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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나 홀로 나서는 길

미하일 유리에프 레르몬토프 시와 스베틀라나의 목소리
[솔바람과 송순주 19]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나 홀로 길을 나섰네

안개 속을 지나 자갈길을 걸어가네

밤은 고요하고 황야는 신에게 귀 기울이고

별들은 서로 이야기를 나누네

 

 

길을 나서면 모든 게 경이롭다. 길을 가다보면 안개 낀 날도 있을 것이요, 무작정 가다가 날이 저물어 낭패를 보는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날이 저문다고 걱정만 할 일은 아니다. 그런 날이면 밤이 더 고요하고 황야는 바로 머리 위로 다가온 저 깊고 푸른 하늘에 거하고 있는 신(神)과 더 가까이서 대화할 수도 있다. 그런 날이면 별들이 서로 속삭이는 것 같다. 서로 얼굴과 몸매 자랑도 하고 정담도 나누고 때로는 거울로 햇빛을 얼굴에 쏘아주는 장난도 할 것이다. 사람을 뺀 모든 자연이, 그동안 말도 없이 숨어있던 모든 자연, 무생물이 이야기 한다. 밤을 걷는 사람들에게 걷는 일 자체는 이처럼 많은 경험의 보고이다.

 

이런 멋진 표현을 한 시인이 누구인 줄 아는가? 이 시는 ‘나 홀로 길을 나섰네’로 잘 알려진 러시아 음악의 노랫말이다. 스베틀라나라는 러시아출신의 프랑스 여성이 프랑스어로 불러 10년 전 우리나라에 유행했던 노래다. 단조로 된 쓸쓸한 멜로디, 그러기에 더욱 혼자 걷는 외로움을 잘 묘사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노래의 첫 구절은 이렇게 몸과 마음에 와 닿는다. 그 광경이 찬연(粲然)하고 정겹다. 그러나 그 다음 단은 상황이 급하게 반전한다.

 

하늘의 모든 것은 장엄하고 경이로운데

대지는 창백한 푸른빛 속에 잠들어 있다

도대체 왜 나는 이토록 아프고 괴로운가?

무엇을 후회하고 무엇을 기다리는가?

 

그에 있어서 홀로 나가서 걷는 것은 낭만의 휴식이 아니라 자신의 가혹한 운명에 대한 원망과 호소였다. 넓은 황야에 서서 검푸른 밤하늘, 끝없는 창공을 올려다보며, 그 검푸른 색, 창백한 푸른 색 속에 잠들어 있는 대지에서 신에게 왜 나에게 이런 어렵고 힘든 운명이 닥치는가를 털어놓고 그 해답을 구하고 싶은 것이다.

 

도대체 이 시인이 누구이기에 이처럼 힘든 상태가 되었을까? 왜 혼자서 길을 나서야 했을까?

 

이 노랫말을 쓴, 그러니까 이 노래의 작사자는 미하일 유리에프 레르몬토프라고 하는 러시아 군인이자 시인, 작가이다. 1814년 제정 러시아 때 태어나 1841년 불과 26살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젊은 천재이다. 모스크바의 귀족 가문 출신인데, 모친이 3살 때 죽었기 때문에 펜자 주의 귀족인 외할머니 밑에서 귀엽게 자랐다. 다만 외할머니와 부친 사이가 좋지 않아 가정의 행복은 맛보지 못했고 이로 인한 어두운 그림자가 그의 성격이나 작품에 반영되고 있다. 그는 지나치게 조숙해서 1829년 15살에 이미 시, 희곡, 소설을 썼고 회화, 음악, 수학에도 비범한 재능을 보였다.

 

 

그의 이름을 일약 유명하게 한 것은 1837년 23살 때, 푸시킨이 결투로 살해당했을 때 쓴 시 <시인의 죽음>이었다. 결투로 죽었음에도 푸시킨을 살해한 진범은 전제주의를 옹호하는 귀족이라고 날카롭게 비난한 이 시로 해서 그는 황제인 니콜라이 2세의 분노를 사서 캅카스(예전에는 카프카스로 표기했으나 최근 바뀌었다. 영어로는 코카서스-Caucasus라고 한다)지방으로 좌천당한다. 여기서 그는 1841년 사소한 일로 친구인 마르티노프로부터 결투를 도전받아 권총으로 결투를 하다가 그의 총에 맞아 세상을 뜬다.

 

시인 레르몬토프는 어릴 때 어머니가 없는 상황에서 크다 보니 주위에 반항하는 기질이 형성되었고 세상의 굴레를 뛰어나가려는 심리가 많아졌다. 좋은 말로 표현하면 자유를 동경하고 찬미한다고 할 수 있고, 저항과 반역, 체제의 순응보다는 행동을 갈망하게 되었고 그것이 그의 시와 소설에 묘사되었다. 그를 푸쉬킨 이후 낭만주의의 최대의 작가로 평가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라고 한다. 그런 만큼 이제 두 번째 단락의 급반전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불평과 탄식만 한다면 어찌 명시에 들어갈 수 있을까? 그 다음 단락에서 그는 차원 높은 생각을 보여준다.

