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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다다익선'에 다시 불이 들어오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진입로 문제가 끼친 영향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9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한 달 전쯤인 지난달 중순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서울올림픽 30돌을 기리는 작은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과천의 국립현대미술관을 다시 가게 되었다. 예전에 KBS기자로 있을 때는 회사의 취재차량을 타고 갔고, 퇴직 후에는 어쩌다 가게 되면 미술관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합정동 로터리에서 타고 가곤 했는데, 이날은 코로나 사태로 서울 시내에서 갈 수 있는 셔틀버스는 운영을 중지해, 과천 서울대공원역 4번 출구에서 미술관으로 왕복하는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게 되었다.

 

새로 전시회가 열리지만, 이날도 코로나 여파로 손님은 나를 포함해 둘 뿐, 작은 승합차를 타고 구불구불 진입로를 따라 돌아 미술관을 올라가면서 나의 머리는 35년 전인 1986년 8월로 돌아가고 있었다.

 

1986년 8월 25일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2층 연회장, 새로 완공된 현대미술관의 위용을 보며 내심 흐뭇해하던 전두환 대통령과 이원홍 문화공보부 장관, 그리고 이경성 국립현대미술관장을 비롯한 미술계 원로, 현역들이 줄줄이 모여 서 있었다. 시설을 둘러보고 이같이 좋은 미술관을 갖춘 데 대한 치하의 말을 기대하고 있던 전두환 대통령, 몇 마디 치하의 말이 미술인들에게서부터 나온 뒤에 이경성 관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이경성 관장은 1981년부터 83년까지 9대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나고 쉬고 있었는데, 그 뒤를 이어받은 조각가 김세중 관장이 미술관을 새로 짓는 데 너무 애를 쓰다가 안타깝게도 딱 두 달 전에 세상을 뜨셨다. 그래서 정부는 급한 나머지 이경성 관장을 11대 관장으로 다시 초빙한 것인데, 이 관장은 급하게 취임해서 미술관 개관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개관식을 가진 다음에 마이크를 잡았다.​

 

그런데 그 자리에 모인 모든 미술인들은 이경성 관장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를 다 알고 있었다. 그것은 새로 완공되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진입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대통령께 건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슨 문제였던가?

 

 

86아시안게임을 유치한 뒤에 나아가서 88올림픽게임까지 유치하려던 정부는, 막상 아시안 게임이 열리게 되면, 우리가 번듯한 국립현대미술관 하나 없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에 급하게 현대미술관을 짓기로 한다. 여러 장소가 물색 되었지만, 미술관을 단순히 그림 몇 점만을 전시하는 곳이 아니라 미술품을 모으고 보관하고 전시하고 또 교육도 해야 하는 기능을 갖추려면 몇만 평(당시 개념)의 넓은 땅이 필요한데, 그것을 도심에서는 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과천 서울대공원과 서울랜드 사이의 언덕. 이곳을 정하고 설계를 하랴 공사를 하랴 서둘렀는데, 문제는 진입로가 마땅치 않다는 것이었다.

 

 

통상적으로 생각하면 서울대공원에서 곧바로 진입로를 뚫어주면 되지만, 이미 코끼리 열차를 타는 관람코스를 완성한 서울대공원, 곧 서울시 측에서는 이 길을 내주면 공원 전체가 엉망이 된다며 길을 내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온 것이 서울랜드를 무려 4킬로미터 이상 빙빙 돌아서 가는 지금의 진입로. 가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길이 얼마나 불편한가? 미술관에 직접 걸어서 접근이 안 되고 무슨 이상한 요새를 찾아가는 듯 빙빙 구불구불 돌아가는데, 다 왔다 싶어 옆을 보니, 바로 옆이 동물원 코끼리 열차가 지나가는 차도다.

 

문화예술을 즐기러 왔다가 대공원에게 우롱당한 느낌을 받아, 이렇게 마치 미술관람이 동물들보다 더 열등한 듯한 멸시감까지 받게 되어, 속으로 눈물이 핑 돌 정도다. 그래서 미술인들은 이경성 관장이 개관식날 대통령에게 건의해서 어떻게 하든 길을 새로 내 달라고 조르라는 막중한 임무를 암묵적으로 부여하고 있었다.​

 

그런 여망에 따라 이경성 관장은 대통령에게 어려운 말을 했다.

 

“이렇게 좋은 현대적인 미술관을 지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그런데 여기 진입로가 좋지 않아서 미술관으로서 제대로 사랑을 받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말을 마친 이경성 관장은 속으로 땀을 닦았으리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미술인들은 이제 대통령의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대통령의 답은 안타까운 것이었다.​

 

“아무래도 미술관이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은, 그만한 장소를 구하지 못해서 그런 것인데, 차츰 사람들이 알고 자주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앞으로는 좋아지겠지요”​

 

“이럴 수가 있는가? 대통령이 진입로 문제를 모르고 있구나. 대통령이 저렇게 말을 해 버리면 안 되는데….“​

 

미술인들의 탄식이 이어졌다. 사실 대통령으로서는 이 문제를 잘 몰랐을 것이고, 공교롭게도 그날도 이 문제를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개관식 날 대통령은 서울 대공원의 코끼리열차가 다니는 길에서 그냥 가로질러 곧바로 미술관으로 올라왔기 때문에(경호상의 문제이거나 간편한 행사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진입로를 그렇게 삥삥 돌아서 들어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아마도 준공 전에 신문이나 방송에서 숱하게 진입로 문제를 지적했지만, 대통령으로서는 그것을 알기 어려웠고 유일하게 곧바로 체험을 했어야할 개관식 날에도 현재의 진입로가 아니라 길을 멋대로 가로질러 왔기에 그 문제를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더욱 문제는 이원홍 문화관광부 장관이 개관식 다음날 이웅희 장관으로 바뀐 것이었다.

