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참으로 오랜만에 여의도 공원을 갔다. 공원 곳곳에 길이 나고 꽃이 피고 나무가 무성한 잎을 자랑하고 있다. 내 생각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 이 공원에 대해서 남다른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필자가 평생 근무한 KBS가 여의도 공원 남서쪽에 붙어있어 거기에 관련된 추억이 있지만, 그것과는 다른 사연이다. 넓이 23만 제곱미터, 예전 평이란 개념으로 7만여 평이나 되는 이 공원은 예전에는 벌판이었고 거기엔 공항이 있었단다. 필자도 그 공항을 본 적이 없다. 공항이 있을 정도로 동서남북이 뚫리는 거대한 벌판이었다가 70년대 초 여의도 개발이 시작되면서 그 넓은 벌판이 아스팔트로 포장돼 5.16 광장이란 이름이 붙여졌고, 거기서 국군의 날에는 국군 사열이 벌어졌다.
1977년 봄 필자가 KBS에 들어간 이후에도 그곳은 넓은 광장이었다. 그곳에서 80년대에 국풍이 열렸고 이산가족 만남도 있었고 크고 작은 행사들이 이어졌다. 평소에는 자전거를 탈 수 있지만, 끝까지 걷기도 힘들 정도로 끝없이 펼쳐진 그야말로 허허벌판이었다.
그것이 1997년에 갑자기 공원으로 바뀌게 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1995년 7월 1일 조순 전 경제부총리가 민선 서울시장으로 취임한다. 취임 이틀 전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어수선하게 시장임기를 맞았는데 몇 달 수습을 하고는 도쿄를 거쳐 10월 4일에 북경을 방문하게 된다. 서울시와 자매도시 결연을 하고 경제 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북경의 경제사무소 개소식에 참여했다. 그때 북경에 주재하는 우리 언론사 특파원들과 만나는 자리가 마련됐다. 당시 KBS북경특파원이었던 필자는 그날따라 손을 들고 질문 겸 당부말을 했다.
"조 시장님, 민선 시장으로서 막 임기를 시작하셨으니 앞으로 많은 일을 하시겠지만 3~4년은 금방 지나가지 않습니까? 저는 북경에 와서 보니까 이곳 길거리마다 공원도 많고 참으로 나무가 많습니다. 우리 서울은 그렇지 않으니, 돌아가시거든 부디 나무를 많이 심어 서울을 푸르게 만든 시장이 되셨으면 합니다."
특파원들의 까다로운 질문을 예상했던 조 시장으로서는 이런 당부 말을 듣는 것이 뜻밖이었든지 선선히 "아, 그런가요? 그렇지요. 돌아가면 서울 시내에 나무를 많이 심겠습니다"라고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나는 이듬해에 특파원 임기를 끝내고 본사로 돌아왔는데 그다음 해인 1997년에 갑자기 서울시에서 여의도 광장을 공원으로 만든다는 계획이 발표되고 여기에 5천 5백억 원에 이르는 예산이 배정되었다. 그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아 조순 시장이 그때 내가 당부한 대로 나무를 심으려 하였는데 대로마다 일일이 나무를 심기가 어려우니 아마도 여의도 광장에 한꺼번에 나무를 심으려 한 모양이군."
과연 조 시장이 그런 이유로 광장 조성을 결심했는지는 물어볼 수 없었지만, 광장은 공사를 해서 1999년 1월에 여의도 공원으로 문을 열었다. 다만 김대중 대통령이 이 공원을 만드는 것에 대해 불편한 인식을 드러내어, 공원이 개장할 때도 공개적으로 준공행사를 치르지는 않았다.
여의도 공원 완공을 본 그다음 해에 필자는 런던특파원으로 나가서 그야말로 유럽 도시의 짙은 녹음이 주는 즐거움과 여유를 보면서 우리의 여의도 광장이 공원으로 된 것이 정말로 잘한 것임을 실감하였다. 다시 국내로 돌아오니 서울 시청 앞 광장도 가운데의 차도를 잘라서 잔디밭을 만드는 공사가 곧 후임 시장 때 시작되었고 곳곳의 작은 모퉁이도 소공원으로 조성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말하자면 21세기 한국에서 시멘트와 아스팔트 도시가 푸른 녹색도시로 본격적으로 조성되는 기점이 이 여의도공원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여의도에서 시작해 시청 앞 광장으로 이어지고 또 서울에서 전국으로 퍼지면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이런 푸른 환경들이 전국에서 우리들이 시각과 마음의 풍요를 만끽하게 된 것이니 조순 시장이 처음 여의도 광장의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나무를 심자고 결심한 일이 마치 콜럼버스의 달걀만큼이나 의미 있는 중요한 공헌이었음은 이제 명백하다고 하겠다.
서울 시청 앞 광장이 잔디밭으로 바뀔 때 필자는 중국과 영국의 그런 나무가 많은 환경을 서울에도 살려야 한다는 취지로 두 번째 저서인 《청명한 숨쉬기》를 냈다. 그 책에서 나는 조순 시장이 경제학자로서, 부총리로서, 정당인으로서 활동을 많이 하셨지만 나중에는 다른 것보다도 광장을 갈아엎고 나무를 심은 시장으로만 기억될 것이다"라고 했는데, 그 책을 보신 김종규 현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께서 당시 고전번역원 원장으로서 삼성출판박물관 바로 앞 사무실에 나오시는 조순 원장에게 이 책을 드리면서 그 얘기를 드렸단다.
그런데 조순 원장께서는 "내가 한 일이 많은데 이것으로만 기억되겠는가?"라고 하셨다는데, 이 글을 읽으시는 독자들 생각은 어떠신가? 과연 지금 조순 시장은 다른 것보다도 이 여의도 공원을 만드신 분으로 위키백과 등 인터넷 사전에 그렇게 나오고 있다.
그런 역사가 있기에 나는 여의도 공원의 길모퉁이를 하나하나 돌면서 옛날 맨 처음과 비교하면 그 엄청난 변화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참으로 이 공원이 시민들의 휴식처로서, 우리들의 심성을 많이 정화해주었다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 손가락 같은 굵기의 나무들이 20년이 더 지난 지금에는 우람하게 자랐고 나무들이 숲을 이루게 되었고 개쉬땅나무에다 이름이 이쁜 비비추, 맥문동, 꽃창포도 있고, 화살나무도 있고, 자산홍도 있고 여름에는 토끼가 뛰어놀고 연못에는 오리가 헤엄치고 넓은 잔디밭에는 어린이들이 와서 그림도 그리고 책도 읽는 곳이 되었다.
이제 봄에는 벚꽃과 하나가 되어 거대한 꽃의 축제가 펼쳐지고 여름에는 더운 공기를 식혀주는 공기냉장고, 가을엔 온갖 색채의 향연을 펼치는 천연색 영화로서 여의도 공원은 그야말로 도시인들에게 '청명한 숨쉬기'를 제공하는 오아시스가 되어 있는 것이다.
회사를 나오고 북한산 자락으로 이사를 온 뒤에 이러한 한창때의 봄에 광장을 찾을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마침 지인의 결혼식이 열린 것을 계기로 이 여의도 공원에 담긴 필자와 조순 시장의 역사 한 자락을 다시 들쳐 보며 잠시 행복에 잠길 수 있었다. 이제는 매우 연로하신 조순 전 시장님, 여의도 공원의 좋은 생명의 기운을 받아서 건강을 잘 지키시고 수를 누리시기를 축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