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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아름답다

자기의 길을 드팀없이 가는 자, 또한 아름다울 것
[석화 시인의 수필산책 4]

[우리문화신문=석화 시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그것은 결국 “아름답다”라는 말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인지하는 모든 사물, 상태, 현상, 관념 등 각 방면에서 그 대상의 미적 의미를 추출하여 지시하는 어휘로 다시 말하여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대상을 일컫는 말로 “아름답다”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나는 백두산에서 백두산을 마주하고 또 백두산을 둘러보면서 “아름답다” 이 말의 참뜻을 다시 새겨 보게 되었다. 지난여름, 식구들과 함께 백두산행을 하였다. 다행히 백두산자락에 태를 묻고 이 성스러운 산을 머리에 이고 사는 은혜를 입은 우리는 다른 곳에서 사는 이들보다 백두성산과 자주 만나게 된다. 나도 지금까지 이 성산에 오른 것이 어림잡아도 열 번은 훨씬 더 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 직장관계나 행사차로 아니면 국외 관광객들과 곁들어 다니다니 거의가 새벽같이 출발하여 길에서 몇 시간을 끄덕끄덕 졸다 산문에 도착하여서는 휘리릭- 지프차를 나누어 타고 산정에 올라 “만세!”나 “야호-”를 몇 번 외치고 바삐 돌아오는 것이 고작이었다. 물론 백두산정에 올라 그 무궁한 조화로 이루어진 신비로운 자연과 마주하는 것이 마냥 새로운 감동을 받아 안는 계기가 되는 것이지만 태고의 아득한 전설이 깃들어 있는 밀림과 계곡을 샅샅이 살펴보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쳐 내리는 것이 언제나 아쉬웠었다.

 

이번엔 달랐다. 세 식구가 각기 배낭을 하나씩 메고 그냥 출발한 여행이니 구태여 누구의 일정에 매일 일도 없고 특히 늘 그러했던 것처럼 시간에 부랴부랴 쫓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백두산 발아래에 차가 도착하니 열시도 채 안된 이른 시간이었다. 우리는 느긋하게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다 방을 하나 골라잡았다. 그러고 나서 행장을 간편히 하고 천지등반을 시작하였다. 비룡폭포- 용이 꿈틀거리며 하늘을 날아오는 형상이라는 그 장관의 폭포수, 초당 2.15톤의 물벼락이 쏟아져 내리는 장장 68m의 백두폭포를 나란히 하고 하늘에 오르는 층계를 밟았다.

 

 

어느덧 승천하* 그 하늘길의 맑은 시내가 굽이치며 반겨주었다. 이어 눈앞에서 아, 천지의 푸른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늘은 티 없이 맑았고 그 청청한 하늘을 가슴에 가득 품고 천지의 맑은 물이 아득히 펼쳐져 있었다. 시작도 없었고 따라서 그 끝도 없을 시간이 여기서 턱 멈춰 서버린 듯하였다. 태초 첫 열림의 신비를 그냥 간직하고 있는 듯이 천지의 푸른 물결이 둥근 물무늬를 지으며 조용히 기슭으로 밀려왔다.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천지 가에 다가가 그 맑은 물에 두 손을 담가보았다. 이어 고개를 들어 주위의 열여섯 천암기봉에 눈길을 얹었다. 가슴 가득 부풀어 오르는 감동을 안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다만 창공을 가르며 빙 둘러서있는 우람한 봉우리마다에, 너울져 내리는 산자락들이 천지물과 만나며 이루어내는 푸른 물굽이 굽이굽이 마다에 감탄! 그저 수많은 감탄표를 그려가는 일뿐이었다.

 

천지 가에 깔려있는 보석 같은 조약돌들은 햇빛에 하나같이 반짝이었고 나지막하게 뻗어간 능선 위에는 파란 고산초가 초록융단으로 곱게 펼쳐져 있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하느작이는 풀잎파리들 사이 여기저기에서는 또 빨갛고 노랗고 하얀 갖가지 색깔들의 작은 꽃송이들이 얼굴을 내밀고 우리들을 반겨 웃어주었다.

 

고산수목한계선이 해발 2,000m라 한다. 그런데 천지수면이 해발 2,257m이니 여기 꽃들은 말 그대로 하늘중턱에 피어난 것이다. 그 이름들이 “백두산식물도감”에서 읽어본 구름꽃다지인지, 산학이꽃인지, 백리향인지 아니면 만병초인지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그저 모두를 하늘꽃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하늘꽃, 하늘가에 피어난 이 꽃송이들은 천지칠선녀가 목욕을 다하고 하늘나라로 올라갈 때 훨훨 뿌려놓은 꽃송이들은 아닐까.

