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봄이 봄이 아니네요

선농단에 가서 역병이 없어지기를 빌어야 할까?
[솔바람과 송순주 35]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봄이 오고 있다 비가 오니까 더욱 봄이 가까와 진 것 같다.

다들 봄비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봄이 오면 봄의 소리가 들린다.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가 아니더라도 대지에는 봄의 소리가 있다.

조선조 초의 문신 이견(李堅)은 봄의 소리를 긴 자유시(賦)로 표현했다. ​

 

봄기운이 따스해지자 새로운 소리가 나고

숨었던 파충류들이 문득 일어나

옛 구멍을 떠나 나온다

원래 더위가 가고 추위가 오며

음이 사라지자 양이 생겨

하늘의 철이 갈아들고 물러가니

물건의 이치도 통함과 막힘이 있네.

동풍이 산들산들 화기가 후끈후끈

찬기운이 북지에서 사라지고

따뜻한 음률이 봄을 불어 내면

우르릉 만물을 고무하는 소리가

하늘과 땅을 울리고

하나씩 하나씩 꿈틀, 후다닥 일어나

안개와 구름 속으로 올라간다. 《동문선》 부(賦)

 

 

 

그런데 봄은 오고 있는가?

 

봄이 오고 있지만 영 봄이 아닌 것 같다. 한자말로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한다. 이 말은 대개 3월이나 4월에 쓰는 말로서, 계절로 보면 분명 봄의 계절인데 날씨가 을씨년스럽거나 눈보라, 추위 등이 가지 않고 질척거릴 때 습관처럼 입에서 나오는 표현이다. 특히나 4월이 되면 ‘4월은 잔인한 계절’이라는 영국 시인 T.S. 엘리어트의 싯귀를 흥얼거리게 되니까 봄이 되면 위 두 구절은 우리가 가장 많이 입에 달고 다니는 것 같다.

 

춘래불사춘이란 이 구절의 유래는 우리가 잘 알다시피 한나라의 궁궐에 있다가 흉노족에게 시집을 가게 된 왕소군(王昭君)이란 궁녀의 어려운 처지를 동정해서 한참 뒤인 당나라 때에 동방규(東方虯)라는 시인이 쓴 표현인데, 원문을 보면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두 구절이 붙어있어서, 글자 그대로를 봐도 호지(胡地), 곧 멀리 이민족이 사는 땅에 꽃이나 풀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어서 T.S. 엘리어트의 시 〈황무지(The Waste Land)〉와 이미지가 거의 흡사하다. 그런데 봄이란 것은 풀이 자라나고 꽃이 피는 것이 당연한 전제이기에, 동양이나 서양이나 꽃이 피지 않는 황막한 들판에서 우리가 봄을 느끼기는 어렵다 하겠다. ​

 

뭐 굳이 그런 옛날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올해는 이상난동, 아니 이제는 겨울 자체가 그리 춥지 않으니 따뜻한 겨울이어서 봄이 벌써 곁에 와 있는 듯 했는데, 입춘과 우수를 지나고 나니 그 전까지 그리 심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갑자기 온 나라에 퍼져 나가고 있어 이제는 정말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의 엄중한 상황이 되었으니 이런 때에 기온이 올라가고 날이 따뜻해진다고 해서 우리가 봄이 왔다고 느낄 수가 없다. 정말로 올해 우리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봄이 아닌 봄’을 맞고 있다고 하겠다. ​

 

이제 다음 주면 3월로 접어들고 3월 초에는 개구리도 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다.​

 

경칩은 해마다 3월 5일이나 6일에 온다. 올해는 3월 5일이다. 고정된 날이 아닌 만큼 전문가들이 무언가를 측정해서 이를 기준으로 경칩이란 날짜을 정한다고 보이는데, 무엇을 기준으로 할까? 바로 태양이 일 년에 가는 길(黃道, 黃經)의 345도의 점에 이를 때가 경칩이라고 한다. 올해는 3월5일 11시57분이다. 지구의 공전은 전자시계처럼 딱 들어맞지는 않으니까 조금씩 차이가 있어서 그 차이가 3월 5일이나 6일이라는 차이로 나타난다고 말한다.

 

 

흔히들 24절기가 음력이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 24절기는 태양의 공전을 기준으로 정하는 양력이다. 그러기에 매달 5일 무렵과 20일 무렵에 한 절기씩 돌아와 일년 24절기가 된다. 우리는 중국식을 따라서 경칩(驚蟄)이라고 하는데, 일본에서는 계칩(啓蟄)이라고 한단다. 원래 중국에서도 원래의 이름은 계칩이었다. 蟄(칩)이라는 말은 칩거라는 말이 있듯이 어디 들어가 겨울잠을 자면서 처박혀 있는 것(또는 동물)을 의미하고 啓(계)라는 말은 계몽(啓蒙)이라는 말에서 보듯 ‘깨어나다’라는 뜻이다. 곧 날이 따뜻해지니까 동물들이 칩거하고 있던 데서 깨어나 나온다는 뜻이다.

