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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이어령 장관님 기어코 가시렵니까?

언제까지나 우리 한국인들의 등불이 되어주소서​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37]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이어령 장관님!​

 

기어코 가십니까?

 

 

몇 년 전 암 선고를 받고도 남들 다 하는 방사선 치료, 항암치료를 하지 않으시고 담담히 암과 더불어 살아오시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더 많은 삶의 생각과 이야기를 해주시며 의연한 지성의 길을 보여주시기에 그래도 한참을 우리 곁에 더 있을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황망히 우리 곁은 떠나십니까?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뀌었을 때도 또 꽃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 비로소 꽃이 보인다”라고 하시면서 왜 곧 피는 꽃을 마다하시고 먼 길을 떠나시는 것입니까?

 

청천벽력의 소식에 장관님이 아껴주시던 이태행 전 새천년준비위원회 기획운영본부장과 작곡가 김수철 씨, 그리고 제가 빈소에 달려가 “어서들 오세요!”라고 해주시는 장관님의 부드러운 목소리를 기대했는데 장관님은 국화꽃 뒤에서 말없이 내려다보시며 반갑다는 웃음만 보이시는군요.

 

해가 바뀌고 처음인 만큼 세배하는 기분으로 털썩 엎드려 절을 하고 싶었지만, 하느님께 귀의하신 분이시라 국화꽃 한 송이로 저희는 마음을 전하면서 3년 전 봄에 장관님이 우리 3명에게 맛있는 점심과 함께 격려해주신 다음 곧 다시 모시겠다고 한 약조를 지키지 못한 불민함에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우리 앞에 생과 사를 가르는 강이 흐르고 장관님은 그 강을 건너 점점 멀리 가시려 하는군요.​

 

1990년 초대 문화부 장관으로 뵈면서 ‘참으로 학자이며 교수란 분이 문화행정도 이렇게 잘 할 수 있구나’ 하며 감탄을 하고 많이 배웠지만 사실 그 전 60년대부터 장관님은 당시 자신이 누구인지도 몰라 방황하던 우리 한국인들에게 자신을 바로 보고 그 속에서 미래를 열어갈 정신적인 자부심과 힘을 찾으라고 말씀해주심으로서 우리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큰 감동과 힘을 주셨지요.​

 

이미 20대 청년 시절에 벌써 지도에도 없는 시골길, 황토길 속에서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천 년을 살아온 지혜와 의지를 찾아내고 그 흙과 바람 속에서 우리의 비밀, 우리의 마음을 읽으신 것은 참으로 우리 민족에게는 캄캄한 어둠 속의 한 줄기 밝은 빛이었습니다.

 

저 어두 역사, 부조리한 사회구조, 외세에 짓밟히고 권력자에게 시달리고 가난에 쪼들리며 살아온 우리들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고통과 서러움과 원한들을 한숨으로 풀고, 노래로 풀고, 어깨춤으로 풀어낸 지혜를 드러내 주신 것입니다. 나중에 문화부를 맡으셨을 때 장관님은 우리 민족의 흥과 신명을 크게 키워주심으로서 마침내 경제를 일으키고 문화와 예술, 그 가운데 음악, 무용, 민속 등에서 우리가 21세기를 뒤흔드는 신명의 민족으로 자라도록 일찍 그 싹을 틔워 주셨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빈 벌판에 집을 세우러 가는 목수다. 목수가 자기가 지은 집에서 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문화부의 네 기둥을 다 세워놓고 나는 떠난다. 그때 정말, 이 집 주인이 올 것이다."​

 

라고 하신 취임사 그대로 당신은 문화부의 각 부문의 예산을 크게 확충해 창작예술인들의 지원을 대폭 늘렸고 국립국어연구원을 받아서 어문정책을 교육이 아닌 생활 문화 차원에서 접근하도록 했습니다. 어려운 한자어나 외래어 투의 어휘들을 쉬운 우리말로 절묘하게 바꾸어주었으며 예술종합학교 설립을 준비해 퇴임하는 날 국무회의에 전격적으로 올려 통과되도록 해서 오늘날 우리 예술의 수준이 크게 올랐습니다. 그러기에 역대 문화부 출입 기자들이나 전직 공무원들이 항상 장관님을 최고의 멋진 문화부 장관으로 꼽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지요.

