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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장미가 우리에게 말하려는 것

우리 삶의 꽃은 역시 사랑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99]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사랑하던 소년 아도니스가 산돼지에 물려 죽었을 때, 아도니스를 살리려 아프로디테가 급히 달려오다가 가시에 찔렸는데, 그 피가 흰 장미에 떨어져서 붉은 장미가 되었다는 그리스의 신화가 생각난다. 아파트 담장에 피어난 장미들의 붉은 색이 정말로 아프로디테의 심장에서 흐른 뜨거운 피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6월이다.

 

6월은 장미의 계절이다. 요즈음 서울 등 대도시에서 장미를 자주 많이도 보게 되는데, 잘 가꿔진 정원에 따로따로 심은 장미가 아니라 담장을 타고, 울타리를 타고 줄기가 끝없이 뻗어가는 넝쿨장미(rambling rose)다.

 

우리가 어릴 때는 찔레꽃은 어디에나 많이 피었지만, 장미꽃은 보기가 쉽지 않아, 이 장미가 유럽에서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는데, 울산에 사는 향토사연구가인 이양훈 씨가 이 덩굴장미는 원래 한반도의 해당화였다가 1750년 무렵 부산 초량왜관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돼 거기서 개량되었고, 1809년에 영국의 무역업자 찰스 그레빌(Charles F. Greville)에 의해 일본에서 영국으로 보내진 뒤에 세계로 퍼졌다는 설을 전한다.

 

출전이 어디인지 확인되지 않았고 일반적으로는 중국의 것을 유럽으로 가져가서 그렇게 됐다는 설이 더 많은 것 같기는 한데 덩굴장미도 우리 땅에 그 기원이 있다는 말이 신기하게 들린다. 찔레꽃이 기원이라는 말은 있었다. 라일락 꽃도 우리나라에 자생하던 수수꽃다리라고 하지 않던가? 그런데 보면 넝쿨장미의 이 한반도 자생설이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요즈음 아파트마다 온통 넝쿨장미로 뒤덮여 있다. 그만큼 잘 자라난다는 뜻이고 이로 인해 도시의 얼굴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우리들은 크면서 장미가 들어간 노래들을 조금 듣고 자랐다. 젊을 때 가장 많이 듣던 것이 낫 킹 콜의 노래 '덩굴장미(Ramblin' rose)'였다. ​

 

덩굴장미야, 덩굴장미야

왜 네가 덩굴이 지는 건지 아무도 모르네

거친 세파에 겪으며 너는 자랐지

누가 덩굴장미 네 곁에 있어 주겠는가?

 

Ramblin' rose, ramblin' rose

Why you ramble, no one knows

Wild and wind-blown, that's how you've grown

Who can cling to a ramblin' rose?

 

 

장미는 보기엔 좋으면서도, 이 노래가사에도 나오듯이 가까이 가기가 어렵다. 가시 때문이다. 꽃의 여왕, 계절의 여왕이란 직위를 부여받았으면서도 장미는 잎 뒤에 감춘 가시들로 해서 우리들의 따뜻한 마음, 뭔가 한껏 사랑해주고 싶은 마음에 따끔한 경종을 울린다. 그러기에 이 가시는, 사랑의 상처로 비유되면서 여자들에게는 사랑의 눈물이요, 남자들에게는 사랑의 피가 되어 흐를 수 있는 것이리라. 그래서인가, 아예 장미를 거부하는 사람들도 나온다.​

 

꽃은 꽃으로만 아름답기에

나는 가시가 있는 꽃인 장미꽃을

꽃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내 가슴에 비수처럼 꽂혀있는 당신의 가시가

바로 나를 사랑의 포로로 묶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장미꽃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 윤용기, '나는 장미꽃을 꽃이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어찌 보면 자랑할 일이 아니라 부끄러운 일이지만 우리는 자라면서 미국 팝송을 많이 들었고, 그러다 보니 장미란 이름이 들어간 노래도 몇 곡은 들었는데, 앞의 낫 킹 콜의 노래가 있지만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여성가수 베트 미들러가 부른 ‘장미(The Rose)’라는 노래이다. 1979년에 나온 영화 ‘장미(The Rose)’의 주제가이기도 한데, 화려한 삶으로 사람들의 시선과 사랑을 받으면서도 그 이면에서 고단하게 살아야 했던 미국의 한 여성 록스타의 삶을 조명하면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작품이라는데 영화는 못 보고 노래만 좋아한다.

 

어떤 이는 말하죠. 사랑은 연약한 갈대를 삼키는 강물이라고

그러나 사랑은 한 송이 꽃이고 당신은 그 사랑의 씨앗입니다(가운데 줄임)

기억하세요. 겨울의 매서운 눈발 아래 깊은 곳에

봄이면 햇빛의 사랑을 받아 장미로 피어나는 씨앗이 있답니다.

 

Some say love it is a river that drowns the tender reed.

I say love it is a flower and you its only seed.

​ Just remember in the winter far beneath the bitter snows

Lies the seed that with the sun's love in the spring becomes the rose​

 

장미를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르는 데서도 보듯 장미는 본질적으로 여성이다.

 

그 아름다움이 너무나 고혹적이기에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겹겹이 켜켜이 풀어지는 꽃들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가까이서 보고 만지려다가 손가락을 찔려서 피를 흘리는 사례도 없지 않다. 그것은 아마도 겉으로 보이는 아름다움에만 빠지다가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그러니 장미는 여성을 꽃으로만 보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세상에서 아름다운 꽃을 보는 것도, 키우는 것도 그처럼 조심하고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참 무럭무럭 자라나는 덩굴들, 끝없이 뻗어가는 저 덩굴장미들도 이달이 지나면 꽃이 시들어서 진다. 저 꽃이 아름다운 것은, 영원히 필 수 없는 운명 때문이리라. 아름다움과 화려함은 영원히 지속할 수 없다. 우리 인간들도 영원히 살 수 없기에 우리의 삶이 매 순간 소중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이 아름다워지려면 지는 운명이라고 해도 우리는 꽃을 피워야 한다. 우리 삶의 꽃은 무엇일까? 그것은 역시 사랑일 것이다. 부모님의 자식 사랑, 자식들의 부모 사랑, 형제의 사랑, 친구의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나라에 대한 사랑, 이 모든 사랑이 곧 우리가 아름답다고 칭찬하는 장미꽃이 말없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