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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다시 제야를 보내고 새해 아침에

이웃과 사회를 위해 보탬이 되는 삶의 폭을 넓히자
[솔바람과 송순주 26]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사람마다 모두 생일이 둘이라고 한다. 한 번은 자기의 탄생을 기리는 생일이며 또 한 번은 해마다 맞는 새해의 탄생이란다. 누구도 정월 초하루를 무심히 보내지는 않으며 여기에는 임금이나 구두 수선공이나 차이가 없다고 영국의 수필가 찰스 램은 말한다. 말하자면 이날은 인류 공동의 생일이라는 것이다.

 

새해를 맞기 위해 서양에서는 종소리가 울려 퍼지며 동양에서도 제야의 종이 울린다. 그 종소리를 들으며 사람들은 지난 열두 달이란 기간 동안 내가 행했거나 당했거나, 이루었거나 등한히 한 모든 일을 순식간에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그 순간 느끼는 진솔한 감정은 지난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 뭔가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같은 것이리라. ​

 

“저물어 가는 한 해는, 구렁에 들어가는 뱀과 같아라. 긴 비늘 몸체가 반 넘어 들어갔으니, 가는 뜻을 그 누가 막으랴. 더구나 꼬리마저 말고 있으니 애써 봐야 소용없는 것을. 아이들은 잠들지 않으려고, 밤을 새며 웃고 떠드네. 새벽닭아 부디 울지 말아라. 제야의 북도 울리지 말아라.”  - 소식(蘇軾)), '수세(守歲)' ​

 

중국 송(宋)나라의 시인 동파(東坡) 소식(蘇軾))은 그의 시 '수세(守歲)'에서 이렇게 읊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은 동서양의 구별이 있을 수 없다. 그것은 한번 지나간 시간은 결코 다시 붙잡을 수 없는 영원한 이별이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어떤 이는 이미 십대에서부터 이러한 생각을 하기도 한다. ​

 

새해의 첫 새벽닭이 이미 울었다. 그러니 나의 나이가 이제 열여덟 살이 된 것이다. 나는 열다섯 살 이전에는 참으로 세월 가는 것이 아깝다는 것을 몰랐다. 열다섯 살 이후에야 세월 가는 것이 아깝다는 것을 알고는, 빠르게 흘러가는 것을 걱정하였다. 이에 매년 설날 아침마다 반드시 베개를 어루만지면서 스스로 탄식하기를, “내 나이가 올해 몇인가? 평소의 행실을 돌아보매 어느 한 가지도 나이에 걸맞은 것이 없다. 그러니 어찌 부끄러워하지 않아서야 하겠는가.”라고 하였다. - 임성주(任聖周, 1711~1788), 《녹문집(鹿門集)》

 

 

​새로이 한해를 맞으려면 제야를 지나야 한다. 제(除)는 섣달그믐을 의미하고 야(夜)는 밤을 뜻하기에 제야는 섣달그믐날 밤을 가리킨단다. 제석(除夕)이라던가 세모(歲暮)라던가 하는 말도 같은 뜻이 된다. 거기서 비로소 우리는 영(零)이라는 시점에 서게 된다.​

 

   갈매기 울음소리도 멈추었다

   목적지 없는

   먼길을 달려와

   빈 수레로 일 년을 마감한다​

 

   허허로운 바다

   자식 위한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 소리

   멈춘 이 밤​

 

   별똥별 하나

   길게 사선을 그으며 떨어진다

   또 한 별이 숨어

   흐느껴 울고 있는 바다로

 

                                            - 박병금 ‘제야(除夜)에’ ​

 

드디어 나도 지난밤 새해가 오는 것을 굳이 나가서 꽹과리를 치며 맞이한 것은 아니지만, 그냥 자면 눈썹이 하얗게 변한다는 말에 오는 잠을 뿌리치며 보신각에서 울리는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남들과 같이 새해를 맞는 대열에 동참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우리는, 2020년이라는 새해를 맞이했다. ​

 

그 하룻밤을 지나며, 새날을 맞으며 과연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현대의 어느 시인처럼 아쉬움이나 슬픔만이 아니라 반성과 후회를 철저하게 했을까? 그랬다면 새로 맞는 해는 분명 축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오늘 밤은

   서럽게 울자.

   누구보다도 나를 생각하며

   서럽게, 서럽게 한 번 울자.

   지난 한 해 저질렀던 수많은 죄들

   하나씩 하나씩 떠올리며

   그 죄에 돌멩이 맞듯 맞아 피 흘리며 쓰러진

   사람들을 생각하며

   오늘 밤은 빈방에서 고독하게 울자.

 

                                                 - 이수익 ‘제야’ ​

 

왜냐면 그래야 진정한 새벽을 맞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미운 나, 불쌍한 나를 한없이 뉘우치며

   온몸 사무치게 깊이깊이 울자.

   마침내 그 울음 지쳐서 바닥나면

   한없이 투명해진, 고요한 내 마음 위로 자정이 오고

   아아, 그때

   눈부시게 찬란한 새해 첫 새벽이 열리리.

 

                                                      - 이수익 ‘제야’

 

​지난 한 해 나는 무엇을 했을까? 어쭙잖은 글을 쓴다고 책상머리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보며 눈알을 비비기를 수 없이 했지만 그게 무슨 의미가 있었고 얼마나 가치가 있었을까?

 

중국 당나라 중기의 시인 가도(賈島, 779~843)는 새해를 맞는 날 서안(書案) 위에 술과 포를 차리고 그 옆에는 지난 1년 동안 지은 시를 갖다 놓고 향을 살라 제사를 올린 다음 “나의 정신을 고되게 했으니, 이것으로 원기를 보충한다.”라며 술과 포를 실컷 먹고 마셨다고 하는데 나는 쌓아놓을 글도 책도 없고 달리 남을 위해 좋은 일을 한 것도 없으니 그렇게 몸과 정신을 보충할 술과 음식을 차려 먹을 명분도 없어 쓸쓸한 새해맞이를 피할 도리가 없다. 그러기에 자신이 못 이룬 업적에 대한 한탄보다는 남을 위해 얼마나 했는가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하며, 그렇게 되면 새해의 출발이 달라지리라. ​

 

   뒷간에도 외양간에도

   등잔불을 밝히자

   구석진 곳 어두웠던 곳이 많기도 했지​

 

   아쉽고 안타까왔던

   일 년 삼백예순 닷새

   이제는 묘망한 지구 밖으로 떠나는구나​

 

   어둠을 안고 떠나는 자리에

   남루하고 침침했던 먼지로 쌓였던 시간과 시간,

   언제나 멈칫거리며 마음 쓰이던 자리를​

 

   등잔불로 밝히자 빛으로 채우자

   가는 시간 가게 하고

   오는 시간 오게 하자

 

                                                    - 강남주 ‘제야의 시’

 

 

어쨌든 우리는 새해, 새 시간, 새 삶을 맞이했다.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새날이 밝은 것이다. 그것은 인류 모두에게 오는 공동의 탄생이다. 지난 시간에 대한 반성을 거쳐 우리 모두의 또 다른 생일을 기쁘게 맞이하고 우리의 삶, 나만의 삶을 넘어서서 이웃과 사회, 전체를 위해 보탬이 되는 쪽으로 삶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일 년 후 이맘때에 다시 똑같은 후회를 하지 않도록 해보자. 우리가 해마다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일 년이란 시간 구획의 장점이자 은혜인 만큼 그것을 우리가 마다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