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1876년 문호개방 이후 고종의 대한제국은 근대화 작업에 착수하였고 이때 의료근대화도 구상하였습니다. 1881년 일본에 파견한 조사시찰단(朝士視察團)을 통해 서양식 병원을 알아보았고, 1884년 정부신문인 <한성순보> 사설을 통해 서양의학 교육기관의 설립과 양의(洋醫) 양성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지요. 그 뒤 1884년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매클레이가 서양식 병원 설립을 제안하기에 이릅니다.
이때 마침 갑신정변(甲申政變)이 일어났고, 명성황후의 친정 조카 민영익은 심한 자상(刺傷, 칼로 난 상처)을 입고 조정 외교 고문이던 묄렌도르프 집으로 옮겨졌으나 사경을 헤맸습니다. 그러자 묄렌도르프는 의료선교사 호러스 알렌을 불러 치료하게 했지요. 알렌은 지혈과 봉합치료로 민영익을 살렸고 이를 계기로 왕실의 신임을 얻어 1885년 4월 10일 한국 첫 서양식 국립병원 광혜원을 개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4월 26일 광혜원은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지요.
![미국인 선교사 알렌이 1885년 4월 10일 고종의 허락을 받아 설립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서양식 병원 제중원(광혜원)의 모습.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http://www.koya-culture.com/data/photos/20190417/art_15561944413785_7586e8.jpg)
알렌의 명성은 날로 높아져 하루에 많게는 260여 명의 환자를 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후 제중원은 여러 선교의를 거치다가 1894년 6월 갑오개혁의 행정관제개혁 때 정부 내무아문과 합치게 되었습니다. 이후 선교사업기관으로 분리되어 의료업무를 이어갔는데, 병원 운영을 맡은 관리들의 부패로 업무를 수행할 수 없을 지경이 되자 고종은 설립한 지 9년 만에 경영권도 완전히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로 넘겼습니다. 그리고 실업가 세브란스의 재정지원으로 1904년에 남대문 밖 복숭아골(현재 도동)로 현대식 병원을 지어 옮기고 세브란스병원이 탄생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