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상훈 교수]
바이러스는 생명체?
세균보다 작아서 세균여과기로 분리할 수가 없으며 전자현미경을 사용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작은 입자(粒子)를 바이러스라고 한다. 바이러스는 너무 작아서 1950년대에 전자현미경이 개발되면서 비로소 그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여기에서 입자라는 말을 사용했는데, 사실 바이러스는 무생물적인 특성이 있어서 “바이러스가 생명체다.”는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바이러스는 기존 생명체의 정의에 포함시키기가 모호하다. 생명체라고 하면 세포로 구성되어 있고, 또 대사 작용을 하고 자손을 남겨야 한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세포가 없이 단지 유전정보를 가진 핵산과 영양물질인 간단한 단백질만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이다. 바이러스는 평상시에는 생명체의 가장 큰 특징인 성장과 복제라는 특성을 보이지 않는다. 바이러스는 소금 결정처럼, 또는 석회석이나 철분 같은 광물질처럼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고 그대로 존재할 수가 있으므로 생명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일단 다른 생명체의 세포 안에 침입하면 필요한 영양물질을 흡수하고 분열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생물학자는 바이러스를 생명체라고 말하는가, 비생명체라고 말하는가? 우리가 익숙한 형식 논리로서는 바이러스를 명확히 정의할 수가 없다. 바이러스는 생물인가 무생물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그렇다/아니다로 단정 지어 말할 수가 없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바이러스는 조건에 따라서 생명체가 될 수도 있고, 비생명체라고도 볼 수 있어서 약간 모호하기는 해도 ‘생명체와 비생명체의 중간적인 존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어떻게 해서 나타났을까? 생명체라면 주위의 환경과 상호작용하면서 생명 현상을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자체적으로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바이러스는 다른 생물의 세포 내에서 기생 생활을 할 뿐 혼자서는 자신의 유전자를 복제할 수가 없다.
또한, 스스로 대사 활동을 하지 않으며 어떤 외부 자극에 대하여 독립적으로 대항하거나 반응을 하지도 못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바이러스는 생물 진화의 초기에 나타났던 어느 생명체가 퇴화된 형태라고 보는 설이 유력하다. 곧 바이러스는 생물체가 진화하여 생긴 것이 아니고 생명체가 퇴화하여 생긴 독특한 존재라고 말할 수 있다.
해로운 바이러스
이처럼 소속이 불분명한 바이러스는 20세기에 들어서서 엄청난 파괴력으로 인류를 괴롭히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독감은 바이러스에 의하여 전염된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갈 무렵에 중국에서 발생하여 프랑스를 거쳐 스페인에서만 800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은 유사 이래 가장 큰 피해를 낸 전염병으로 기록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스페인이 병원체의 발원지는 아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연합국은 이를 스페인독감으로 불렀다. 그 까닭은 스페인이 세계대전의 참전국이 아니었기 때문에 전시 보도 검열이 이뤄지지 않아 스페인의 언론에서 이 독감의 피해를 크게 다루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제1차 세계대전 4년 동안에 1,000만 명이 죽었는데, 이 스페인독감은 2년 동안에 5억 명이 감염되었고, 그 가운데서 2,500만 명 이상이 죽었으니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스페인 독감을 우리나라 기록에는 무오년독감(戊午年毒感)이라고 하는데 740만 명이 감염되어 14만 명이 희생되었다. 독감은 가장 흔한 겨울철 질병으로서 독감 자체만으로는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 그러나 독감이 폐렴으로 진전되면 노약자와 어린이는 죽을 확률이 높아진다. 아직도 매년 지구에서는 약 2만 명 정도가 독감에 걸려 죽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세기에 들어서서 동물에만 기생하던 바이러스가 사람으로 넘어와 미증유의 질병을 일으키고 있다. 