 

그런 이 이름을 써 오다가 한나라 6대 황제인 경제(景帝, BC 157~141)의 휘(諱, 곧 이름)에 啓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으니까 이것을 피하기 위해서(이를 피휘<避諱>라고 한다) 계를 비슷한 뜻의 驚(경)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驚이라는 글자는 놀라서 몸을 움직인다는 뜻이 들어가 있으므로 흔히들 개구리를 생각해서 우리나라에서는 경칩 그러면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날로 알려져 있는데, 보다 큰 개념으로는 땅속에 들어간 모든 동물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중국은 한 나라 경제 때 경칩으로 바꾸었다가 당나라 현종 때 승려인 일행(一行)이 당 현종의 명을 받아 새롭게 천문을 관측해서 새 월력인 大衍曆(대연력)을 공포하고 이를 729년부터 시행하면서. 그때부터 다시 계칩이란 이름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그렇지만 중국인들은 이제는 황제의 이름을 쓰고 안 쓰고가 문제가 아닌 관계로 그전에 쓰던 경칩이 더 자연스러워 그대로 경칩을 썼다.

 

764년이면 우리나라로 보면 남북국시대(통일신라시대), 곧 삼국 통일 뒤 약 100년이 지난 때인데 새로 대연력이 들어왔지만, 중국인들이 그대로 경칩으로 쓰니까 그대로 따라서 썼을 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중국의 24절기 개념에 따라 계칩이란 이름을 쓰다가 중국에서 새로 만든 대연력이 들어온 다음에도 굳이 새 이름을 쓸 이유가 없다며 예전에 쓰던 계칩이란 이름을 그대로 써왔다고 한다. 그래서 동양 3국에서 24절기 이름이 다 같은데 일본은 유일하게 경칩만은 계칩으로 쓰고 있다.

 

그런 옛날이야기야 하면 무엇 하겠는가? 다만 그런 것이 있다는 정도일 것이고, 그것을 통해서 경칩이란 절기가 개구리만이 아니라 추위를 피해 땅속에 숨어들어 있던 모든 동물들, 버러지들이 다 깨어나 나오는 때라는 것을 이해하면 되는 것이다.

 

사전에 보면 이 경칩에 농촌에서는 하필 개구리 정충(精蟲)이 몸을 보(保)한다고 해서 논이나 물이 괸 데를 찾아 개구리 알을 잡아먹는다고 하는데, 아마도 따뜻한 기온에 물속에서 몽실몽실 커가는 개구리 알에 담긴 생명의 기운을 나누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올해는 그런 낭만적인 생각도 하기가 어렵다. 목전에 창궐 일보 전에 있는 이 코로나바이러스를 여하히 우리가 막고 없애서 다시 건강한 봄을 맞을 것인가가 우리가 당면한 최대의 공동 목표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

 

우리는 최근 경제가 점점 어려워져 이 봄에 무언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싶어 했는데 뜻하지 않은 전염병으로 사회 전체의 활동성이 떨어지게 돼 경제적으로도 나쁜 영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현존하는 전염 위험성을 인정하면서도 위기경보 단계를 '경계' 단계로 낮추어 잡고 있었던 것도 경제적 여파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을 것인데 이제는 경제를 넘어서서 전 사회의 안전이 더 중요한 상황이 되었기에 개인적인 권리 제한이 가능한 최고단계인 '심각'으로 격상하고 총력대응에 나선 것이 아니겠는가?

 

문제는 일상생활이 멈춰 서버린다는 것이다. 서로 누가 균을 옮길지 모르니 사람을 만나기가 두렵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데, 이제는 모든 국민이 서로의 안전을 위해 각자의 권리를 유보할 수 있는 적극적인 사고로 전환해야 할 때인 것만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정치적인 찬반을 떠나서 이제 전 국민이 방역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그 말이다.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무심코라도 방치하거나 방조하는 행위를 금지해야 한다는 말이다.

 

 

긴 겨울이 이제는 끝났겠지, 봄 시샘 추위라고 하지만 뭐 3월로 넘어가면 더는 추위는 없겠지 하는 기온과 날씨의 문제가 아닌, 이 봄에 우리가 별 탈 없이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고민하는, 참으로 특별한, 유례가 없는 봄을 맞이하게 되었다. 남녘의 매화꽃은 만발하고 있고 서울 근교 화원에도 잎에 생기가 돌고 꽃들은 화사한 색깔을 자랑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진정한 봄은 올 수 있을 것인가? ​

 

이제 우리의 봄은 그전처럼 그냥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맞이해야 한단 생각이다. 원래 조선시대 이전에는 경칩이 지난 첫 해일(亥日)에 임금이 동대문 밖에 선농단에 나가서 제사를 올리고 농사 시범을 보였다고 하는데 올해는 누구든 선농단에 가서 역병이 없어지기를 하늘에 빌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선농단 행사도 취소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좋아하는 순(舜)임금은 오현금(줄이 다섯 개인 거문고)를 가지고 〈남풍가(南風歌)〉라는 노래를 만들어

 

“남풍이 훈훈함이여,

우리 백성의 노여움을 풀어 주겠구나.

南風之薰兮 可以解吾民之慍兮”

 

라고 했다는데, 봄바람이 맑고 깨끗하다고 해서 봄바람에만 이 모든 잡균을 다 날려버리라고 빌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

 

바이러스와 싸우는 최전선에 투입된 모든 의료진, 공무원, 봉사자들 그들에게 힘든 시간이다. 그들이 살아야 우리도 산다. 그들이 이 힘든 싸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성원을 해야 한다. 그들을 위해서라도 개인의 권리를 찾는 목소리는 자제하고 각자가 책임 있는 행동을 하는 수밖에는 없는 그런 시간이 이미 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