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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심상건의 딸 심태진이 아버지의 산조 가락을 연주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58]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판소리 중고제와 심상건의 가야금 산조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중고제 판소리는 경드름이나 설렁제의 가락이 많으며, 평탄한 선율과 장단변화에 따른 극(劇)적인 표현보다는 단조로운 구성이 특징인데, 이러한 판소리 중고제의 특징이 심상건 가야금 산조에도 나타나는 것은 숙부인 심정순의 중고제 판소리의 영향을 받은 결과로 보인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지난주에 이어 심상건의 가야금 산조와 중고제 판소리 이야기를 이어가기로 한다. 현재, 심상건 류 가야금 산조를 연주할 수 있는 40대 이상의 중견연주자들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러므로 충남 도청이나 문화재단, 서산문화원 등에서는 기회가 닿는 대로 <심상건류 가야금 산조 감상회>를 기획하여 지역민들에게 들려주었으면 좋겠다.

 

그 까닭은 서산 출신 심씨 일가의 활동이나 중고제의 이해 및 재발견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서산>이라는 지역이 배출해 낸 심상건 명인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게 되며, 음악적 자긍심을 느낄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중고제 판소리의 특징을 이어받은 심상건의 가야금 산조는 남도제의 산조 음악과 또 다른 음악적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전승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심상건은 심정순의 조카로 심씨 일가의 가장 유명했던 국악인이었다. 특히 그의 가야금 산조는 일제강점기, 다른 류의 산조보다 더 널리 알려졌는데, 그의 산조가 유명했다고 하는 점은 바로 다른 류의 가야금 산조 연주자들보다 훨씬 많은 산조 음반을 낸 것으로도 증명이 될 것이다.

 

참고로 일제강점기 때, 가야금 산조의 유성기 음반을 남긴 연주자들은 심정순을 위시해서 김해선, 심상건, 정남희, 강태홍, 한성기, 안기옥, 김종기, 함동정월, 김죽파, 김병호, 등으로 조사되고 있다. 이 가운데서 특히 심상건은 1925년에 제비표 조선 레코드에서 처음 취입한 후, 약 10년 동안 많은 음반을 내놓았는데, 그 내용은 대부분이 가야금 산조와 병창이고, 때로는 다른 명창의 녹음시, 가야금으로 반주를 해 주었거나, 또는 기악합주 때, 가야금을 연주한 것들이 있다고 국악자료 박물관의 노재명 관장은 설명하고 있다.

 

심상건은 일제강점기 때에도 여러차례 일본 순회공연을 한 바 있다. 또한, 광복 이후 1948년 이후에는 조택원 무용단이 미국 순회공연을 떠날 때, 단체의 일원으로 참가하여 반주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다. 당시 조택원 무용단은 지금처럼 대규모 무용단이 아니라, 모두 10여 명 규모였는데, 무용 3인, 음악연주자 3인, 기타는 스탭이었다. 음악은 심상건과 그의 넷째 딸 심태진, 그리고 김옥진 등이 동행하였다고 한다.

 

 

심상건의 딸 심태진(1921~)이 함께 참여하게 된 배경은 심상건의 자녀 중, 유일하게 아버지에게 가야금산조나 병창을 배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공연에서도 심상건은 가야금이나 거문고, 장고와 같은 악기를 연주하였고, 딸 심태진은 가야금 병창이나 단가, 또는 가야금이나 양금을 연주하였다고 한다.

 

심상건의 가야금 산조와 병창을 배워서 아직도 연주가 가능한 심태진은 1921년생이니까 99살, 한국 나이로는 올해 100살이 되는 셈이다.

 

심상건 명인은 슬하에 9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3명은 어려서 일찍 세상을 떠났고, 5명은 미국으로 이주해 살다가 대부분 타계하고 넷째인 심태진과 막내인 심태임 등 두 자매만 생존, 현재에 살고 있다.

 

2018년 11월 초, 미국 현지 조사를 통해 플로리다에 사는 심상건의 넷째 딸, 심태진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돌아온 연낙재 성기숙 관장의 전언에 따르면, 100살을 눈앞에 두고 있는 할머니가 아직도 예전 아버지에게 가야금을 배울 때의 이러저러한 여러 기억을 생생하게 전해 주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하였다. 그가 전해 준 기억들을 순서없이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가령, 6살 무렵 아버지 심상건에게 가야금이며 병창, 단가와 같은 노래를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홍성 출신 한성준에게 춤을 배웠던 기억, 제자들에게 여러 달을 가르쳐도 안 되는 가락을 어깨너머로 듣고 능숙하게 연주했더니 아버지가 듣고 놀라며 딸의 재능을 인정하고 신이 주신 선물이라고 칭찬하며 후계자로 삼아 주었다는 기억, 그 이후 아버지에게 집중적으로 배워서 수제자가 되어 모든 음악을 물려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또 아버지의 학습지도는 매우 엄격해서 제대로 따라 하지 못할 때에는 대나무로 어깨를 맞아가며 익혔다는 기억, 딸의 실력이 수준급에 오르자 아버지는 자신에게 입문한 초보학생들을 가르치게 했는데, 일제강점기 아버지에게 입문하는 학생들의 다수는 고위 관료의 부인들이거나 가족이었다는 기억, 12살 때인 1935년 아버지를 따라 음반 취입 차 일본 도쿄에 동행했던 기억, 아버지에게 가야금과 양금, 소리를 배울 때 1;1 개인지도였는데 아버지는 두 번 가르치는 분이 아니었다는 기억, 한 번 가르칠 때 제대로 소화를 하지 못하면 그 가락은 다시 배울 수 없게 되어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야 했다는 기억이었다.

 

한성준에게 춤을 배울 무렵, 그의 문하에 손녀딸 한영숙과 강춘자가 있었는데, 한영숙은 심태진보다 서너살 아래였고, 승무를 배웠는데, 장삼자락과 북가락 모두 배워서 미국공연 때 춤꾼이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되는 경우 자신이 승무도 추었다는 기억, 부친 심상건과 한성준은 단짝이어서 아버지는 자신의 산조는 즉흥으로 하므로 장단을 제대로 맞출 사람은 한성준뿐이었다고 말한 기억, 아버지와 자신이 조택원무용단의 일원으로 미국공연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한성준이 적극적으로 소개하였기에 가능했다는 기억 등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