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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저 앞에 봄이 있네

우리에게 봄을 가져다줄 사람은 누구?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3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마침내 설을 지냈다. 요란한 호랑이 해의 설인데 눈이 많이 내려 온통 세상이 하얗게 뒤덮이는, 그야말로 설(雪)의 설이 되었다. 새벽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이 아침이 되어 중부지방, 특히나 내가 사는 북한산 일대를 덮어주니 마음이 그리 포근할 수 없다. 일찍 산에 올라 눈을 밟을 때의 그 소리. 바람에 흩날리는 눈가루들이 얼굴을 때릴 때의 상큼한 느낌, 가지마다 붙은 눈가루들로 해서 나무와 숲과 산이 보여주는 깨끗하고 고결한 자태... 설에 큰 눈이 온 것은 아주 귀하다는 기상당국의 설명 그대로 설에 주는 진정한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올겨울은 좀 춥기도 추웠고 눈이 가끔 오곤 해서 겨울다웠다고나 할까, 아침의 쌀쌀함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날이 꽤 많았던 것 같다. 코로나 속에서도 설이라고 6인 이하로 가족들이 만나고 정을 나누고 하다 보니 어느새 입춘이다. 곧 봄기운이 들어서는 날이란 뜻이리라. 아마도 예년 같았으면 기온이 올라 남녘에서는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가 여기 서울에까지 올라올 것이련만, 올해는 아직 소식이 없는 것이 역시 올겨울 추위가 제법 매서웠다는 뜻이리라. 그렇더라도 꽃나무에는 새 꽃의 기운이 망울망울 맺히고 있는 것은 알 수 있다.​

 

역시 봄은 좋은 것이다. 봄이 왜 좋으냐고 하면 잎이 떨어져 썰렁하던 대지에 새싹과 잎이 나오고 꽃이 피기 때문이라고 하겠는데 상대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것은 겨울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겨울 덕택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겨울이 있기에 봄이 좋은 것은 맞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매화가 꽃을 피우면 그 자태와 향기를 칭찬하는 것은 긴 겨울이 우리에게도 매화에도 시련과 고통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매화나무가 고통과 시련을 이기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내뿜는 것이 매화를 꽃 중의 꽃으로 예우하도록 하는 것이리라. 고통 없는 기쁨이 없고 시련 없는 즐거움이 없다는 이치는, 바로 매화에서 보듯, 우리 계절에 겨울이 있기에 봄이 좋다는 교훈을 알려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양력으로는 2월 4일 무렵에 오는 입춘은, 음력으로 보면 섣달, 곧 12월이나 다음 해 정월, 곧 1월에 들기도 한다. 그러기에 때로는 음력설과 연달아 오기도 한다. 올해는 설 지나고 바로 사흘 후 입춘이니 올해가 그런 해이기도 하다. 예전에 설 바로 다음에 입춘이 오자 이렇게 읊은 분이 있다.​

 

설날 바로 다음날 찾아온 입춘 / 元日纔經一日來

이제 바야흐로 봄이 돌아오는구나 / 立春方是得春廻

초화 잠깐 피자마자 얼어붙고 말았는데 / 椒花乍破嚴凝逼

매화며 버들이며 앞다투어 피어나리 / 梅柳行看次第催

                                   ....... 장유(張維), ‘입춘날에 짓다[立春日作]​’

 

입춘이 되면 우리는 입춘방을 붙인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立春大吉 建陽多慶)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합니다.​

 

부모천년수 자손만대영 (父母千年壽 子孫萬代榮)

부모는 천년을 장수하시고 자식은 만대까지 번영하라.​

 

수여산 부여해 (壽如山 富如海)

산처럼 오래 살고 바다처럼 재물이 쌓여라.​

 

아침마다 산책 겸 운동 겸 오르내리는 둘레길 작은 쉼터 앞에 시를 담은 판이 하나 서 있다. 무심코 지나다가 어느 날 들여다보니 김종해 시인의 '그대 앞에 봄이 있다'라는 시였다. 입춘이라고 해서 다시 읽어 보았다.

 

 

그대 앞에 봄이 있다​

 

우리 살아가는 일 속에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이

어디 한두 번이랴​

 

그런 날은 조용히 닻을 내리고

오늘 일을 잠시라도

낮은 곳에 묻어 두어야 한다​

 

우리 사랑하는 일 또한 그 같아서

파도치는 날 바람 부는 날은

높은 파도를 타지 않고

낮게 밀물져야 한다​

 

사랑하는 이여

상처받지 않은 사랑이 어디 있으랴

추운 겨울 다 지내고

꽃필 차례가 바로 그대 앞에 있다

 

 

우리의 입춘은 아직 춥다. 아니 뜨겁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거기에 마음을 쏟을 일이 아니다. 정치는 정치, 그보다는 우리 개개인의 마음이 봄을 맞아야 한다. 차가운 겨울은 이웃과 담을 쌓는 계절이다. 그 담을 허물고 이웃과 마음을 터야 한다. 정치인들이야 권력을 잡기 위해, 선거에 이기기 위해 서로 상대방을 누르고 때로는 거짓인 줄 알면서도 공약을 내세우며 자신이 이기려 하겠지만 우리가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면 우리들의 마음은 늘 차가운 겨울에 갇히게 된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따뜻한 봄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 ​그리해서 우리가 정말 좋은 나라에서 좋은 미래를 함께 열어가는 기쁨을 나눌 수 있을까?​

 

입춘은 하늘이 봄을 열어주는 날이다. 이미 설날은 지났다. 코로나 때문에 못 만나다가 설이라고 조금 풀어준 것을 이용해 겨우 부모님께 인사는 드렸지만 충분하지 않다. 결국은 우리가 마음의 봄을 맞이해야 한다. 우리에게 봄을 가져다줄 사람은 누구인가? 우리나라의 평안은 누가 빌어줄 것인가? 그 사람은 외부가 아니라, 정치인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이웃에게 따뜻한 마을을 열어줄 우리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