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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산을 유람하는 것은

산에서 진정한 독서를 함은 어떤가?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08]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조선 중종 때 우부승지로 있던 송재(松齋) 이우(李堣)는 1512년 늙으신 모친 봉양을 위해 벼슬을 버리고 고향 안동 도산에 와 있으면서 일찍 부친을 여읜 열두 살의 조카 황(滉, 퇴계)에게 《논어(論語)》를 가르치는 한편 그 이듬해인 1513년 봄에는 황의 여섯 살 위 형인 해(瀣, 온계)를 자신의 두 사위와 함께 청량산에 들어가 공부를 하도록 했다. 이때 이우는 이들에게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열한 수의 시를 지어주었는데 첫 시는 이렇다.​

 

讀書人道若遊山 사람들은 말하지, 독서가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아서

深淺優游信往還 깊고 얕은 곳을 여유 있게 마음대로 오간다고.

況是淸凉幽絶處 하물며 청량산 그윽하고 빼어난 그곳은

我曾螢雪十年間 내 일찍이 10년간 형설의 공을 이룬 곳임에랴?

 

... 이우, '청량산으로 독서하러 가는 조씨 오씨 두 사위와 조카 해를 보내며'

 

 

여기에서 독서가 곧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는 유명한 화두(話頭)가 하나 생겼다. 퇴계는 숙부, 중형을 따라 청량산에 들어가 길게 공부를 했거니와, 자신에게 공부를 가르치신 숙부의 은공을 생각하며 뒤에 독서하는 것이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는 숙부의 화두를 산을 유람하는 것이 독서와 같다는 것으로 바꾸어 제자들에게 전해준다;

 

               遊山如讀書(유산은 독서와 같으니 )

 

​                                                                 - 이황

 

讀書人說遊山似 독서가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今見遊山似讀書 이제보니 산을 유람함이 독서와 같구나.

工力盡時元自下 온 힘을 쏟은 후에 스스로 내려옴이 그러하고

浅深得處摠由渠 얕고 깊은 곳을 모두 살펴야 함이 그러하네. ​

 

座看雲起人知妙 가만히 앉아 구름이 일어나는 묘함을 알게 되고

行到源頭始覺初 근원의 꼭대기에 이르니 비로소 원초를 깨닫겠네.

絶頂高尋勉公等 그대들 절정에 이르길 힘쓸지니

老衰中輟愧深余 늙어 중도에 그친 내가 심히 부끄러울 따름이네.​

 

곧 독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공부를 해서 성취하는 일이라는 것이 결국엔 산을 올라 산을 제대로 보고 즐기는 것과 다름이 없지만, 산을 오르고 내리고 하면서 산의 진면목을 보고 그 의미를 체득하는 것이야말로 공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을 제자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실제로 퇴계는 1543년 당시 한양에 들어온 《주자대전》이 한양에서 간행되자 이를 구해서 한여름 내내 두문불출 이 책을 공부하느라 무더위도 잊었다고 한다. 주변에서 더위에 몸을 상할 수 있다고 걱정을 하면 선생은 말씀하시길 ‘이 책을 읽으면 문득 가슴 속에서 서늘한 기운이 일어나서 저절로 더위를 잊어버리는데, 무슨 병이 나겠는가?’ 하였다. 그야말로 독서를 하는 것이 산을 다니는 재미를 다 느낄 수 있음을 실증해 보인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퇴계의 가르침에 대해 퇴계의 문인인 설월당(雪月堂) 김부륜(金富倫, 1531~ 1598)은 퇴계의 이 시를 차운(次韻)해서​

 

誰把遊山曾善喩 누가 독서를 유산에 잘 비유했더구나

恰如窮讀聖賢書 정말로 성현의 책을 읽는 것과 흡사하네

百層勇往知由己 백겹의 용맹정진은 자기 자신이 하는 것

一鑑淸來試問渠 거울처럼 맑은 깨달음도 물어 얻는 법

 

胸與眼寬雲散後 가슴과 눈 앞이 구름이 흩어진 후처럼

氣兼神靜月明初 기운과 정신이 막 떠오른 밝은 보름달

何時得到眞佳境 언제쯤 진정한 그 경지에 도달할 것인가

萬壑千峯摠在余 만학천봉 선경이 다 내가 함에 달렸지

 

                ... 독서가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삼가 차운하며(敬次讀書如遊山韻)

 

이렇게 독서를 유산에 비견하는 가르침은 성리학자들 사이에서는 공통의 깨우침이 된 듯 21살 되는 1563년에는 퇴계를 찾아 도산 문하에서 성리학을 배웠고 3년 뒤에는 남명 조식의 제자가 됨으로써 퇴계와 남명의 학문을 모두 섭렵하고 조선 중기 영남 사림의 대표적인 학자가 된 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도

 

夫讀書如遊山 무릇 독서는 산에서 노니는 것과 같다

有登山未半而止者 산을 오름에 반(半)도 못 오르지 그치기도 하고

有歷遍而未知其趣者 산을 다 다니고도 정취를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必也知其山水之趣 반드시 그 산수의 정취를 다 알아야만

