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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벗어야 보이는 것들

박수근 화백의 눈과 마음으로 그려진, 잎이 떨어진 나목들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34]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따따따따따...."

나무기둥을 때리는 부리의 강한 음이 연달아 들린다. 딱따구리가 작업을 하는 소리다. 높은 나무의 굵은 줄기를 때리는 소리는 나무 사이에서 공명을 일으키며 아침을 걷는 우리 같은 산책객들에게는 귀속의 귀지를 파내어주는 듯한 시원함을 안겨준다. 그런데 앗 오늘 아침에는 가까운 나무줄기에서 두 마리가 같이 날아오른다. 목 뒤와 꼬리 밑으로 빨간색이 보인다. 오색딱따구리인 것이다. 딱따구리는 대개는 혼자 있는 것이 보이는데 둘이 같이 날아올라 희롱을 하는 광경은 처음이다. 곧 봄이 온다는 소리인가?​

 

머리 뒤쪽으로 까치 소리도 들린다. 올려다보니 아주 높은 나무 끝에 둥지가 보인다. 몇 그루 나무를 지나자 또 둥지가 높이 달려 있다. 까치둥지들이 몇 개나 있고 이들이 높은 피치로 우는 소리가 이어지는 것이다. 까치만이 아니라 가끔은 작은 새들이 정말로 높은 톤으로 울기도 한다. 그런 날이면 이 일대가 새들의 낙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그동안 이곳을 거의 매일 지나면서도 잘 보이지 않던 까치둥지들이 오늘 아침엔 잘 보인다. 그것이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겨울이기에 보이는 것이리라. 여름에 나뭇가지마다 잎들이 짙은 녹음을 이루고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이, 이렇게 봄이 오는 길목의 벗은 나무들 사이에서 보이는구나.​

 

그렇게 느끼고 주위를 다시 보니 나뭇가지와 줄기들의 각양각색의 자태가 눈에 들어온다. 쭉 뻗은 나무, 꼬부라진 기둥, 오글오글한 가지들, 한번 휘었다가 다시 올라가는 나무 등등…. 그동안 잎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나무들의 진정한 몸체, 실체가 보이는 것이다. 아무리 북한산자락이라고 해도 이제 웬만한 높이까지는 모두 인간들의 손을 타서 숲이 많이 줄어들었지만, 그 숲속에서 이런 여러 나무들이 살고 있었구나. 진정 잎이 많이 달린 여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다.

 

중국의 도연명은 "겨울 산마루에는 외로운 소나무가 빼어나구나(東嶺秀孤松)"라고 했다는데, 여름에 온갖 나무들에 가려 보이지 않던 소나무가 겨울이 되니 홀로 푸르러 아름답게 보인다는 뜻이라면, 결국엔 나뭇잎이 떨어져 눈을 가리는 엄폐물들이 없어지니까 비로소 본체가 드러난다는 말에 다름아니다.

 

 

나무가 그렇고 숲이 그렇듯이 사람도 몸을 휘감고 있던 요란한, 번쩍이는 의상들을 벗을 때에 그 사람의 본래의 면모가 드러나고, 나라의 정치도 정권이 바뀔 때가 되니 그 본 보습을 볼 수 있는 것이리라.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지방 자치단체의 책임자들을 뽑는 선거철이 되니 그동안의 모든 정치의 득실이 그러나게 되는 것이니, 어찌 보면 자연에 사시사철이 있고 그 중의 겨울이 그렇게 눈을 가리던 온갖 장식들을 벗어버리게 하듯이 나라의 정치도 선거라는 행위는 곧 그 정치의 본 면목을 보여주고. 그 성과를 알게 하는 중요한 섭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요즘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를 보다 보면 후보 사이에 상대방이 옷 속에 감추었던 몸이 아름답지 않다고 비판도 하고 자신들이 새로 입힐 옷이 더 아름답고 좋다고 자랑을 하는 것이 너무 요란한 것 같아 정신이 없어진다. 그러다 보니 본래의 모습이 가려지고 그동안의 잘못이나 공적, 성과는 다 잊히고 그저 새로 입혀줄 옷의 현란한 아름다움에만 눈이 돌아가는 지경이 되어가는 느낌이다.

 

그러나 새 옷을 입으려면 과거의 옷이 얼마나 제대로 그 사람을 아름답게 했는지, 그 옷이 몸에 맞았는지를 확인하고 새 옷을 입어야 하는 것이라면, 정치가들이 그저 이런저런 아름다운 옷을 입혀질 것이라고 약속하는 데에 눈이 팔려, 그 옷을 사는데 돈이 충분한지도 보지 않고 무작정 침을 흘리도록 한다면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

 

자연에 사시사철이 있고 겨울이 있는 것은, 한 해 동안 자랐던 나뭇잎을 일단 떨쳐버리고 나무들이 잘 자랐는지를 점검한 후에 새로운 옷을 만들어 입으라는 자연의 엄숙한 명령이고, 그리 해야 새로 맞는 봄에 더 아름다운 옷을 입을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겨울의 산길에서 우리는 정치도 다시 보게 된다. 정치도 계절의 변화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나고 자라고 거두고 다시 새 기운으로 태어나는 순환의 법칙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잎이 다 지고 벌거벗은 나무줄기와 가지들이 보이고, 무성한 잎에 가려져 묻혀 있던 새 둥지들이 보이고, 새들이 지저귀고 날아다니는 모습을 눈으로 보면서 결국엔 우리의 삶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정치가 과거의 철저한 점검과 반성 아래 새로운 잎들을 만들어내 더 아름답고 편한 옷으로 세상을 장식해주기를 소망해보는 것이다.

 

 

마침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는 3월 1일까지 박수근 화백의 중요한 작품과 그 제작과정들을 볼 수 있는 대형전시인 "박수근, 봄을 기다리는 나목"전이 열리고 있다.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박수근 화백의 눈과 마음으로 그려진, 잎이 떨어진 나목들을 통해 그 시대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다 보면, 아마도 정치의 의미까지도 알 수 있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