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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세계를 누비다, 뭉우리돌을 찾다

《뭉우리돌의 바다》, 김동우, 수오서재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뭉우리돌’은 둥글둥글하게 생긴 큰돌을 뜻하는 우리말로 《백범일지》에 쓰였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된 김구는 일제 순사로부터 “지주가 전답에서 뭉우리돌을 골라내는 것이 상례”라며 고문과 함께 자백을 강요받는다.

그 말을 외려 영광으로 여긴 김구가 '나는 죽어도 뭉우리돌 정신을 품고 죽겠고, 살아도 뭉우리돌의 책무를 다하리라' 다짐한 데서 제목을 빌렸다."

                - 머리말 중에서 -

 

《백범일지》에 이어, 오랜만에 독립운동 관련 책으로는 전국민적 사랑과 관심을 받은 책 《뭉우리돌의 바다》이 나왔다. tvN 인기예능 <유퀴즈온더블럭>에 소개된 것도 한몫했지만, 이 책이 가진 가치와 매력을 알아본 눈이 그만큼 많았던 덕분이다.

 

 

이 책은 사진작가인 한 청년이 2017년부터 2018년까지, 2년여 동안 세계 각지에 흩어져있는 독립운동의 흔적을 한 곳 한 곳, 발품을 팔며 셔터를 누른 기록이다. 작가 스스로 뭉우리돌 정신을 가지고 비범한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책이다.

 

한국 독립운동의 흔적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갔고, 후손들도 만났다. 중국, 인도, 멕시코, 쿠바, 미국, 러시아, 네덜란드,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9개국의 독립운동 사적지를 돌며 후손을 수소문하고, 긴 노력과 기다림 끝에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이런 여정을 시작한 것은 인도 뉴델리 레드포트(Red Fort)에 숨은 독립운동사를 발견하면서부터다. 레드포트를 찾았던 작가는 우연히 광복군 이야기를 듣게 됐고, 그 이야기에 끌려 이 작업을 시작했다.

 

레드포트는 2차세계대전 당시 주인도 영국군 총사령부가 주둔하고 있던 곳으로, 전장에서 포로 심문과 암호 해독 등이 필요했던 영국군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병력 파견을 요청한다. 임시정부는 이에 응하여 한지성, 나동규, 김성호, 문응국 등 일본어와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수 있는 9명의 ‘인면전구공작대(印綿戰區功作隊)를 인도에 파견했다. 2차대전 참전국 지위를 얻는 것이 전후 협상에서 민족의 미래를 자주적으로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파견된 병력은 1943년 8월 레드포트에 도착, 영국군 휘하에서 통신 감청 등 다양한 훈련을 받으며 인도ㆍ미얀마 전선에서 2년 동안 활약했다. 특히 1945년 3월, 일본군으로부터 노획한 작전 문서를 해독해 전선 깊숙이 들어간 영국군 제17사단 전원을 무사히 귀환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뉴델리에 가본 사람은 참으로 많을 것이지만, 이런 숨은 역사를 아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되겠는가. 나 또한 교과서에서 인도ㆍ미얀마 전선에 파견되어 활약했던 광복군의 이야기를 읽었지만, 한 줄로 스쳐 지나갔을 뿐 그곳의 지금 모습은 한 번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제는 그래서는 안 된다. 국책사업으로 해도 모자랄 이 일을, 한 사진작가가 뭉우리돌 정신으로 이루어냈다는 것이 너무나 대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이런 책이 계속해서 나오려면 정부는 지원을 아끼지 않고, 독자들은 많이 사는 선순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p.261)

잃어버린 역사, 증거의 현장

 

‘망국(亡國)’

살아 있는 모든 게 울음을 터뜨려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날

누군 그 울분 참지 못해 목을 맸다

누군 산에 들어가 총을 들었다

누군 실낱같은 희망을 안고 터전을 등졌다

 

전 세계 여기저기 보석처럼 박혀 등불이 된 사람들

우린 그들을 잃어버렸고

실체가 있어도 보지 못한 시간을 지났다

 

거짓 없는 침묵이 흐르는 현장은 말이 없다

망국 앞에 진실했던 몸부림,

찬양은 신의 것이 아니고

반성은 이제 나라 잃어버린 자들의 몫이 아니다

이 모두 그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의 것일 뿐

 

 

 

기억은 시간이 지나면 바랜다. 퇴색되고 사라진다. 우리가 ‘기억’을 ‘기록’으로 남겨야 하는 까닭이다. 이 책은 머리말에서부터 그 취지를 분명히 밝힌다. 3‧1혁명‧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돌을 맞아, 희미해져 가는 역사의 기억을 ‘기록’으로 또렷이 하기 위해서라고 말이다.

 

수많은 사람이 전 세계로 흩어져 저마다의 방식으로, 힘이 닿는 데까지 격렬히 투쟁했다. 그 과정에서 개인의 삶은 바스러졌고, 끝내 한 줄 기록조차 남기지 못한 이들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더없이 소중하다. 기억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하나의 기록으로 탄생시키는 일, 이것이 이역만리 타국에서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했던 이들에게 바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일 것이다.

 

작가는 2편으로 만주, 일본, 동남아, 국내 독립운동사적지를 차례로 담아낼 계획이다. 장차 더 많은 후원이 이루어져 계속해서 이런 책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 그들의 노고로 나라 잃은 망국의 설움을 겪지 않아도 되는 후손으로서, 열혈독자가 되어 보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