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춤의 민활성이나 용감성, 전투적 기백으로 보아 타지방과는 비교가 된다는 점, 여타의 다른 무용수들도 긴 손수건을 들고 장삼을 늘인 손목을 상하좌우로 피거나 젖히고 돌리기도 하는 손목 동작이 주가 되는 춤이라는 점, 이러한 춤사위는 함경도 지방 사람들의 용감한 성격에 어울리는 진취적인 형태라는 점 등을 이야기 하였다.
이번 주에는 셋째 마당, 퉁소 명수들의 음악놀이 관련 이야기가 되겠다.
함경도 지역의 축제마당에는 어김없이 퉁소가 등장한다. 특히 명절 때가 되면 마을마다 퉁소를 즐겨 불 정도로 이 악기가 일반화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각 마을을 대표하는 최고의 퉁소잽이들이 모여 겨루기 마당이 열리는가 하면, 오락적이고 즉흥적인 음악놀이, 즉 <음율(音律)마당>이 펼쳐졌는데, 이때에는 멀리 북천 지방까지 가서 명인들을 초빙해 오기도 한다는 것이다. 퉁소를 얼마나 좋아했는가 하는 점을 알게 한다.
<한국전통음악학회>와 중국의 연변예술대학은 해마다 전통음악에 관한 “학술 및 실연(實演)교류회”를 열어오고 있는데, 올해로 20회째를 맞고 있다. 주로 나와 함께 박문규, 정순임, 김수연, 정경옥, 유지숙, 이기옥, 이건자, 김병혜 등의 명창들이 참여하는 편이고, 각 대학 국악과 교수들도 악기연주며 논문발표를 위해 참여한다. 한 해도 거르지 않는 조혜영 교수를 비롯하여 약 30~40여명이 교류회에 참여해 오고 있다.
그런데 갈 때마다 느끼게 되는 사실은 함경도 지역에서 올라와 살고 있는 조선족 사회는 퉁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며 그 만큼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 놀라곤 한다. 퉁소 연주자가 희귀해 단절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의 상황과는 참으로 대조적이다. 특히 연길이나 훈춘 같은 조선족이 많은 지역에서는 자체적으로 <퉁소예술절>을 열 정도이다.
행사를 끝내고 백두산을 올라가다 보면 마을 어귀의 정자나무 아래라든지, 또는 관광객이 발걸음을 잠시 멈추는 곳에는 퉁소 연주자들이 모여 앉아 흥겨운 가락을 옮기고 있어 정겹게 보인다. 친정이 잘 살아야 시집간 딸도 어깨를 펴고 산다고 했는데, 반대로 친정집 보다 중국에 사는 동포사회에서 퉁소가 더욱 대접을 받고 있다. 퉁소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도 변화가 깃들기를 기대한다.
퉁소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나 더 소개한다. 10년도 넘었을 것이다.
연변에서의 연주회를 끝내고, 뒤풀이로 지역 음악인들과 저녁식사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괄괄한 함경도 말투의 한 촌로가 나에게 다가와 항의조로 “거 퉁소 부는 사람은 어찌 아이 왔습메? 퉁소소리 제일인데, 아쉽구만요. 우리 마을에서는 몽땅 퉁소를 불었단 말입네다.”라고 불평조로 털어놓는 것이었다. 기대를 하고 왔는데 퉁소 음악이 빠져 있으니 불편한 심기를 들어내는 것이다. 대답이 궁했던 기억이 있다. 연변지역에서라도 퉁소음악이 활성화 되어 있다는 점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함경도 지방의 옛 퉁소 명수들은 <애원성>이나 <아스랑가> 등 함경도 지방의 대표적인 민요를 많이 불었으나 기본적인 종목은 신아우였다. 신아우는 '신아위' ‘신아오’등으로도 불렸는데, 마당 위쪽에 퉁소잽이가 자리를 잡고 앉으면 청중들은 그의 주위를 에워싸고 앉을 정도였다고 하니 그 인기를 짐작할 수 있다.
신아우 음악은 그 선율이 활달하고 전투적이어서 용사들의 우렁찬 개선가와도 같이 들리며 연곡(連曲) 형태로 연주되었으며 신흥의 엄퉁소로 알려진 엄주팔 명인은 ‘시나위뒤풀이’를 최근까지 전승한 유명한 명인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들 민간 퉁소 명수들은 매우 뛰어난 예술적 재능으로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 주었는데, 그들의 주 활동 무대가 모두 마당놀이였다고 한다.
동선본이 이끄는 퉁소신아우 보존회의 정월대보름 행사는 퉁소의 음률놀이 다음으로 사자마당을 특별순서로 준비하여 신명나는 무대를 만들었다. 사자놀이, 함경도 사자놀이, 그 중에서도 북청의 사자놀이는 현재 국가무형문화재 예능종목으로 지정이 되어 있어 국가의 보호를 받고 있는 종목이다.
어린이들도 알고 있듯이 ‘사자’라고 하는 짐승은 동물의 왕으로 군림하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럴까? 북청을 비롯한 함경도 각 지방에서는 마을마다 사자탈을 만들고, 퉁소음악에 맞추어 가가호호 방문을 하면서 액운을 쫒아내고 가정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사자춤을 추는데, 춤사위나 퉁소반주 음악이 어울려 흥겨운 마당이 되고 있다.
공연 당일에는 사자 3마리가 등장하여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또는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면서 흥겹게 춤을 추어 객석으로부터 열띤 호흥을 받았다. 한참을 뛰놀던 사자들이 웬 일인지 춤을 멈추고, 무대 위에 쓰러져 버린 것이다. 이때 점받치로 등장한 사람이 앞에서도 잠깐 소개한 바 있는 김진무 라는 재담꾼이다.
그는 객석을 긴장시키며 쓰러져있는 사자의 몸을 이리 저리 만져보며 살피더니 이것은 침으로 고칠 병이 아니라고 처방을 내린다. 그러면서 사자 입에 봉투를 넣어 주어야 일어난다는 익살과 재담의 진단을 내리는 것이었다.
그의 말 한마디에 객석은 또 한 번 뒤집어졌다. 김진무의 점받치 역할, 곧 병을 고치는 의원(醫員) 역할은 4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그 만의 장기(長技)이고, 그를 위한 역할이 아닌가 한다. 김진무는 이미 80년대 중반, 전국민속 경연대회가 열렸을 당시, 북청사자놀이의 일원으로 참여를 한바 있고 그 때에도 그는 의원의 역할을 맡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