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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흰 눈이 내린 아침에

선비들, 정당한 부가 아니면 취하지 않아
[솔바람과 송순주 3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눈이 소복이 쌓인 아침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그 아름다움에 빠져 탄성을 지른다. 흰 눈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굳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긴 하지만 단순히 세상을 하얗게 덮는다는 사실을 넘어서서 사람들의 마음을 하얗게 씻어주어 세상 속에 쌓인 먼지와 걱정과 고단함을 잠시 덮어주는 데 있을 것이다.

 

 

그런데 14세기 일본의 요시다 겐코(吉田兼好)라는 사람은 눈이 매우 아름답게 쌓인 날, 어느 분에게 편지를 써 부탁할 일이 있었는데 눈에 대해 한마디도 쓰지 않고 편지를 무심코 보냈다고 한다. 그랬더니 편지를 받은 사람이 답장을 보내면서 “오늘 아침 이 아름다운 눈을 어찌 생각하느냐는 한마디의 말도 쓰지 않는 그러한 비뚤어진 분이 부탁하시는 일을 어찌 들어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섭섭하고 딱하신 마음씨이십니다.”라고 해 부끄러웠으면서도 이런 마음을 발견하고 즐거워했다고 한다.

 

그의 수필집 《도연초(徒然草)》에 나오는 구절이다. 겐코는 그 수필집에서 “명예와 이익을 좇아서 조용한 여가도 없이 평생을 고뇌 속에 지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재산이 많으면 자신을 지킬 수 없게 된다. 재산은 해(害)를 만들며 고뇌를 만드는 주범이다. 죽은 뒤에 황금으로 북두칠성을 만들고 달만큼 재산이 있다 해도 그것은 남의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는다.”라고도 했다.

 

새해를 맞으면 우리는 모두 올 한 해는 복을 많이 받으라고 덕담을 하는데 그 복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돈복일 것이고 그 복에 대한 기대와 염원을 담아주는 것이 상례라 하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각은 어땠을까. 조금은 이율배반적이었다고 할 것이다. 공자 등 유교에서 가르치는 대로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인간의 바른 도리를 추구하고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과 그렇더라도 돈이 최고이고 그 돈은 개같이 벌어서라도 정승같이 쓰면 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혼재돼 있다는 것이다.

 

조선조 중후기의 대문장가 계곡 장유는 시를 잘 쓰면서도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사람들의 평가가 그리 후하지 않은 것을 보고는 “대체로 어떤 사람의 신분이 얼마나 귀하고 천하며, 생활형편이 얼마나 풍족하고 궁핍하냐에 따라 사람들은 함부로 영달과 빈궁의 평가를 내리곤 한다. 하지만, 사실은 얼마나 아름다운 명성과 더러운 이름이 후세에 드리워지느냐를 살펴보아야만 하늘이 진정으로 그 사람을 빈궁하게 했는지 영달하게 했는지를 알 수가 있는 것이다. 사람 세상에서는 뜻을 얻지 못했어도 하늘의 뜻과 합치되고 세상의 인정은 못 받았어도 하늘의 참된 평가를 받은 자, 그런 자야말로 내가 말하는 달자(達者·영달한 사람)라고 할 것이다.”라고 써놓았다.

 

아무리 우리가 부정해도 우리는 살아가는 데 결코 돈 문제를 초연할 수 없다. 특히나 현대처럼 물질문명으로 가득 찬 세상이고 어디서나 돈이 많이 있으면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 많다고 볼 수 있는 이런 세상에서 돈은 역시 “날개가 없는데도 날아다니며 발이 없는데도 걸어 다닌다. 위태로운 것을 편안하게 할 수 있고 죽은 것을 살릴 수 있으며, 귀한 것을 천하게 할 수 있고, 살아 있는 것을 죽일 수 있다.”라는 존재인 것이다. 그것을 현대인들이 신으로 모시는가 하면 우리의 삶을 유지하게 하는 역할을 넘어서 삶의 성공 기준이 된 지가 오래다.