한번 걸리면 반드시 죽는 것으로 알려진 에이즈는 1983년에 아프리카 어느 지역에서 원숭이가 사람을 할퀴었을 때 전염된 것으로 추측된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원래 양, 염소, 소, 원숭이 등에서 감염되어 뇌나 신경계에 만성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가 돌연변이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은 2016년 현재 3,700만 명이나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1985년 최초의 에이즈 환자가 확인되었는데, 1987년에 제정된 “후천성 면역결핍증 예방법”에 따라 에이즈 환자의 명단을 공개하지는 않아도 보건소에서 특별 관리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에이즈 환자는 2016년 현재 11,439명으로 파악되고 있으나 실제 감염자 수는 4~5배에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조류독감은 1997년 홍콩에서 처음으로 조류와 인간의 장벽을 뛰어넘어 인체에 전염되었는데, 18명의 환자 가운데 6명이 목숨을 잃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3년 충청북도 음성에서 처음으로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닭에서 발견되어 수십만 마리의 닭을 폐사시켰는데, 다행히 사람에게는 옮기지 않았다. 조류독감에 감염된 닭은 산란능력이 떨어지거나 식욕저하 현상이 나타나다가 증세가 심해지면 대부분 죽는다. 2004년 네델란드에서는 조류독감에 걸린 닭을 폐사시키는 일을 한 사람 가운데 84명이 감염되고 그 가운데 1명이 죽어 조류독감이 더는 조류만의 문제는 아님이 알려지게 되었다.
닭이 조류독감에 걸린다면 우리가 먹는 달걀은 안전한가? 조류독감은 수직 감염, 곧 직계 감염은 되지 않아서 달걀에는 바이러스가 전달되지 않는다고 한다. 조류독감 바이러스는 닭, 오리의 살코기가 아닌 배설물이나 분비물(침)에 의해서 전달되며 또한 열에 약하기 때문에 80도 이상으로 닭고기를 익혀 먹으면 안전하다고 한다.
2003년에 세계 30여 나라에서 발생하여 8,000명을 감염시키고 그 가운데 10% 가까운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를 일으키는 것도 바이러스임이 밝혀졌다. 사스 바이러스는 중국인이 식용으로 사용하는 사향 고양이에서 유래했다는 증거가 제시되고, 중국 정부는 고양이를 대거 도살하는 극약처방까지 내렸다.
그밖에도 2012년 중동에서 발생한 메르스는 낙타에서 인간에게 감염되었고, 2019년 말에 발견되어 요즘 기승을 부리는 신종 코로나는 박쥐에서 사람으로 옮겨진 바이러스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만, 최근엔 중국 연구진이 박쥐가 아닌 ‘천산갑’이 중간 숙주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바이러스와 면역력
발달된 현대의학과 수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의학자들은 왜 바이러스를 이기지 못할까? 그 까닭은 바이러스가 둔갑(돌연변이)을 잘하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의 백신은 달걀노른자에 바이러스를 뿌린 뒤 독성을 제거하고 화학약품으로 처리하여 만드는데, 이 과정이 6달 걸린다. 의학자들이 공들여서 백신을 개발하면 대상이 되는 바이러스는 다른 형태로 둔갑을 해 버리기 때문에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인간은 언제나 뒷북을 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인간이 승리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바이러스는 둔갑의 명수이기 때문에 새로운 형태의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을 미리 만들어 놓을 수가 없으므로 예방하기가 어렵다. 마스크를 쓴다고 해서 바이러스의 침투를 완벽하게 막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바이러스에 대해서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바이러스를 막아내려면 인체의 면역력을 높은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면역력을 높이기 위해서 환자에게 약물을 투입하는 등의 여러 가지 방법이 등장하고 있는데, 의사들이 추천하는 가장 좋은 대책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이다. 첫째, 땀이 날 정도의 정기적인 운동을 할 것, 둘째 푸성귀(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을 것, 셋째 적절하게 스트레스를 관리할 것. 너무도 평범한 대책이지만 효과가 확실한 대책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리 바이러스가 창궐해도 인체의 면역력이 강하면 바이러스를 막아내고 건강을 유지할 수가 있다. 바이러스가 인류를 멸망시키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