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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제가 미쳤다고요?

한 나무에 여러 색깔의 꽃들, 어떻게 볼 것인가?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1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달포 전 아침 운동으로 둘레길을 돌다가 눈썰미 좋은 부인이 단풍나무 아래에 떨어져 있는 조그만 잎 하나를 집어 들어 보여준다. 아직 낙엽으로 떨어질 철이 아닌데 홀로 떨어진 그 잎은 팔방으로 뻗은 잎맥을 따라 빨간색이 안에서부터 번지는 모양이다. 보통은 잎이 다섯 개 정도 갈라져 있는데 이것은 8개나 되어 별종은 별종이네. 그래서 미운 오리새끼처럼 별종이라고 따돌림당해 먼저 가출한 것인가? 어찌 보면 미친 것이 아닌가?

 

 

미치지 않았으면 그렇게 혼자서 먼저 빨갛게 변할 이유가 없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미친 단풍잎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다가 서울의 대학 구내에 있는 '미친 나무'라 불리는 벚나무가 생각이 났다.​

 

'미친 나무'는 연세대 신촌캠퍼스의 한글탑 옆에 서 있는 벚나무 한그루를 말한다 이 나무에는 한 나무에 흰꽃, 분홍꽃, 진분홍의 벚꽃이 마치 ‘미친 듯이’ 함께 피기 때문에 그런 별명을 받았고 꽃이 한꺼번에 피는 때가 되면 해마다 이 나무를 보러오는 학생과 시민들이 많다.


 

 

왜 이 나무가 이처럼 ‘미쳤을까?’ 한 언론(2008년4월18일 동아일보)은 “부분 돌연변이가 일어난 나뭇가지를 꺾꽂이해 심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한다. 이 나무는 벚나무의 친척뻘인 겹벚나무로, 원래 꽃색은 진분홍이었는데, 이미 돌연변이가 일어난 겹벚나무의 가지를 꺾꽂이해 심었다면 정상 부분과 돌연변이가 일어난 부분이 각각 자라면서 나무 전체로는 돌연변이와 정상 부분이 뒤섞여 성장하게 되고 이 때문에 어떤 곳에서는 흰 꽃이, 다른 곳에서는 분홍 꽃이 피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조금 궁색해 보이는 전제이지만 당시 이 기사를 본 필자는 조금은 화가 났다. 이 미친 나무가 우연히 나온 것이라는 관점, 그리고 그런 나무를 ‘미쳤다’라고 부르는 관점이 화나게 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그 전 달 일본 오사카에 가서 본 수많은 ‘미친 매화나무’들 때문이었다.

 

 

오사카시 한가운데에 있는 오사카성(城)은 관광객들이 오사카에 가면 무조건 찾는 필수코스인데, 성안 한가운데에는 천수각(天守閣)이라는 높은 건물이 있고 그 동쪽에 매림(梅林)이라고 하는 매화나무 공원이 널따랗게 조성되어 있다. 대개 3월 중순이면 이 매화공원의 매화들이 만개한다. 이때 이곳을 방문해 보면 하얀, 연한 우유빛의, 연한 연두색의, 아주 빨간, 분홍의, 선홍의 갖가지 매화들이 피어나서 화려한 꽃동산을 볼 수 있는데 그 속에서 한 가지에 붉은 꽃과 흰 꽃이 동시에 피는 것이 많다. 꽃의 색깔도 한 색이 아니고 여러 형태로 섞여 있는, 말하자면 우리 식으로 말하면 '미친' 매화들이다.​

 

일월(日月)이란 이름의 ‘미친’ 벚꽃이 있었다. 이 품종은 분홍과 흰 꽃이 나란히 피어있다. 아마도 해와 달이 같이 있다는 뜻에서 붙인 이름인 것 같다.

 

 

 

아즈마니시키(東錦)라는 이름의 매화도 있다. 아즈마란 곳은 오사카 동쪽, 나라에 가는 길에 있는 지역 이름이기에 여기의 비단이란 뜻이니. 이름 그대로 나무에 붉은 꽃과 흰 꽃이 뒤섞여 마치 울글불긋한 비단을 보는 듯하다.