方可謂遊山 비로소 산을 유람하였다고 할 수 있지

 

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한 그의 뒤를 이은 많은 남명의 제자들은 지리산을 답사하며 유산기를 많이 남겼다. 이렇게 산을 오르면서 학문의 방법을 다시 생각하고 자세를 가다듬는 것이 조선조 후기 성리학자들에게 전통으로 굳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청량산은 다른 산에 견줘 산세가 작지만 가장 많은 유산기를 남기고 있는데 그것은 청량산의 기상이 다른 어떠한 산보다 뛰어나며 단정한 선비의 상을 형상하고 있고 또 퇴계가 이 산을 오가산(吾家山)이라 부르며 이 산에서 공부해서 그 발자취가 어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조 말기의 대표적인 도학자였던 향산(響山) 이만도(李晩燾 1842~1910)는 직계 선조인 퇴계의 윗 형으로서 일찍이 명종 때 간신들에 몰려 일찍 세상을 뜬 온계(溫溪) 이해(李瀣 1496~1550)를 위한 신도비각 상량문에서​

 

兒郞偉拋梁東 어영차 들보를 동쪽으로 하니

淸凉玉立古今同 청량산은 고금에 변함없이 옥처럼 섰구나

讀書自是遊山似 독서는 본래 산을 오름과 같이 해야 하고

懿訓須看釘壁中 아름다운 가르침은 절벽에 못을 박듯 해야 하네

 

兒郞偉拋梁上 ​어영차 들보를 위로 하니

靑天曙日人皆仰 푸른 하늘의 밝은 해를 사람들이 모두 우러르네

當年心事與爭光 당년의 심사가 일월과 빛을 다투니

嗟爾陰虹何敢障 아! 흐린 무지개가 어찌 가릴 수 있으랴

 

​라며 온계가 유산을 하는 자세로 학문을 함으로써 그 행실이 일월과 같이 빛난다는 것을 표현해놓았다. 그 동생인 퇴계는 태백산ㆍ소백산 밑에서 출생하여 우리나라 유학의 종장이 되었다. 그 학통을 이어받은 인물들은 이 청량산을 오르며 자신을 깊이 함양하여, 겸손하게 처신하고 겸양할 줄 알며 찬란한 문채를 빛내주었다.

 

18세기 초의 성리학자인 어유봉(魚有鳳 1672~1744)은 <동유기(東遊記)>라는 글에서​

 

“산을 유람하는 것은 독서를 하는 것과 같다. 보지 못한 것을 보는 것도 좋기는 좋지만 실은 충분히 익히고 또 익히는 데 핵심이 있다. 굽이굽이 환하게 파악하고, 그 자태를 또렷하게 간직하고, 그 정신과 통해야만 비로소 터득하는 것이 있다. 서둘러 대강 섭렵하고서야 무슨 수로 그 오묘한 경지로 나아갈 수 있으랴?”​

 

라고 한 것도 이런 차원으로 해석될 수 있다.​

 

그런데 그러면 이 말, 독서와 유산이 같다는 말은 송재 이우가 처음 쓴 말인가? 이런 의문을 가지고 자세히 보니 송재의 시에 “사람들이 말하기를...”이란 수식어를 붙여놓은 것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서 지난 선비들의 글을 찾아보니 뜻밖에도 고려말의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년∼1396)이 이런 말을 한 것이 있다;​

 

讀書如游山 글 읽기란 산을 오르는 것 같아

深淺皆自得 깊고 얕음 모두 자득함에 달렸도다. ​

 

이 시를 보면 산을 올라 그 깊고 얕은 맛을 아는 것은 다 자기 하기 나름이라는 기본 개념은 같다고 본다면 송재나 퇴계가 애용한 이 표현의 원조는 아마도 목은 이색이 아닐까 싶다.​

 

혹시나 해서 중국인들이 이런 표현을 하지 않았을까 검색해보아도 나오지 않고 겨우 청나라 건륭제 때 학자인 효람(曉嵐) 기윤(紀昀 1724~1805)이 독서를 주제로 한 시에서​

 

讀書如游山 책을 읽는 것은 산을 노니는 것과 같아서

觸目皆可悅 눈길 닿는 것이 다 즐겁다네

千巖與萬壑 뭇 바위와 골짝에

焉得窮曲折 어찌 곤궁과 곡절이 있겠는가

煙霞滌蕩久 안개와 노을이 오래도록 말끔히 씻어주고

亦覺心胸闊 또한 깨우쳐 가슴속을 시원하게 해주지

所以閉柴荊 그러므로 사립문을 걸어 잠그고

微言終日閱 하루종일 나직히 소리내어 책을 읽는다네

라고 해서 시작은 독서가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도 책을 읽으라고 권하는 시를 남긴 것 외에는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없다. 기윤이란 사람은 송재나 퇴계보다도 2백 년 뒤의 사람이니 아마도 우리나라 서적에 나온 것으로 보고 그런 표현을 쓴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러므로 독서는 산을 유람하는 것과 같다는 목은 이색, 송재 이우, 퇴계 이황 등의 표현은 산이 많고 산에 올라가 공부도 하고 유람도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지리환경적 특성에서 산출된 독득한 개념이라고 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 같다.

