는 이 모임은 ‘교토에서 후쿠오카로 잡혀간 윤동주를 기억하자’는 취지에서 만든 모임이다. 지난 23일 모임에서는 1부에 윤동주를 추모하는 노래 “새로운 길(新しい道)”과 “별을 노래하는 밤(星を数える夜)”을 가수 강석자가 불렀다.(피아노 유수향 씨)
이어 2부에서는 저널리스트인 나카무라 이루손(中村一成) 씨의 강연이 있었다. 시인의 꿈(사상)과 제국의 벽(감옥)"「詩人の夢(思想)と帝国の壁(獄)」"이라는 주제로 강연한 나카무라 이루손 씨는 재일동포 3세로 최근 극성을 부리는 일본인의 헤이트스피치(혐한시위), 조선고등학교의 수업료 재판 등에 대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얼핏들으면 윤동주와 직접 관련이 없어 보이지만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여전히 제국주의 행태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맨얼굴에 대한 고발이자 윤동주가 꿈꾸던 세상과는 동떨어진 작금의 일본의 실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였다. 강연 뒤에는 참석자들과 함께 다양한 이야기를 주제로 토론 시간을 가졌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우에노 미야코(上野都) 시인은 “유학생이던 윤동주 청년이 억울하게 옥중에서 죽어간 것은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그의 사후에도 여전히 일본 사회는 재일동포의 유무형 차별, 인권침해 등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언제든지 전쟁을 할 수 있는 분위기로 몰고 가는 현 아베 정권에 대한 위기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오늘 모임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다룬 것에 대해 전적으로 공감한다.”고 했다.
올해는 윤동주 탄생 100년을 맞는 해다. 순결한 27의 한국청년, 윤동주가 모국어인 한글로 시를 쓰다가 제국주의의 악명 높은 ‘치안유지법’에 걸려 후쿠오카 형무소로 끌려가던 날(7월 14일)도 오늘처럼 찜통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날이었을 것이다. 냉방이 잘된 고급 승용차가 아니라 소돼지나 실을 법한 좁고 더럽고 무더운 ‘죄수 수송차’를 타고 후쿠오카 형무소로 잡혀가던 윤동주를 생각하면 무더운 일본의 더위가 더욱 질식할 것처럼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