 

이장관의 교체는 8월 4일에 있었던 독립기념관 화재사건에 대한 인책의 성격이었는데, 8월 15일의 독립기념관 개관, 8월 21일의 국립박물관 개관, 8월 25일에 현대미술관 개관을 위해 교체를 늦추었던 것, 그러나저러나 주무장관까지 바뀌고 보니 이 문제는 더는 거론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 뒤에도 KBS뉴스 등에서 진입로가 실종되었다는 뉴스를 내보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렇게 해서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규모의 미술관을 지었지만, 서울에서 먼데다가, 과천의 서울대공원을 찾은 사람들도 빙빙 돌아서 한참 만에 가게 되어서, 자연 일반인들의 접근이 줄기 시작했다. 그래서 많은 현대미술행사가 산속에서 외롭게 열리는 바람에 사람들의 외면 속에 쓸쓸함의 눈물을 삼키어야 했다. 미술계의 염원은 좀처럼 죽지 않아 결국 1998년 국민의 정부 때에 궁여지책으로 덕수궁 석조전을 다시 미술관으로 고쳤지만, 너무 규모가 작아 과천의 현대미술관의 역할을 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난 2009년 1월 15일, 경복궁 동쪽의 옛 기무사 터 강당에서 문화예술인의 신년 인사회가 열린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관을 기무사 터에 세운다고 발표하였다.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장내에 있던 미술인들로부터 뜨거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곧 개조공사를 거쳐 2013년 11월 서울 시내 한복판에 국립현대미술관이 개관함으로써,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미술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2009년 신년 인사회에서 현대미술관 서울관 설치를 대통령이 발표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정말 세상일이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실 과천의 현대미술관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워서 서울 시내에 분관을 짓게 된 것인데, 당시 이후 미술인들은 길을 내주지 않은 서울시 측에 대해 상당히 분개했고 실제로 관람객들은 그 뒤부터 많은 불편을 감수했는데, 만약에 서울시 측에서 길을 잘 내주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그랬다면 아마도 기무사 자리가 서울관으로 바뀌지 않고 다른 용도로 쓰였을 것이고, 우리는 그렇게 대형 전시회가 아닌 작은 전시회도 덕수궁의 작은 공간, 혹은 과천에 가서 보아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시민들 처지에서는 서울시의 꽉 막힌 행정을 마냥 비난만 하는 것도 좀 쑥스럽다고 생각하게 된다. 어찌 보면 서울시가 진입로를 좋은 쪽으로 내주지 않았기에 개관 이후 근 30년 만에 서울에 분관을 내게 되었고 그것으로써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의 말처럼 "변두리로 밀려나 있던 문화가 중심으로 옮겨와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이제는 과천 현대미술관 입구에 있는 백남준의 초거대작품 ‘다다익선’이 자칫 폐기될 뻔하다가 다시 살아나고 있어서 천만다행이다. 서울올림픽을 기념하기 위해 1988년 9월에 백남준 선생의 아이디어를 받아 건축가 김원 씨가 구조설계를 하고 전기영상전문가 이정성 씨가 회로를 연결해 18미터 높이로 만든 세계 최대의 백남준 작품. 외국 미술계의 부러움을 사던 이 작품의 1,003개의 브라운관 모니터들이 2003년에 수명을 다해 힘들게 모니터를 구해가면서 가동은 했지만 2018년 2월에는 누전이 발생하는 등 안전문제로 가동을 중지하고 한때는 철거하자는 의견도 등장했었다.

 

그러다가 2019년 부임한 윤범모 관장의 적극적인 의지로 CRT 모니터 외형을 존속시키면서 내부 모니터를 LCD로 바꾸어 계속 가동할 수 있게 고치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음을 건축설계가인 김원 씨와 '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 회원들과 함께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올여름이 지나면 재가동될 수 있다고 한다. 김원 씨는 자신이 설계한 다다익선 원설계도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을 했고 그것을 함께 보았다.


 

 

이제 곧 다다익선 복원이 끝나 저 거대한 6층 높이의 1,003개 모니터에 불이 들어오면 비디오 시대의 개천절을 연 백남준 씨의 예술도 우리나라를 다시 환하게 밝혀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에 이 작품의 재가동을 계기로 과천의 현대미술관도 더 좋은 역할을 하는 장소로 거듭나서 시민들이 더 많이 찾기를 기대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라도 서울시에서건 어디서건 시민들의 불편을 강요하는 진입로 문제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데 머리를 짜내고 마음을 합쳐야 할 것이란 생각이다. 마침 그동안 문화에 대해서는 애정을 보여온 새 서울시장체제가 출범한 것도 도움이 되면 좋을 것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