 

아! 삶 속에서 더 이상을 바라지 않고

지나가버린 날에 아쉬움을 느끼지 않는다

나는 자유와 평온을 구하고 싶네

이제 내 자신을 찾기 위해 잠들고 싶네

 

아니 갑자기 잠들다니? 모든 것이 지겹고 피곤해서 휴식을 취한다면 그것이 혹 생을 포기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이 단락을 생에 대한 포기로 보기 쉽지만 그렇게 보는 것은 너무 평범하고 깊이가 얕다고 하겠다. 어떻게 보면 세속적인 욕망과 욕심, 자신에게 가혹한 운명의 장난을 마음으로 극복하고 보다 평온한 마음으로 자신의 세계를 열어가겠다는 하나의 각성으로 보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으로 자유를 향해 길을 떠나는 사람들의 자세다. 레르몬토프도 그런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그런데 우리가 듣는 노래는 여기서 끝난다. 노래만으로는 뭔가 아쉽고 허전하다. 대체 왜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일까? 이 시는 그 다음 두 단락이 더 있다. 그런데 노래가 끝나니까 사람들은 그 시도 끝난 줄 안다. 그렇지만 시는 인용하지 않은 두 단락이 더 중요하다. 난 러시아어나 불어를 모르니까 나머지 노래말, 곧 원래의 시를 영어번역문을 통해서 읽어보자.

 

그러나 꽁꽁 언 무덤 속에서 자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휴식을 찾아 떠나고 싶은 것이야

내 가슴 속에서 졸고 있던 내 인생의 힘을

부드럽게 숨쉬기를 따라 오르고 내리도록 말이야

 

밤낮으로 마음이 부드러워 지지

나에게 사랑을 노래하는 달콤한 목소리로 말이야

그리고 언제나 푸른 오크 나무가

검은 가지를 내게 굽히고 속삭이는 것이야

 

그러니까 결국은 다시 살아갈 힘을 얻기 위해, 영원히 푸른 오크 나무처럼 긴, 행복하고 달콤한 삶을 살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그가 황야로 혼자 걸어나간 이유이다. 홀로 걷는 길, 그것은 언제나 이처럼 자기의 힘든 삶을 극복하고 새 용기를 얻는 구원의 발걸음이 되는 것이고, 그것이 곧 여행의 힘이 되는 것이다.

 

“눈물이 핑 돌게 하는 선율 위에 가슴 저린 사연을 담은 노래. 러시아 들녘에서 거둬들여 다듬은 보석 같은 시어!! 부조리한 현실을 부정하고 꿈결처럼 아름다운 전원생활만을 그리워하다가 짧은 삶을 마감한 위대한 서정 시인의 애환! 러시아 전통악기 발랄라이카의 가슴에 사무치는 흐느낌...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어떤 영화 보다 더 러시아를 느끼게 하는 노래!!”

 

 

이 같은 현란한 표현은 이 ‘나 홀로 길을 나섰네’라는 곡이 실린 음반의 광고문구이다. 그런데 정작 ‘나 홀로 길을 나섰네’라는 노래는 러시아의 악기인 발랄라이카가 아니라 그냥 기타로 반주를 한 노래이다. 그렇지만 러시아적인 음울함이 촉촉하게 배어있는 스베틀라나의 목소리는 이 음반 중 이 노래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그러기에 이 노래는 MBC TV가 1999년 9월부터 10월 사이에 16편으로 방송한 수목드라마 ‘안녕 내사랑’의 배경음악으로 쓰여 많은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렇게 사랑을 받기까지에는 이 노래를 시로 쓴 러시아 낭만파의 대시인 레르만토프가 있었고 그 서정을 받쳐준 곡에다가 18살 때에 러시아에서 프랑스로 이주한 스베틀라나라는 여성의 애잔한 향수(노스탤지어)가 있었다. (*다만 배경음악이 CD로 발매될 때는 제목이 ‘나 홀로 길을 가네’로 해서 판매되었다. 불어나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겨난 작은 차이라고 할 것이다 )

 

 

오늘, 먼 길을 떠나지 못하는 우리는, 이 노래를 다시 들으며 마음으로나마 먼 길을 떠나서 밤에 검푸른 창공 속에 빛나는 별을 보며 우리의 마음을 미래에 놓고 희망의 부드러운 손길로 자신의 외로움과 절망하고 싶은 마음을 보다듬고 쓰다듬어 보는 거다. 그러면 우리의 삶이 다시 힘을 얻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