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병산은 일요일인 내일 카트만두로 오기 때문에 오늘은 하루 종일 자유 시간이었다. 내가 머무는 호텔이 있는 타말 지역은 수많은 호텔과 상점, 음식점 등이 모여 있는 시내 중심부다. 히말라야로 등산이나 트레킹 가는 사람들이 이곳 타말 거리에서 모든 준비물을 구입한다고 한다.
나는 등에 작은 가방을 매고서 혼자서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타말 거리를 구경하였다. 마침 주말이라서 수많은 사람들이 타말 거리로 모여들었다. 상점에서 파는 물건들은 각종 장신구, 향료, 기념품, 옷, 과일, 등산 장비, 차 종류 등등 다양하고 이국적이었지만 품질이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나는 물건은 사지 않고 그저 구경만 하면서 이리 저리 쏘다녔다.
예전에 나는 네팔의 구르카 용병이 매우 용맹하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오늘 우연히 거리를 지나다가 군장을 파는 상점에 구르카 용병의 사진이 마네킹 옆 벽에 걸려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사진에는 다음과 같이 영어로 쓰여 있었다.
“If man says he is not afraid of dying, he is either lying or he is Gurkha.”
(어떤 남자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면, 그는 거짓말을 하거나 또는 구르카이다.)
구르카 병사가 얼마나 용감한 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매우 흥미로운 문장이었다.
구르카 용병들의 무기는 ‘쿠크리’라고 부르는 단검이다. 쿠크리는 보통의 단검보다는 약간 긴 검인데 끝 부분이 휘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위 사진에 쿠크리 단검이 보인다. 구르카 용병은 특히 백병전에 강한데, 단검 하나로 수많은 적을 나무 가지 베듯이 쓰러뜨려서 세계에서 가장 사나운 용병이라는 칭호를 얻었다고 한다.
타말의 좁은 거리에는 릭샤와 택시가 다닐 수 있다. 릭샤는 인력거처럼 생겼는데, 운전사가 자전거 페달을 돌리고 뒷좌석에 두 사람이 탈 수 있다. 오토릭샤라고 해서 엔진이 달린 릭샤도 있다. 택시는 대우자동차에서 초기에 만들었던 티코 정도 크기인데 좁기는 해도 승객 3명이 탈 수 있다. 그런데 택시의 번호판이 아라비아 숫자와 비슷한데 모양이 이상하여 읽을 수가 없다. 예를 들어 아래 사진의 네 자리 택시 번호는 무엇이라고 생각되는가?
내 추측으로 택시 번호는 8044인 것 같다. 그러나 나중에 카트만두 식당에 걸려 있는 달력을 보면서 비교해 보니 위 택시의 번호는 4099 이다. 네팔 숫자는 아리비아 숫자와 상당히 달라서 헷갈린다. 네팔의 지폐에 표시된 숫자도 1자는 아라비아 숫자 9와 비슷해서 혼란스럽다. 그래서 호텔의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숫자로 인한 혼란을 막기 위하여 작년에 법이 통과되어 네팔 숫자를 사용하지 않고 아라비아 숫자만 쓰기로 했단다.
그렇지만 지폐에는 아직도 네팔 숫자로 표시되어 있다. 습관이란 쉽게 바뀌지 않아서 아직도 네팔 사람들은 두 가지 숫자 체계를 혼용한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아파트의 면적 표시를 제곱미터(m2)로 바꾸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도 ‘몇 평’이라고 말해야 아파트 넓이에 대한 개념이 들어올 것이다. 선진국인 미국 국민들이 국제 표준인 미터법을 받아들이지 않고 야드법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네팔 사람들을 크게 탓할 일도 아니다.
나는 모처럼 한가했기 때문에 호텔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사방으로 끝까지 갔다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식으로 하루를 보내었다. 아마도 약 6km 정도 걸은 것 같다. 두 달 전에 둘째 아들이 선물로 사 준 최신의 핸드폰에는 구글 지도 앱이 깔려 있는데, 카트만두 시내 지도가 상세하게 한글로 표시되어 있어서 길 잃을 염려는 없었다. 네팔 음식의 향신료 냄새가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서, 점심은 햄버거 가게에서 햄버거 하나로 때웠다. 햄버거 값이 우리나라보다 저렴했다. 전반적으로 네팔의 물가는 우리나라보다 쌌다.
저녁은 호텔 근처 한국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호텔로 돌아와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어디서나 잘 자는 나는 일찍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