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6 (화)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닫기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5월에 또 하나의 소중한 날, ‘부부의 날’

한여름 더위를 잘 참으면 다시 가을이 오는 법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97]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5월은 신록의 달이란 표현 그대로 모든 것이 파릇파릇, 새 생명들이 보여주는 잔치 속에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등 우리들이 한창 자라나는 삶의 과정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되새기는 날들이 이어지는 바람에 한 달을 정신 없이 보낸 것 같다. 올해는 또 그 중간에 부처님 오신 날이 있어 불교 신자가 아니라도 모두가 우리들이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곧이어 달력에 빨간 표시가 없어서 아무 생각 없이 보내지만 중요한 날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부부의 날이다. 부부의 날을 아시냐고 물으면 글쎄 얼마나 안다고 답할까 잘 모르겠지만 날짜로는 21일이다. 이 부부의 날은 한국에만 있는 날이다.​

 

1995년에 창원에 사는 권재도 목사 부부가 처음 제안해서 2007년에 국가기념일이 됐으니 올해로 14회를 넘겼다. 왜 21일인가. 둘(2)이 하나(1) 돼 잘살자는 뜻이라고 한다. 부부의 날은 세계에 유례가 없고 우리나라만의 국가적인 기념일이 되었다는 데서 그만큼 우리 사회가 부부의 금실과 가정의 화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뜻이다. 금실이라는 말은 ‘시경(詩經)’의 첫머리에 나오는 금슬(琴瑟)에서 유래된 말로서, 일곱 줄의 거문고라 할 금(琴)과 스물네 줄 거문고인 슬(瑟)이 같이 연주되면 더는 좋을 수 없다는 데서 나왔다. 금을 남성, 슬을 여성으로 비유하는 것도 감정과 생각이 남성보다 좀 더 풍부하고 섬세한 점을 감안하면 적절한 비유라고 생각된다.


 

 

부부의 중요성은 유교의 경전인 《중용(中庸)》에서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유교가 지향하는 떳떳한 인간, 곧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올바른 부부관계가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자의 도(道)는 가장 많이 언급되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다. 부부의 문제는 누구나 알 수 있는 것 같지만 성인이라도 그 끝을 알 수 없고, 부부의 행실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성인도 그 지극함까지 가기는 어렵다.” 그러므로 “군자의 도는 부부 사이에서 그 실마리가 만들어지고 지극히 하면 천지에 밝게 드러나게 된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성인의 가르침에다 기념일 지정이라는 배려에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혼이 부부 문제의 구체적 표출이라면 우리나라의 이혼율이 놀랍기만 하다. 우리나라는 2020년 9월 한 달 동안 9,536건의 이혼이 발생하는 등 한 해 10만 건 이상의 이혼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서도 그렇고, 아시아에서 자랑스럽지 않은 1위다.

 

이혼 사유로는 성격 문제가 첫째이고, 둘째가 경제적인 문제라고 하니 돈보다는 부부 두 사람이 마음을 합치지 못했기 때문으로 분석할 수 있겠다. 그렇게 이혼하고 나면 새로운 가정을 맺기가 어렵고 또 새 가정을 찾아간 뒤에 과거 혼인에서 생긴 자녀들이 혼인의 방해가 된다며 이런저런 학대 내지는 그 이상의 범죄로 이어지는 사례도 많고, 홀로 남겨진 보호자가 생활고로 동반 자살을 택하는 경우도 많아 심각한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부부 이야기를 하자면 퇴계 이황을 빼놓을 수 없다. 우리가 추앙하는 유학자요 선비인 퇴계는 평생 두 번 혼인했지만 모두 행복한 편은 못 되었다. 21살 때 동갑인 김해(金海) 허씨(許氏)와 결혼을 했는데 27살 때 둘째 아들을 출산한 뒤 한 달 만에 세상을 떠나 퇴계는 갓난아기인 둘째 아들과 5살인 맏아들의 양육 문제 등으로 많은 고통을 겪었다. 허씨 부인과 사별한 지 3년이 지난 30살에 안동 권씨와 재혼을 했으나 그 부인은 정신이 혼미해 갖은 실수를 저질렀다. 그러나 17년 뒤 부인이 세상을 뜰 때까지 절대 내색하지 않고 온갖 집안일을 잘 꾸려나갔다.

