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무더운 여름 날씨가 정점을 치닫고 있다. 말복을 지났으니 이제 더위도 수그러들 것이지만 책상 앞에 앉아있으려면 여전히 덥다. 선풍기를 틀고 있지만, 머리 쪽으로 열이 몰린다. 어쩔 수 없이 꺼내든 부채, 여름 내내 자주 활활 부치던 선면(扇面)에는 네 글자가 써있다. ‘隱惡揚善(은악양선)’이다. 지난해 여름에 안동 도산면에 사시는 우리 집안의 종손이 갖고 다니시던 것을 내가 빼앗은 것인데,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 김병일 이사장이 이근필 퇴계 종손과 함께 퇴계의 친필 중에서 이 글씨를 뽑아 부채로 만들었고 그 가운데 하나를 기념으로 받은 것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의 악행은 덮어주고 다른 사람의 선행은 드러낸다”라는 뜻의 이 말은 유교의 경전인 《중용(中庸)》 6장에 나온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순(舜) 임금은 크게 지혜로운 분이실 것이다. 순 임금은 묻기를 좋아하고, 평범한 말을 살피기를 좋아하시되, 악(惡)을 숨겨주고 선(善)을 드러내시며, 두 끝을 잡고 헤아려 그 중(中)을 취한 뒤에 백성에게 쓰셨으니, 이 때문에 순 임금이 되신 것이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성인으로 평가받는 순(舜) 임금이 임금이 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이런 은악양선을 했기 때문이라고 공자가 진단한 것이다. 어찌 보면 이 세상을 이끄는 요체, 정치의 핵심이 바로 은악양선이라고 공자가 말한 것이다. 그런데 선비문화수련원에서 이 부채를 나눠주는 것은 이것을 실천하라는 뜻일 텐데 여기에는 수련원의 김병일 이사장의 개인적인 사연이 있었다고 한다.
김병일 이사장이 경기도 용인 모현읍에 있는 포은 정몽주(1337∼1392) 선생의 묘소를 답사할 때 묘 앞에 세워진 우암 송시열(1607∼1689)이 쓴 신도비의 비문를 읽다가 퇴계 이황(1501∼1570)에 대해 언급한 구절에 눈길이 오래 머물더란다.
옛날에 어떤 사람이 (포은 선생을 두고) 퇴계 이 선생에게 묻자 대답하기를, ‘허물이 있는 가운데서도 마땅히 허물이 없는 것을 찾아야 하지, 허물이 없는 데서 허물이 있는 것을 찾아서는 안 된다(當於有過中求無過, 不當於無過中求有過·)’라고 했으니 참으로 지당한 말씀이다.
포은 정몽주에 대한 공과를 정리하면서 퇴계의 평가를 인용한 것은 퇴계의 말을 우암 자신도 전적으로 지지한다는 뜻이리라. 다시 말하면, 퇴계와 우암은 포은에 대해 그가 나라를 위해 보인 충성심과 성리학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無過ㆍ무과)를 높이 받들 뿐이지, 고려말 우왕과 창왕을 섬긴 그의 처신(有過ㆍ유과)을 문제 삼아서는 안 된다는 데 전적으로 견해를 함께하고 있고. 두 분의 이러한 견해는 요순(堯舜)시대 이래의 오래된 지혜를 잘 대변한다는 것이다.
곧 순 임금이 보여준 ‘허물은 덮어주고 착한 것은 드러낸다’라는 덕목이 그를 요 임금을 이어받는 천자 자리로 끌어올린 것처럼 우리가 일상 속에서 실천한다면 무슨 일인들 못 이루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글귀를 부채에 담아 나누고 있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실 이 구절은 공자가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치지도자들에게 말한 것이라고 한다. 중국 당(唐)나라의 정치가 한유(韓愈)는 사대부들이 서로 헐뜯기를 일삼고 있는 현실을 비판하는 글인 '원훼'(原毁)에서 "순 임금과 같은 점은 좇고, 순 임금과 같지 않은 것은 멀리해야 정치가 안정되고 백성들의 다투는 마음이 없어진다"라고 했다. 정치가들의 은악양선이 정치를 안정시켜 백성을 편하게 한다는 뜻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ㆍ문신인 조익(趙翼:1579∼1655)은 당시 임금에게 귀가 거슬리는 말을 했다는 까닭으로 대사헌이 자리에서 쫓겨나자 임금에게 글을 올려
대저 언관(言官)이 말을 하는 것이 어찌 그가 좋아서 하는 일이겠으며, 또 어찌 자기에게 유리해서 그러는 것이겠습니까. 단지 그가 말을 하는 것을 자기의 직분으로 삼고 있는 만큼, 말을 해야 할 때 말을 하지 않는다면 말을 해야 하는 자기의 직분을 무시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기만 직분을 무시해서 사류(士類, 학덕이 높은 선비의 무리)에게 비난을 받게 될 뿐만이 아니라, 조정의 입장에서도 잘못되는 일이 실로 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서 말을 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그러므로 임금으로서는 항상 언관을 우대하여 숨김없이 모두 말하도록 해야 하고, 언관이 말한 것 중에 혹시 타당하지 못한 점이 있다 하더라도 관대히 용서해 주어야 하며, 느닷없이 꺾고 부러뜨려서 언로(言路)에 방해되는 일이 있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니, 이것이 바로 은악양선(隱惡揚善)하는 도라고 할 것입니다.
라면서 정치에 있어서 옭고 바름을 논하는 언관들을 대하는 데에도 은악양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예로부터 언관, 혹은 언론은 정치가 잘못되는 것을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였다. 조선시대 언관들은 임금의 잘못을 지적하다가 목숨을 잃거나 귀양을 가곤 했지만, 임금은 그들의 입을 막지는 못했다. 요즘 정치권이 가짜 뉴스를 막는다는 이유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급하게 밀어붙이는 것이 언론의 재갈을 물리려는 것이란 비판이 높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임금이 스스로 은악양선해야 한다고 신하들이 촉구한 것이다. 옳은 말을 하는 언관들을 혼내거나 벌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먹고사는 생활수준이 나아졌음에도 우리들 삶이 이전보다 점점 외롭고 팍팍해지고 포악해지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대통령 선거에 나서는 정치인들은 서로 남을 비방하고 헐뜯기에 바쁘다. 자기 진영끼리도 그런다. 다시 사회가 찢어지고 있다. 허구한 날 세상 탓, 남 험담만 할 것인가? 상대를 나무라고 지적만 할 것인가?
우리 사회를 안정시키고 살맛 나는 사회로 이끄는 묘방이 은악양선(隱惡揚善) 내 글자에 있지 않을까? 있는 허물을 억지로 덮을 수는 없겠지만 없는 허물도 억지로 만드는 세상이 계속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부채에 새겨진 퇴계의 글씨에서 은악양선의 시원한 바람이 일어 우리 사회를 덮고 있는 무더위와 짙은 안개, 미래를 위협하는 먹구름을 걷어가기를 희망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