 

근세 이후에 우리나라에 유산기가 많아진 것도 이런 영향이 아닐까 본다면 산을 오르는 끈기와 땀, 정상에 올라서서 느끼는 장쾌함, 눈 아래 펼쳐지는 온갖 지형들이 갖고 있는 파노라마의 멋진 감동... 이런 것들이 우리들에게 산으로 올라오라고 부르듯이 마찬가지로 독서라는 것도 단순히 책을 읽는 차원을 넘어서서 학문의 본령, 인생과 우주의 본 면목을 탐구하는 과정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이 중국과 다른 점이다. 중국인들은 산에 대해서는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다.

 

 

여름이라고 덥다고 다들 산과 물을 찾는다. 단순히 몸을 식히러 간다면 산에 올라가는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겉만 보고 오는 것이 된다고 옛 선인들이 말하는 것 같다. 더운 계절인 만큼 몸을 식히려 산에 올라가는 것에다 기왕이면 산에서 우리의 심성을 알고 단련하는 그런 공부, 그런 진정한 독서를 하는 것은 어떤가?

 

보충자료​

 

독서(讀書) / 목은 이색(李穡)​

 

讀書如游山 독서여유산

深淺皆自得 심천개자득

淸風來沈寥 청풍래침요

飛雹動陰黑 비박동음흑

玄虯蟠重淵 현규반중연

丹鳳翔八極 단봉상팔극

精微十六字 정미십육자

的的在胸憶 적적재흉억

輔以五車書 보이오거서

博約見天則 박약견천칙

王風久蕭索 왕풍구소삭

大道翳荊棘 대도예형극

誰知蓬窓底 수지봉창저

掩卷長太息 엄권장태식

 

글 읽기란 산을 오르는 것 같아

깊고 옅음 모두 자득함에 달렸도다.

맑은 바람은 공허한 데서 불어오고

날리는 우박은 어두운 곳에서 내린다.

검은 교룡은 깊은 못에 서려 있고

붉은 봉황은 하늘로 날아오른다.

정미한 열여섯 글자들

분명하게 가슴에 간직하노라.

다섯 수레의 책 읽어서 깁고

박문하고 검약하여 하늘의 이치 보노라.

왕의 기풍은 오래도록 쓸쓸하고

큰 도는 가시밭길에 가려 있도다.

누가 알겠는가, 창문 아래에서

책을 덮고 길게 탄식하고 있는 것을​

 

夫讀書如遊山(부독서여유산) 무릇 독서(讀書)는 산(山)에서 노니는 것과 같다.

有登山未半而止者(유등산미반이지자) 산(山)을 오름에 반(半)도 오르지 못하고 그치는 자(者)가 있고

有歷遍而未知其趣者(유력편이미지기취자) (산을) 두루 다니면서도 그 정취(正聚)를 알지 못하는 자(者)가 있다.

必也知其山水之趣(필야지기산수지취) 반드시 그 산수(山水)의 정취(正聚)를 알아야만

方可謂遊山(방가위유산) 비로소 산을 유람(遊覽)하였다고 하리라.

 

鄭逑(정구).本貫:淸州(청주).字:道可(도가),號:寒岡(한강).諡號:文穆(문목). 朝鮮中期(조선중기)文臣(문신)學者(학자). 中宗(중종) 38年(1543∼1620)光海君 12年.

 

독서(讀書) / 기효람(紀曉嵐 1724∼1805)

 

讀書如游山 觸目皆可悅 독서여유산 촉목개가열

千巖與萬壑 焉得窮曲折 천암여만학 언득궁곡절

煙霞滌蕩久 亦覺心胸闊 연하척탕구 역각심흉활

所以閉柴荊 微言終日閱 소이폐시형 미언종일열

 

책을 읽는 것은 산을 노니는 것과 같아서

눈길 닿는 것이 다 즐겁다네

뭇 바위와 골짝에

어찌 곤궁과 곡절이 있겠는가

안개와 노을이 오래도록 말끔히 씻어주고

또한 깨우쳐 가슴속을 시원하게 해주지

그러므로 사립문을 걸어 잠그고

하루종일 나직히 소리내어 책을 읽는다네​

 

※ 焉得: 어찌 ∼일 수 있는가. 강한 부정의 의미

※ 滌蕩: (더러운 것을) 말끔히 없앰.

※ 柴荊: 사립문(柴門)​

 

 

雪月堂先生文集卷之一 / 詩

 

敬次讀書如遊山韻

誰把遊山曾善喩。

恰如窮讀聖賢書。

百層勇往知由己。

一鑑淸來試問渠。

胸與眼寬雲散後。

氣兼神靜月明初。

何時得到眞佳境。

萬壑千峯摠在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