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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시간의 노예, 시간의 주인

2020년은 다시 희망으로 시작하자
[솔바람과 송순주 25]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 해를 마감하는 시점이다. 다들 시간의 빠름과 덧없음을 한숨으로 토해내고 있다. 올 한 해를 너무나 빨리 보냈다는 뜻이리라.

 

 

2019년, 올해 우리는 3.1만세운동 100돌, 임시정부 세움 100돌을 맞아 그 의미를 많이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올해가 기미년이란 착각에 빠질 정도였는데 가만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 기해년 황금돼지의 해였다. 이 한 해 나라 전체로 보면 황금돼지의 후광을 조금도 받지 못한 듯 곳곳에서 경제가 안 돌아가고 생산과 소비가 엉망이라는 비명을 들어야 했다. 경제가 그리된 데 대한 원인 진단 또한 서로 달랐고, 특히나 정치적인 소용돌이가 너무 크게 일어 우리가 기대했던 만큼 편안하고 윤택한 한 해가 아니었음은 누구도 비난하지 못할 것이다. ​

 

그렇게 너나 나나 모두 후회 일색이지만 그 후회의 이면을 보면 우리가 우리 앞에 지나가는 이 시간에 대해서 주인이 아니고 종이나 노예가 되어, 우리가 시간의 흐름에 맥없이 끌려간 게 아니냐는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반성도 하게 된다. 그것은 언젠가 ‘걷기 예찬’이라는 책의 저자 다비드 르 브르통이 지적한 대로 우리들의 시간을 잘 쓰지 못한 것 아니냐는 점에서 출발할 수 있다.

 

브르통은 “걷는 사람이야말로 시간의 부자다.”, “그는 자기 시간의 하나뿐인 주인이다.”라며 걷기를 예찬하고 있다. 정말로 우리가 복잡한 현대문명의 집합소인 대도시에 살면서 너무나 급하게 달려왔기 때문에 눈앞의 시간을 냉철하게 보고 시간의 부자로서 시간을 잘 쓰지 못하고 끌려온 것이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럴 때는 내가 좋아하는 조선시대의 문장가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 1638) 선생이 말한 것처럼

 

추웠다 따뜻했다 어느덧 연말  忽寒忽暖已歲晏

비 아니면 눈 오는 날 어느 때나 맑아질꼬  乍雨乍雪何時晴

창문에 드리우는 떨어지는 해그림자  幽窓掩翳落照色

먼 숲엔 미친 듯 부르짖는 바람 소리  遠林號怒顚風聲​

 

라는 상태로 빠져들게 되는데, 정말로 이 시의 제목 '안타까운 마음(悶)' 그대로다. 마침 요즈음 날씨도 딱 을씨년스럽고 그래서 마음도

 

뜻 맞는 일 하나 없는 이놈의 세상살이  世間無事可稱意

하늘 가 뜬구름만 이리저리 서성이네  天際浮雲縱復橫

 

처럼 갈피를 못 잡고 헤매게 된다.

 

 

한 해를 돌아보면 어느 해건 휘청거리고 흔들리지 않은 해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21세기를 맞은 한국은 여전히 희망이 낙망으로 바뀌고 기대가 무너지면서 불안이 커지고 다시 그것이 불만으로 변하고, 그러다 보니 자기식의 해결방법을 고집하게 돼 사회적인 갈등이 길과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그것이 2019년, 말하자면 아홉수를 맞은 해의 운명이었던가?

 

사람들은 지금 자기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알지 못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전혀 알지 못해 지나가는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정치도 혼돈을 거듭했고 국민들의 발걸음도 질척거리고 비틀거렸다. 사람들의 삶이 힘들어지니 사회는 더욱 각박해졌다.

 

이러다간 안 되겠다. 정신을 차리자. 혼돈한 머리를 흔들고 우리의 마음과 행동을 추스르자.마치 새해를 맞은 다산 정약용처럼 말이다.

 

“새해가 되었다. 군자는 새해를 맞으면 반드시 마음과 행동을 한번 새롭게 해야 한다.”(歲新矣 君子履新 必其心與行 亦要一新.............) 두 아들에게 부치는 편지 <寄兩兒>

 

우리 어차피 새해를 맞는 1월 1일에는 하루밖에 쉬지 못하므로, 친척에 인사를 다니기도 그런 만큼, 하루 혼자서 시간을 내어 어디를 걸어보면 어떨까? 요즈음 우리에게도 인기가 있는 일본의 방랑시인 바쇼(芭蕉,1644~1694)는 삿갓과 개나리봇짐, 지팡이 하나로 15년간 일본 전국을 걸어서 돌았다고 하는데, 그렇게 걷다 보면 문득 그 바쇼의 지적처럼,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번개를 보면서도

삶이 한순간인 걸 모르다니....... (바쇼)​

 

느끼는 것이 있지 않을까? 우리들은 그동안 시간의 노예가 되어있었음을 알 수도 있으리라. 우리들이 얼마나 바보 천치인 것을 알지도 모르겠다.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을 우리가 못 알아듣고 바보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혼돈스러운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고 나면 아마도

 

눈 내리는 아침!

얼마나 아름다운가

평소에는 미움받는 까마귀조차도.......... (바쇼)

 

이처럼 모든 것을 아름답게 볼 수 있을 것이고, 거기서 새로운 삶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2019년이 그렇게 혼란으로 지나갔다면 새로 오는 2020년은 다시 희망으로 시작하자. 그리고 과연 이 한 해에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다시 정하고 다시 새롭게 시작해보는 거다. 나를 버리고 우리가 되어보자. 우리 모두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어 다시 시작하자는 결심을 가다듬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