 

 

한 꽃에서도 꽃잎 색깔이 다른 것도 있다. 다섯 개의 꽃잎 가운데 4개는 흰색이고 하나만 분홍색인 매화들도 있다. 단펜쵸시(単弁跳枝:단판도지)라는 어려운 이름이 붙은 또 다른 품종은 홑꽃잎에 꽃술이 엄청 힘차게 뻗어 나온 것에서 이런 이름을 붙인 것 같다.

 

 

 

그렇게 색이 섞인 것 말고도 한 색이지만 농담의 차이가 많은 꽃들도 있었다. 바로 ‘새벽녘(しののめ)’이라는 이름이 붙은 꽃은 꽃잎은 분홍색인데 꽃술이 시작되는 곳에서부터 마치 아침 햇살이 퍼지듯 진한 빨간 색이 퍼져 오르는 품종이다.

 

 

아프리카 플라멩고 학을 연상시키는 '붉은 백로의 춤(朱鷺の舞)'이란 품종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 매화들은 ‘미친’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에 의해서 ‘개량’된 것들이다. 오사카의 매림에 있는 매화품종만 해도 100종이 넘는데 모든 매화나무가 미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손에 의해 ‘개량’된 것이고,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서, 꽃잎과 꽃술의 색깔이나 모양, 가지의 방향과 형상에 따라 서로 다른 품종들이 만들어져서 갖가지 자태를 경쟁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품종들은 변종을 만들어내는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매화가 백여 종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육종학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의 수많은 노력으로 얻어진 결과물이지, 결코 나무가 ‘미쳐서’ 나온 결과가 아니다. 이러한 현상은 매화나무나 벚나무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원예를 하는 분들은 일본에서 만들어낸 수많은 품종을 보면서 모두 열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석창포(石菖蒲)라는 수생식물도 백 가지가 넘는 품종들이 나와 있다. 그 품종들도 ‘미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학자들이 밤을 새우며 연구해서 만들어낸 새 품종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나던 동식물의 고유품종을 제대로 지키지 못해 멀리 미국이나 일본에 가서 종자를 역수입해서 가져와야 한다는 보도를 들으신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정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육종학 연구가 갈 길이 많이 남았다는 지적이 있다. 남해안에 봄이 되면 넓은 매화밭에서 매화들이 꽃 피는데 그들의 품종이 어떻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 그만큼 우리가 무신경한 측면도 있다.​

 

그러고 무엇보다도 특이한 품종에 대해서 그것을 ‘미쳐서’ 나온 것으로 보아버리고 마는 세태가 문제라 하겠다. 무엇이든지 특별한 것이 있다면 그 이유를 찾아내서 새로운 품종을 만들어내고, 그렇게 해서 그것을 여러 사람이 공유하는 풍토, 그렇게 해야 새로운 품종이 나오는 것이지 그냥 미친 품종이라고 치부해버리면 안 되지 않을까?

 

 

 

처음 빨개진 단풍잎을 주운 곳을 한 달 뒤 다시 가보니 그 단풍나무만 잎이 빨갛게 물드는, 정말로 특이한 품종이었다. 이런 멋진 색의 대비를 보여주는 이 나무를 우리가 새로운 품종으로 개발해내면 어떨까? 이런 잎의 변이, 색의 변이가 오는 품종을 많이 만들어보면 보기 좋을 텐데... 우리도 다양한 단풍나무 수종(樹種)을 만들어 이를 공원으로 키워내서 세계에 자랑할 수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그냥 '미친 이파리 하나'라고 생각하고 던져버리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것을 새로운 육종학의 도전영역으로 생각하면 다양한 도전과 성취의 길이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사상의 획일성에 익숙해져 있고, 사회적인 기준이나 통념, 자신들과 조금 다른 생각을 하면 이를 무시하거나 억누르려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다양함은 획일성을 벗어나는 데서 시작되며, 미친 듯이 보이는 것에서 시작될 수 있다. 우리가 비정상, 이상한, 미친 것들이라고 지나쳐버리는 영역에서 새로운 탐구와 추구의 가능성이 있지 않겠는가?

 

홀로 땅에 떨어진 빨간 단풍잎은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저를 미쳤다고 그냥 지나치거나 버리지 마세요. 저처럼 특별한 것이 멋있고 좋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