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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둘씩 지워가고, 새벽의 문 앞에서 웃고

《나무가 되고 싶었다》 서평
[양승국 변호사의 세상 바라기 139]

[우리문화신문=양승국 변호사]  이노라이프 김석영 대표가 세 번째 시집 《나무가 되고 싶었다》를 냈습니다. 2018년에 첫 시집 《길》을 내더니, 벌써 3집 시집을 냈네요. 김 시인은 처음에 팽목항에서 세월호 유가족들과 바람에 날리는 추모 리본을 보면서 갑자기 시심(詩心)이 트였다고 하더니, 한 번 트인 시심의 샘물에서 계속하여 시의 냇물이 흘러나오는 모양입니다. 이번 시집의 제목은 《나무가 되고 싶었다》군요. 평창 속사리의 숲속에 땅을 사서 주말이면 달려가 손수 목공이 되어 게스트하우스를 짓더니, 아예 나무가 되고 싶었던 건가요?

 

나무가 되고 싶었다

누구나 나의 그늘에

누구나 잠시 머물며 맘 편히 쉬어 가도록

(중간 줄임)

나무가 되고 싶었다

만남과 이별 너머로

가을을 떠나보내고 외로운 자의 친구로

 

시집의 제목이 된 시입니다. 평소 넉넉한 웃음으로 사람들에게 따뜻한 돌봄을 아끼지 않는 김 시인의 마음이 그대로 담긴 시이군요. 이런 따뜻한 시인이기에 지갑 속에는 늘 천 원짜리 지폐를 가지고 다닙니다.​

 

피할 수 없는

치명적인 유혹이 있습니다.

유혹을 대비하여

지갑 속에는 항상

천 원짜리 두세 장을 넣어 놓습니다.

(중간 줄임)

터미널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불편한 자세와 불구의 몸으로

찬송가를 틀어놓고

도움을 청하는 그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럼에도 유혹은 언제나

사람들에 대하여 잠시나마

고민하게 합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유혹 앞에

무너지지 않는다면

나의 하루는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겁니다.​

 

<지갑 속의 천원>이라는 시입니다. 치명적인 유혹에 대비하여 늘 지갑 속에 천 원짜리 지폐를 준비해서 다니는 김 시인! 참으로 마음이 따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은 또 인간으로 인해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지요? <사람들과 어울리기 위한 방법>이라는 시에서 상처받은 모습을 보여주던 시인은 요즈음은 공허한 인간관계는 하나씩 지우고 있는 모양입니다.

 

요즘의 나는 무언가

하나둘씩 지워간다​

 

온 오프라인의 삶들

공허한 관계와 체면

정크로 채워 놓았던

공간을 비우고 있다​

 

작은 것들로 채워갈

공간의 확보를 위해

욕심을 뒤로 미루고

하나둘씩 치워간다​

 

요즘의 나는 틈틈히

하나둘씩 지워간다

 

<Erase>라는 시입니다. 공허한 관계와 체면, 정크(쓰레기)로 채워 놓았던 공간에서는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에서 억지웃음을 웃어가며 가식적 삶을 살다보면 어느 순간 공허함이 밀려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느꼈을 공허함 아닙니까? 김 시인은 그러한 공간에 이젠 작은 것들로 채우기 위해 하나, 둘씩 지워가고 있군요. 그런데 그러한 공허한 속에 한 잔, 두 잔 술을 채워 넣고 거리를 걷다 보면 마음껏 활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지 않습니까? 김 시인은 그런 마음을 <활보(闊步)>라는 시로 표현했습니다.

 

오십대의 어느 날,

이십대 시절의 벗들과

거리를 가득 채우고

활보를 한다​

 

사람의 마음은

수십 년 전과 다름없지만

중년의 활보는 궁상인가

돌아오는 곱잖은 시선들

 

사용 만기일이 가까워진

몸뚱이를 시간으로 채워

나이가 들어가는 거리들​

 

세월이 기록된 머리색은

은빛이 흐르는 회색빛들

나의 거리가 늙어간다​

 

하하! 중년의 사내들에게는 이런 충동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혹여 중년의 사내들이 그렇게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을 보거들랑, 너무 눈 홀기며 보지는 말아주십시오.^^ 그런데 그런 객기가 너무 지나치면 집에 들어와 옷도 제대로 벗지 않고 쓰러져 자는 경우도 있겠지요? 그러다 아침에 눈을 떠서 게슴츠레한 눈으로 지난밤 무슨 일이 있었던가 하며 주위를 두리번거리기도 하구요. 김 시인은 그런 때의 모습도 <바람소리>라는 시로 담았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누군가

급하게 문을 두드린다

눈을 뜨기가 귀찮아

실눈으로 슬며시 창문 밖을 보니

나뭇가지에 걸터앉은 녀석들이 히죽거리며

유리창에서 솔방울을 던지고 있다

아마도 지난밤,

만취(滿醉)하여 목간통(沐間桶)에서

잠들어버린 맨몸의 중년(重年)이 우스웠나 보다

 

포도주 한 잔 힘을 빌어

객기를 부리며 옷을 벗어 던지던

지난밤의 호기(浩氣)는 어디가고

부끄러운 기억과

아쉬운 추억들과

창문 밖에 가득한 바람소리만이

고원(高原)의 산과 계곡으로

흩어지는구나

 

하하! 목간통에서 잠들어버린 김시인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저 또한 만취하여 목간통에서 양변기를 부여잡고 그 밤에 먹었던 술과 안주를 다시 게워내며 변기에 흘려보내던 적이 여러 번 있지요.^^ 그런데 요즘 와서 생각이 많아지는 시인은 밤하늘에 이 생각, 저 생각 날려 보내다가 그대로 밤을 새우는 경우도 있는 모양입니다.

 

구질한 세상사를 잊기 위해

이책 저책을 옮겨 다니다가

깊은 밤의 터널을 지나치고

위로의 기회마저 잃어버린

휑하고 허탈한 빈 모습으로

새벽의 문 앞에서 웃고 있다

 

<나는 밤마다>라는 시입니다. 구질한 세상사를 잊기 위해 온밤을 하얗게 새웠을 김 시인의 모습이 애잔하게 눈에 들어옵니다. 김 시인은 시집 뒷장에 이런 구절도 써놓았습니다. “현실에서 나는 스스로 벽을 걷어찼나 보다. 왼발의 엄지발톱은 깨지고 상처 부근이 피투성이다.” 왜 시인은 세상을 편하게 살 수 없을까요? 보통 시정(市井)의 장삼이사(張三李四)처럼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시간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 살아갈 순 없나요?

 

그러나 그런 장삼이사의 삶에서 시샘이 트일 수는 없겠지요. 세월호 추모 리본을 보다가 갑자기 시심(詩心)이 트여버린 김 대표가 다시 그런 삶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입니다. 김 대표! 지금까지는 그렇게 시샘에서 트여버린 시를 그저 책으로만 묶어 주위 지인들하고만 나눴다지요? 앞으로는 정식 시인으로 문단에 등단하여 그 따뜻한 자신의 삶과 시를 많은 독자와 나누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