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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나들이

[화보] 오련지(5蓮池) 전설을 품은 강화 고려산 '백련사'

 

 

 

 

 

 

 

 

 

 

 

 

[우리문화신문=최우성 기자 ] 지난 번 찾았던 강화도 고려산 적석사 주변에는 여러 절들이 있다. 그중에  적석사와 같은 시절 세워진 것으로 전하는 절들을 찾던 중 오늘은 백련사를 찾았다. 백련사는 인도에서 온 스님이 고려산에 올라 산꼭대기에 있는 연못에 피어있던 아름다운 5색깔의 연꽃 가운데 하얀연꽃이 떨어진 곳에 세웠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고구려 장수왕 시절 인도에서 온 스님은 고려산 주변에 절을 짓기 위하여 몇날 며칠을 살폈다. 그러다가 하룻밤 꿈속에 나타난 노인이 고려산 꼭대기에 올라보라는 말을 하고 사라진 뒤  고려산엘 올랐다.  가서 보니 산꼭대기에 연못이 있고, 그 연못에 아름답게 피어난 화려한 연꽃5송이가 있어, 이를 하늘 높이 날려 그 연꽃이 떨어진 곳이 명당터라 생각하고 5곳에 절을 지었다는 것이다.

 

그때 그 스님이 창건한 절은 동쪽에 청련사, 남쪽에 적련사(현재 적석사), 가운데에는 황련사, 서쪽에는 백련사, 북쪽에는 흑련사로 전하고 있다. 5곳의 절 가운데 흑련사의 존재는 확인이 안되고 있지만  이곳을 뺀 4곳의 절은 지금도 같은 전설을 간직한채 그 전설의 명맥을 잇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절들은 고구려시절의 유적이나 유물은 찾을 수 없고, 오직 같은 창건유래 만을 가지고 있어 매우 아쉬웠다. 그 가운데 오늘 찾은 백련사는 고려산 주변에 있기는 하였으나, 5곳의 방위를 뜻하는 의미에서 본다면 고려산의 서쪽에 있어야 할 터인데 서쪽이 아닌 북쪽에 있다. 삼국시대와 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알 수가 없지만 절의 내력과는 달랐다.

 

이후 한국에서 벌어진 많은 전란과 조선조 불교탄압을 받으면서 퇴락과 폐사를 거쳐 조선 후기인  순조6년(1806) 서산대사의 6세손, 천봉후인 의해당 처활스님의 사리탑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처활스님이 다시금 중창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 고종 광무9년인 1905년 박보월이 건물들을 중수하여 그 명맥을 잇게 하였다. 그러나, 현재의 건물들은 1967년 비구니 한성탄 스님이 극락전과 삼성각을 중수하여 오늘의 백련사를 이루었다고 한다.

 

전국의 많은 절들을 순례하다 보면, 한국의 절들은 처음 창건의 내력에 견주어 간직한 역사유물들이 너무도 부족하여 아쉽기 그지 없다. 그러나 이는 절의 잘못이 아니기에 무어라 말할 수 없다. 그런 열악함 속에서도 옛 역사적 유래를 찾아 중창, 중건을 하여 오늘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절 건물들은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집이 아니다.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얻기 위해 그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는 공간이며, 현생을 사는 동안 포기하지 않고 깨우침을 얻은 부처님의 능력에 의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소원을 기원하고, 더나아가 깨우침을 얻지 못하고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러한 절의 건축물들은 일반 건축물과는 달리 절 주변의 지형과 산세 등을 고려한 건물 크기와 배치에 신경을 써야한다. 가람의 전체적인 조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불교의 세계관을 표현한 경전 속에 수없이 언급된 화엄불국토의 설명에도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전국의 크고 작은 절들을 순례하다보면 이러한 '가람 배치'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어 안타까운 생각이다.  그 원인은 처음부터 전각들의 위치를 고려해두지 않고 경제적인 문제로 자금이 마련되는 대로 건물을 지었기 때문이다.

 

강화 고려산 백련사의 경우도 그러하다.  부처님을 모시는 주불전 자리에 종무소 건물이 버티고 있는 것은 절 전체적인 조화를 깨는 느낌이다. 물론 지금의 주불전인 극락전이 먼저 건축되고 종무소가 나중에 건축되는 과정에서 배치 위치를 잘못 잡았으리라.  신도들의 행정업무를 하는 종무소가 극락전 위에 배치되어 있는 것도 그렇고 부처님을 모신 주불전을 따로 설계하지 않고  스님들의 생활공간과 잇대어 있는 것 또한 건물의 상하 위계질서가 깨진 느낌이다.

 

이런 혼란스러운 건물의 배치는 절을 세우는데에만 급급한 나머지 절의 전체적인 건물 배치의 조화에 대한 깊은 계획과 통찰력 부족때문이다. 비단 이러한 것은 백련사에만 해당 되는 것은 아니다. 비록 경제적인 문제로 한 동, 한 동 씩 지어나간다해도 전체적인 조화를 고려하여 전각배치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비록 당대에 경제적인 문제로 전각을 다 짓지 못한다하더라도 전체적인 조화를 고려한 '절집 짓기'를 한다면 꼭 신자가 아니더라도 '아름다운 풍광과 조화로운 절의 전각이 주는 안정감'에 더 큰 위안과 감동을 자아낼 것이다.

 

평생 불교를 신행하고 절을 연구하는 사찰설계가로서 이러한 점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개인이 작은 집 한 채를 짓는 것도 평생에 한번 있을까말까한 큰 일이지만, 부처님의 공간인 절집을 짓는 것은 그 보다 훨씬 더 큰 일이다. 오늘 지은 전각이 후세에 대대 손손 불자들이 찾을 역사적 장소임을 깨닫고 작은 전각 하나라도 땅모양과 자연을 잘 품으면서도 위계 질서를 고려한 아름답고 조화로운 '절집' 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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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성 기자

최우성 (건축사.문화재수리기술자. 한겨레건축사사무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