 

 

천지를 내려오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폭포기슭의 펄펄 끓는 온천약수로 삶아낸 달걀 두어 개 가루소금에 찍어먹는 것이고 이어서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노천의 온천탕에 들어가 온천욕을 즐기는 것이리라. 세속의 모든 미련을 털어버리고 그저 따뜻한 온천물에 사지를 쭉 뻗고 인생의 무상함을 되뇌어 보노라니 저절로 절반 신선은 된 것 같았다.

 

이튿날에는 그 이름난 “선녀와 나무꾼” 전설이 깃들어 있는 명경 같은 소천지와 발아래 십 수 미터에 태고의 밀림이 감추어져 있는 신비한 지하삼림을 둘러보았고 철창을 덧댄 특수버스를 타고 백두산 반달곰과 호랑이들이 어슬렁거리는 사파리를 경험하기도 하였다.

 

백두의 상상봉에서 떠올라 천지 가에 울긋불긋 꽃송이를 피우고 나서 폭포수에 휘우듬한* 칠색무지개를 걸어놓던 해가 이제는 고산준령에서의 하루걸음을 다 하고 저기 우아한 자태로 서있는 미인송의 너른 품에 안길 듯 각일각* 기울고 있었다. 우리도 각기 후줄근하게 줄어든 배낭을 둘러메고 산을 내리는 차에 올랐다. 성산 백두산을 뒤에 하고 이제 자동차는 어둠이 깔리는 포장도로를 따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과 도시를 향하여 달려가고 있었다.

 

눈을 감고 뒷좌석에 비스듬히 누운 나는 머릿속에 1박2일 백두산행의 순간들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슬라이드 쇼를 진행하듯 장관의 그 장면과 장면들이 엇바뀌어 펼쳐졌다. 백두16기봉, 천지물, 고산초, 백두폭포, 소천지, 자작나무숲, 지하삼림, 미인송… 어느 하나 신비롭지 않은 것 없고 아름답지 않은 것 없다.

 

아름답다. 백두산의 모든 것을 한마디로 아울러 “아름답다”고 말하자. 백두산이 이와 같이 아름다운 것은 백두산이 품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자기의 위치에서 저마다 자기의 몫을 다하고 있기 때문이다. 2,744m의 장군봉은 하늘을 떠이고 드팀없이 서있어 아름답고 천지가의 작은 꽃들은 또 각기 자기의 빛깔을 지니고 피어나서 아름답다.

 

폭포수는 장쾌한 기상으로 하늘땅을 울리고 소천지는 맑고 고요한 정서로 끝없는 상념을 불러내어 아름답다. 각기 자기의 등고선에서 자기만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나무들은 그 자태가 각각이어서 아름답고 지하삼림은 드러나 있는 것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신비를 혼자 품고 있어 아름답다.

 

자기의 사명과 직분을 분명히 알고 자기의 길을 드팀없이* 가는 자, 또한 이와 같이 아름다운 자 아니겠는가. 하늘을 받치고 서 있으라고 하면 천둥번개와 광풍폭우에도 머리 굽힘이 없어야 하고 길을 열고 앞으로 나가라고 하면 천길 나락이라도 뛰어내려야 할 것이다.

 

 

바람맞이 언덕에 섰으면 산자락의 무성한 숲을 부러워 말 것이다. 혹여 그 숲에 내려가면 수많은 잎사귀에 가려 드러냄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천지가의 구름국화가 주목 받고 예쁘다고 함부로 그와 자리 바꿔 앉으려 하지도 말아야 할 것이다. 혹여 찬바람에 뿌리째 뽑혀 날려가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아름답다. 우리도 백두산처럼, 백두산이 품고 있는 산, 물, 나무, 꽃과 같은 모든 것들처럼 한번 아름다워 볼 일이 아니겠는가. 저기 들녘에서 도시의 불빛이 훤하게 비쳐온다. 각일각 사람 사는 동네로 다가가는 차에 실려 “아름답다” 이 말을 다시 외워보았다.

 

낱말풀이

승천하(升天河) : 백두산 천지물이 폭포까지 이르는 물길 이름

휘우듬한 : 조금 휘어져 뒤로 자빠질 듯 비스듬한

각일각(刻一刻) : 시간이 지나감

드팀없이 ≫ 드팀없다 : 조금도 흔들림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