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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심정순은 대중가수 심수봉의 할아버지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61]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충남 서산 출신의 소리꾼 심정순(沈正淳)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심팔록의 3남 1녀 중 차남으로 부친의 음악적 영향을 받고 자랐다는 점, 박춘재 등과 일본에서 음반 취입 후, 발매 광고가 신문에 실리기 시작하면서 이름이 알려졌고, 이해조의 강상연(江上蓮), 연(燕)의 각(脚), 토(兎)의 간(肝), 등이 심정순의 구술(口述)로 매일신보에 연재되면서 더욱 알려졌다는 점, 예단(藝壇) 일백인(一百人) 편에는 여러 광대 가운데도 가장 품행이 단정하고 순실한 사람으로 소개되어 있고, 1910~1920년대 그의 활동내용은 대부분이 판소리, 가야금 연주, 병창이었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비단 중고제 판소리뿐이 아니다. 동편제, 서편제를 막론하고 초창기를 지나 그 이후로 내려오면서 사설의 내용이나 음악적 기교의 변화로 판소리는 세련, 정제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근거는 양반층을 끌어들이면서 스스로 달라지기 시작하였다는 점인데, 그것은 유성기판에 담겨있는 고음반에서도 확인이 되고 있다. 물론 음반 자체가 여러 제약 속에서 그렇게 기획되기도 하였지만, 시골 장터나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는 열린 공간에서 쉽게 접했던 욕설이나 음란스러운 내용은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이와 함께 소리꾼의 말씨라든가, 발음에서도 서울 경기권의 말씨를 사용한다든가, 또는 거칠고 쉰 목이 아니라, 대부분이 맑고 고운 발성법을 쓰고 있다는 점에서 초기 소리판에 견주어 많이 바뀌었다는 점을 짐작하게 하고 있다. 송만갑 명창의 경우에는 평소 아니리를 잘 안 한 명창으로 유명한데, 간혹 공연장에서 아니리를 한다고 해도, 극히 절제되고 점잖은 아니리를 구사하였다고 한다.

 

충청제 판소리꾼, 심정순이 활동하던 <장안사>라는 구파극(舊派劇) 무대에서 심 명창은 정례적으로 판소리를 불렀거니와 그밖에도 주로 가야금 연주나, 가야금 병창도 자주 불렀음을 당시의 자료들은 보여주고 있다. 그만큼 그는 가야금 연주 능력에도 출중했던 음악인이었다. 특히 1925년, 매일신보 기사에는 그가 조선극장에서 대동권번 예기(藝妓)들이 총 출연한 가운데, 가야금 독주를 하였다는 기사가 실려 있는 점으로도 알 수 있고, 일본에 가서 판소리와 함께 가야금 음반을 취입하였다는 기사에서도 그가 가야금 연주 능력이 뛰어났던 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판소리꾼이었다. 당시 중고제 명창으로 알려져 있던 김창룡이나 이동백 등과 가무대회에도 출연하였는데, 당시 신문에는 이들을 조선의 3명창으로 소개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그가 어떠한 소리꾼이었는가 하는 점은 쉽게 짐작이 된다.

 

이처럼 그는 일제강점기에서도 조선의 전통음악을 통해서, 조선의 민족정신을 지켜나가기 위해, 꾸준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민속 예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는 중풍으로 쓰러져 10여 년 치료하다가 65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심정순은 슬하에 장남 재덕을 비롯하여 매향(장녀), 재민(차남), 화영(차녀) 등 2남 2녀를 두었는데, 다행이 장남 재덕과 막내 화영이 그의 뒤를 이어 전통예인으로 활동하다가 재덕은 1967년, 화영은 2009년 타계하였다. 심팔록으로 시작하여 심정순, 그리고 심재덕, 심화영을 통해 이어지던 전통은 이제 더는 대를 이어가는 음악인이 나오지 않아 심씨 일가의 판소리 전승이나 가야금 병창, 가야금 연주 등, 중고제 음악은 맥이 끊어지게 된 것이다.

 

 

장남 심재덕은 현구, 인숙, 의숙, 현숙, 민경 등 5남매를 두었는데, 막내 심민경이 대중가수가 되어 선대의 예술혼을 이어가고 있다. 이 사람이 바로 심수봉이란 대중가수이다. 그리고 심정순의 막내딸, 심화영은 그녀의 외손녀인 이애리에게 승무를 가르쳐 현재까지 충남 서산에서 승무의 춤사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제까지 경기, 충남, 특히 서산지방을 중심으로 지켜 온 심씨 일가의 판소리 중고제는 이제 심화영을 끝으로 단절이 되어 있는 상태이다. 다만 심정순, 심상건 등에 의해 전승되어 온 충청제 가야금 산조는 심상건의 녹음자료 일부가 남아 있어 그 가락이 소수의 연주자에 의해 간간이 연주되고 있을 뿐이다.

 

오랜 기간, 중고제 판소리가 양반의 고장, 충청지역에서 자리잡아 오면서 그 사설이나 음악적 내용이 개발되고 전파되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충청도 내포지역의 전통음악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짐작이 된다.

 

이러한 귀한 소리가 더는 계승되지 못하고 단절이 되었다고 하는 사실은 단순하게 귀한 유산을 잃었다는 점 말고도 다음 세대와의 대화마저 막혀있는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음반 자료나, 악보자료, 문헌자료, 기타 구술자료 등을 가능한 한 되찾아 당시의 연창, 연희의 상황을 재현해 보는 방법, 그리고 지역의 독특한 소리제와 가야금 산조를 사랑할 수 있도록 젊은 층에게 감상 교육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 방법 외에는 더 다른 묘책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노력은 지방 정부가 관심을 두고 지역의 주민들이나 관계 전문가들과 끊임없는 대화로 해결해 나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