 

 

제자 이함형(李咸亨)이 부인과 사이가 안 좋아 얼굴도 마주치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제자에게 편지를 건넸다. “내가 일찍이 두 번 장가를 들었는데 하나같이 심한 불행을 당하였네. 그러나 이러한 처지에서도 마음을 감히 스스로 박하게 갖지 않고 잘 처리하는 데 힘을 쓴 지가 수십 년이 되었네. 그 사이에 극도로 마음이 번거롭고, 생각이 산란하여 어지럽고 고민스러움을 견디기 어려웠으나, 어찌 감정만 좇아 큰 인륜을 무시하여 홀어머니께 근심을 끼칠 수가 있겠느냐.”

 

“부인의 성질이 나빠 교화하기 어려운 예도 있고, 못생기고 슬기롭지 못한 때도 있고, 남편이 광포하고 방종하여 행실이 없는 일도 있는데 그러나 (…) 모두 남편에게 달려 있네. 남편이 반성하여 자신에게 책임을 돌리고 노력하여 잘 처신해 부부의 도리를 잃지 않는다면 대륜(大倫)이 무너지는 데 이르지는 않을 것이네.” 집으로 돌아온 이함형은 선생의 편지를 부인과 함께 눈물로 읽었다. 그날부터 이 내외는 누구보다도 금실이 좋은 부부가 돼 화목한 가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우리는 예로부터 삼강오륜을 지켜야 한다고 배워 왔다. 삼강(三綱) 가운데는 부위부강(夫爲婦綱)이 있는데 이를 흔히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해야 한다’라는 뜻으로 풀고 있고, 오륜(五倫)에 있는 부부유별(夫婦有別)도 ‘아내는 남편의 하는 일에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뜻으로 풀이해 마치 삼강오륜이 남녀평등에 어긋나는 구(舊)시대의 가르침인 양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참뜻은 ‘남편은 아내의 강(綱)이 된다’라는 것인데 강(綱)은 그물망을 이끄는 굵은 줄(벼리)을 의미하는 만큼 남편과 아내가 서로 마음이 잘 맞아 이끌고 당기며 긴밀하게 협업해야 좋은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 바른 해석일 것이다. 부부유별도 ‘부부는 별(別)이 있어야 한다’라는 것으로, 가장 가까운 사이라 할 남편과 아내도 서로 예의를 잃으면 안 된다는 가르침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5월이 지나가면서 파릇파릇하던 잎들이 점점 강해지는 햇살을 받아 진녹색 또는 검은 녹색으로 변하고 있고, 뜨거운 햇살에 풀과 나무들이 지쳐 가고 있다. 남녀의 혼인도 시간이 지나면서 신혼 초기의 달콤함이 어느새 현실 속에서 점점 쓴 고생으로 바뀌어 간다고 느끼겠지만 고생은 또 다른, 더 좋은 기쁨을 위한 거름이라고 생각하면 이런 고생을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아시아 으뜸 이혼율, 이로 인한 자녀의 방황과 가정의 붕괴라는 부끄러운 현실에서 부부 사이는 남편 하기 나름이라는 퇴계의 가르침이 다시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가정의 달 5월을 넘어서면 한여름 더위가 시작되는 6월인데, 그것을 잘 참으면 다시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온다는 것을 잊지 말자. 생물들은 무더운 여름을 잘도 참으니 시원한 가을을 맛볼 수 있는 것이라면 우리의 부부들도 남편 아내 서로 이해와 배려와 사랑으로 서로의 문제를 잘 극복해서, 두 사람만이 아니라 자식들이 가져다주는 가정의 기쁨과 행복까지를 함께 다 즐길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