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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꽃이랑 주무시구료

중국산 부채의 한시, 300년 전 이규보 시 표절의혹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5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대낮 햇살이 하도 뜨거워서 하는 수 없이 가게에 들어가 부채를 찾으니 중국산 부채가 있다. 3천5백원이니까 그리 비싸다고는 할 수 없는 이 부채는 중국 비단을 앞 뒤로 붙이고 거기에 그림과 글씨를 인쇄해놓은 것인데, 거기에 한시(漢詩)가 하나 실려있다. 시의 제목은 拈花微笑图(염화미소도)이고 시를 지은 사람은 唐寅(당인)으로 되어 있다. "꽃을 들고 미소를 짓고 있는 그림"이라는 뜻일 터인데 무슨 시인가 읽어보았다.

 

昨夜海棠初着雨, 數朵輕盈嬌欲語。어젯밤 비가 내린 뒤 해당화 몇 송이가 피어올랐는데

佳人曉起出蘭房, 折來對鏡比红妝。아침 일찍 미인이 꺾어와 거울에 대고 서로 비교하며

問郎花好奴顔好, 郎道不如花窈窕。신랑에게 누가 더 이쁘냐 물으니 꽃이 더 이쁘단다

佳人見語發嬌嗔, 不信死花勝活人。이 말에 화가 난 미인, 죽은 꽃이 사람보다 어찌 이쁜가

將花揉碎擲郎前, 請郎今夜伴花眠。꽃을 신랑 발 앞에 던져 밟으며 오늘밤 꽃이랑 자라고 하네

 

뭐 대충 이런 뜻이다.

 

그런대로 재미있는 시라고 생각하는데, 아무래도 어디서 비슷한 것을 본 것 같다. 그것도 우리나라 시인이 쓴 듯하다. 머리를 짜내어 보니 고려시대 위대한 시인이었던 이규보의 시에 비슷한 것이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 시의 제목은 ‘折花行(절화행)’, 절화는 꽃을 꺾는다는 뜻이고 행은 옛말 악부시의 한 형식이라하니 '꽃을 꺾다: 노래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牡丹含露眞珠顆 모란꽃 이슬 머금어 진주 같은데

美人折得窓前過 신부가 모란을 꺾어 창가를 지나다

含笑問檀郞 빙긋이 웃으면서 신랑에게 묻기를

花强妾貌强 "꽃이 예쁜가요 제가 예쁜가요?"

檀郞故相戱 신랑이 일부러 장난치느라

强道花枝好 "꽃이 당신보다 더 예쁘구려"

美人妬花勝 신부는 꽃이 예쁘다는 데 뾰로통해서

踏破花枝道 꽃가지를 밟아 짓뭉개고 말하기를

花若勝於妾 "꽃이 저보다 예쁘시거든

今宵花同宿 오늘밤은 꽃하고 주무시구려"

 

                                                     ......절화행(折花行), 이규보

 

 

어떤가? 너무도 똑 같지 않은가? 위의 시를 쓴 중국인은 명나라 사람인 唐寅(당인, 1470 ~ 1523, 字伯虎, 号六如居士、桃花庵主、逃禅仙吏)이어서, 이 시는 아무리 빨리 잡아도 1490년에서 1500년 사이 쯤 될 것인데,우리의 이규보(李奎報)는 1168년에서 1241년 사이에 사셨으니 이규보가 300년 전 사람이다. 그러니 중국시인이 이규보의 시를 표절한 것이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그렇지 않고는 이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표현법이나 이미지가 같을 수가 없다.

 

그런데 중국 사람의 이 시를 소개하는데 중국의 참고서나 서적들은 이 시 이전의 작품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다만 당인이란 사람이 시와 문장, 글씨 등에 능해서, 祝允明(축윤명)、文徵明(문징명)、徐祯卿(서정경) 등과 함께 강남의 4대재사(江南四才子)라는 별칭과, 沈周(심주)、文徵明(문징명)、仇英(구영) 등과 함께 오문의 4대가(吴门四家)라는 칭송을 받았다고만 되어 있다.

 

이 시가 싸구려 부채에까지 올라갈 정도라면 이 시는 대단히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시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 시의 원전이라 할 이규보의 시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은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좋은 일이 아니다. 혹 이규보 전에 중국 시인이 이런 주제나 소재로 시를 쓴 것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출처를 밝히고 그 원전을 차용했음을 밝혀주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시인이라고 한국 시인의 작품을 참조하지 않았다고 볼 이유는 하나도 없다. ​

 

최근 중국이 우리의 발명품들을 몰래 베끼거나 지적재산권을 훔쳐가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500여 년 전에도 벌써 그랬던가? 우리 시인의 잃어버린 저작권을 찾아와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