 

엽전이라고 흔히 부르는 옛날 돈은 생김새가 겉은 둥글고 속 구멍은 모나게 뚫려 있어 이를 공방(孔方)이라고도 불렀다. 고려 의종 때의 문인 임춘은 《공방전(孔方傳)》에서 “공방은 권세 있고 귀한 사람을 몹시 재치 있게 잘 섬겼다. 그들의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자기도 권세를 부리고 한편으로는 그들을 등에 업고 벼슬을 팔아, 승진시키고 갈아치우는 것마저도 모두 그의 손에 매이게 됐다. 이렇게 되니, 한다고 하는 고관대작들까지도 모두 절개를 굽혀 섬기게 됐다.”라고 돈의 힘을 묘사했다.

 

 

돈은 살아 있는 것을 죽일 수도, 죽은 사람을 살릴 수도 있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는 요즈음이다. 돈 때문에, 경제적인 문제로 일가족 모두 자살을 하는 사례가 너무나도 빈번하다. 사회적인 대책이 열심히 강구되고 있지만, 곳곳에 빈 곳이 많이 드러나고 있으니 이런 상황에서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옛 고려시대의 금언만을 되풀이할 수는 없는 문제라 하겠다.​

 

다만 우리에게는 어느 정도 돈이 있어야 하나 하는 기준이 없고 때로는 너무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체제가 무한정의 욕구를 내세워 낭비와 허영을 조장하는 데서 비롯되는 문제이긴 하지만, 우리들의 삶이 그러한 풍조에 휩쓸려 집안의 가족 사이에도 이웃과 이웃 사이에도 적절한 정도의 생존기준과 여유로운 생각이 없다 보니 늘 우리를 잊고 살아가는 데서 이런 문제가 계속 일어나는 것은 아닐까?

 

이웃의 어려움이나 아픔은 세금 많이 걷어가는 나라나 국가가 풀어야 할 일이고 나는 그저 나의 행복을 즐길 뿐이라는 풍조 속에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돈의 노예, 욕망의 노예가 되어 인생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고 각박하게 살아가는 것 아닌가? 지난 한 해도 그렇게 달린 한 해가 아니었을까.

 

정신없이 달려만 가다가 어느 날 돌아보니 우리네 일 년이 다 지나갔더라는 탄식을 듣는다. 돈과 권력을 탐하다가 개인뿐만 아니라 본인의 자녀까지도 함께 망신을 당해 자손의 미래까지도 망치는 사례도 보였다. 모두 돈만을 생각하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사고구조에 따른 참혹한 결과일 것이다.​

 

우리 옛 문인들은 시를 읊고 쓰는 것을 즐겼고, 선비들은 정당한 부가 아니면 취하지를 않고 차라리 가난을 즐겼다. 이웃나라 일본도 이런 전통이 있었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나 돈을 모으는 사람 등 현세의 부귀나 영달만을 추구하는 사람뿐만이 아니라 그밖에도 일편단심으로 마음의 세계를 존중하는 이들이 있었다. 일본에는 현세에서 생존은 가능한 한 간소하게 살지만, 마음은 풍아(風雅)의 세계에서 유유자적하는 것을 참된 인간의 가장 고결한 삶의 방식으로 여기는 문화적 전통이 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가장 자랑할 만한 일본의 문화라고 생각한다.”라고 작가 나카노 고지(中野孝次)는 그의 책 《청빈(淸貧)의 사상(思想)》에서 밝혔다.

 

 

눈(雪)이 아주 멋지게 내리는 날, 그 눈의 아름다움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마음(心), 그것을 볼 수 있는 눈(眼)이 없는 사람들은 삶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아침에 지저귀는 작은 새의 소리와 함께 그 새의 고마움을 아는 사람들은 나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주위를 볼 수 있다. 이웃이 없이 나만 존재하는 세상은 새가 울지 않는, 새소리가 없는 삭막한 아침일 것이다. 세상을 덮어주는 흰 눈을 통해 함께 사는 삶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다시 생각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마음이 풍족한 사람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