 

문학평론가인 김윤식 서울대 명예교수는 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이어령은 네 번 세상을 놀라게 했다. 20대엔 <저항의 문학>으로 한국 문단을, 30대엔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로 한국인을, 40대엔 <축소지향의 일본인>으로 일본인을, 50대엔 서울올림픽 문화 기획자로 세계인을“​

 

이 말에서 기억납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때에 그 큰 운동장 한쪽에서 여섯 살 소년이 굴렁쇠를 돌리며 나타나 운동장을 다 접수하는 장면, 그것은 곧 그때까지 세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우리 한국과 한국인의 미학과 정신세계를 세계에 알린 쾌거였고 그 창조적 발상이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으로 이어진 것은 전설이 되었고요.​

 

장관님은 이 시대 지성을 대표하는 석학(碩學)이시고 평론가이고 언론인이고 교수이면서 서울올림픽과 월드컵 문화 축제, 새천년 준비위원장, 그리고 문화부 장관에 이르는 이 과정에서 놀라운 것은 매 영역에서 놀라운 ‘창조력’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장관님 글은 누구나 알고 있는 평범한 사실을 뒤집어,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장관님은 컴퓨터에서부터 인터넷, 홀로그램, 첨단 영상, 인공지능(AI), 알고리즘 등등 우리가 개념도 모르는 문명의 메카니즘을 누구보다도 먼저 공부하시고 그 응용을 보여주셨습니다.

 

비디오예술가인 백남준 씨를 단순한 예술가가 아니라 문명예언가 차원에서 그 의미를 일찍 파악하고 그 앞길을 열어 보이셨고 현대를 앞서가기 위한 많은 정신적인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백남준 씨를 위한 문화재단의 설립과 운영에도 많은 조언을 해주셨고 백남준 씨의 창조력을 살려야 한다고 역설하셨습니다.​

 

앞으로의 세계는 디지털만을 앞세운 정보화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 상생하는 디지로그 사회, 곧 ‘어금니로 씹는 디지털’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그 주장은 이후 본격 출시된 닌텐도와 아이폰의 성공, 한국에서의 먹방 컨텐츠의 흥행몰이로 여실히 증명된다고 사람들이 말합니다. 이처럼 장관님이 여러 다양한 분야에서 가장 먼저 실험하고 보여주신 그 창조력이 21세기 우리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되고 있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습니다. 과연 장관님은 100년에 한 번 날까 말까 한 자랑스러운 한국의 거인, 한국과 세계의 지성이십니다.

그러한 장관님이 왜 이리 서둘러 우리 곁을 떠나려 하십니까?

 

 

장관님은 젊으실 때 쓴 책(《떠도는 者의 우편번호》)에서 흔히들 죽음을 생의 끝에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생과 동시에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것이고, 죽음은 잘못된 삶을 깨우쳐주고 반성케 하는 좋은 교사라고 하셨는데, 당신께서는 우리의 삶이 잘못됐다고 말하려는 것인가요?

 

장관님은 이 시대를 이끌어 온 경제 패러다임 가운데서, 산업자본주의가 가진 병폐는 이미 오래전부터 드러나고 있었고 미국을 필두로 하는 금융자본주의 역시 2000년대 후반을 강타한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그 그늘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하셨지요. 그리고 앞으로의 경제 이념은 돈을 위한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상생을 위한 생명의 자본주의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처럼 돈의 굴레에 빠진 현대사회의 잘못을 지적하고 생명을 생각하는 새로운 사회로 가야 한다고 말씀하고 싶은 것인가요?​

 

말씀하시려는 뜻은 알지만 그렇다고 요즘 백 세 시대에 우리 곁에서 깜깜함에 갇혀 지성도 지혜도 없는 우리에게 더 많은 가르침을 주셔야지, 그렇게 가시면 어떻게 합니까?

 

장관님이 떠나시기 전에 하신 말씀을 되새겨봅니다.​

 

“땀 흘려서 산업주의 만들고, 피 흘려서 민주화를 했는데, 이제는 공감의 눈물을 흘리세요. 3대 액체 중에 가장 고결한, 남과 공감하는 눈물을 창조하세요. 한 사람의 힘이 참 크다는 것. 국가나, 남에게 의존하지 말고 나 혼자 하는, 당당한 나의 힘을 믿으세요. 그것이 80년을 살아 온 선배로서, 마지막 남기고 싶은 말입니다. 자신을 믿고 남이 아니라 나부터 바꿔 가세요.”

 

그렇습니다.​

 

장관님이 하늘나라에서 먼저 간 이민아 목사를 보고 싶으신 게죠?

그렇다면 말리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장관님이 그렇게 가시니 당신이 알려주신 길을 찾아가 보겠습니다.

당신의 지성으로 이 시대의 부조리를 이겨내겠습니다.

당신이 붙여준 불씨를 키워 21세기 우리 한국인들의 길을 밝히겠습니다.

 

​우리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넓고 푸른 바다가 보인다.

미래에 태어날 우리의 아들

우리의 손자들을 위하여

이 바다로 가는

튼튼한 배를 만들어주자.​

 

외로운 산길을 걷던 소금장수여!

이제는 저 넓은 바다에

길을 만들거라.

밤길을 걷던 그 용기로

저 사막과 낯선 도시의

등불을 찾아 가거라.​

 

... 《한국인이여, 한국을 이야기하자》

 

 

이어령 장관님 고맙습니다.

가시더라도 아주 우리를 잊지는 말아주십시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 영감을 주시고

지성을 깨우쳐주십시오.​

 

언제까지나 우리 한국인들의 등불이 되어주소서​

 

                    2022년 2월 28일

 

                       이동식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