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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책의 꿈은 ‘책 드림(Book Gift)’

유네스코, 자녀들에게 책을 읽어주어라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4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서기 303년 4월 23일 지금 이스라엘 텔아비브 근처인 리다(Lydda)라는 작은 마을의 한복판에서 조지(George)라는 이름의 한 청년이 처형된다. 로마군인이기도 한 조지는 기독교신앙을 갖게 되었는데 당시 로마황제인 디오클레시안(Diocletian)이 기독교인들을 소탕하라는 명령을 내림에 따라 붙잡혀서 신(神)을 버릴 것을 강요받았으나 거부함으로써 공개적으로 처형된 것이다.

 

 

그런데 그로부터 800년 가까이 지난 12세기부터 이 청년은 용감함의 상징으로 다시 태어나 사람들이 그를 숭배하기 시작했고 1350년에 영국의 조지3세는 영국사람도 아니고 영국에 와 본 적도 없는 이 청년이 용을 죽이고 미녀를 구한 전설을 살려 최고의 훈장인 가터대훈장을 만들어 수여하는 등 그의 인기를 이용해 기사도를 살리고 신하들의 충성을 북돋아 주었다. 그의 무덤에서 장미꽃이 피어났다는 전설도 생겨났다. 이후 사람들은 이날에 가슴에 붉은 장미를 꽂아 용감한 조지 성인을 기렸다.

 

특이하게도 스페인의 카탈로니아 지방에서도 조지 수호성인을 기리는데, 조지 성인이 죽은 날이 되면 여자들이 남자들에게 책을 선물하고 이에 대해 책을 받는 남자는 장미꽃을 대신 선물로 주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영국이 자랑하는 극작가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생일과 죽은 날과 같은 것으로 유명한데 그 날짜가 4월 23일이다.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도 이날에 죽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영국에서는 이날을 기념하는 몇 가지 행사들이 이어져 오고 있다. 4월 23일이 그런 복합적인 의미가 있는 날인데 이날을 관통하는 열쇠말(키워드)은 책이었다.

 

 

국제출판인협회(International Publishers Association: IPA)는 스페인에서 책을 선물로 주는 개념을 활용해 스페인 정부를 통해 유네스코에 '책의 날'을 제안한다. 한편 러시안공화국에서는 '저작권'의 중요성을 유엔이 널리 알리자는 청원을 올린다. 이에 1995년 열린 28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이 두 개념을 합쳐서 매년 4월 23일을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로 제정하였다.​

 

유네스코 총회는 역사적으로 인류의 지식을 전달하고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보존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해온 책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도서의 보급이 직접적인 독자뿐 아니라, 문화적 전통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발전시키고 이해, 관용, 대화를 기초로 한 사람들의 행동을 고무시킨다는 점을 인정하여 책의 날을 제정하고, 이날을 기념한 도서전과 같은 행사를 여는 것이 책을 보급하고 증진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임을 깨닫고, 현재까지 국제적으로 책의 날을 제정하지 않았음을 인식하여, 4월 23일을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로 제정한다.

                              -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제정을 위한 결의안 (제28차 유네스코 총회)​

 

우리나라에서도 2012년을 '독서의 해'로 정하고 책으로 행복한 마음을 전하는 책 선물 문화 정착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공모를 통해 세계 책의 날의 애칭을 '책 드림 날'로 정했다. '책 드림'은 ‘책을 드린다’라는 뜻과 영어 ‘Dream’으로 ‘책에서 꿈과 소망, 희망을 찾는다’라는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한다. 멋진 이름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이날이 'World Book and Copyright Day'라는 영어이름에서 보듯 단순히 책을 사랑하자는 날에 머물지 않고 저작권 제도를 통해 지적소유권을 보호하는 국제적인 노력을 기울이자는 뜻도 강한 만큼 세계 각국은 이 기념일에 독서와 저술, 그리고 이와 밀접히 연관된 저작권의 증진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여러 행사들을 펼치고 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책은 과거와 미래를 이어주는 사다리며 세대 사이의, 나라와 문화 사이를 이어주는 다리다. 그러므로 더욱 좋은 책을 많이 펴내고 그것을 팔고 그것을 소비함으로써 더 좋은 책들이 우리 생활을 풍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모든 나라에서 추구하는 값어치일 것이다.

 

 

더구나 최근 코로나19 같은 강력한 돌림병으로 우리가 집안에 갇혀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책의 효용이 다시 입증되었다고 할 수 있다. 책은 책 속에서 사람을 만나게 하고 생각의 폭을 넓히고 멋진 세계를 경험하게 함으로써 우리가 그동안 밖에 다니지 못하는 데 따른 고립감, 우울증을 극복하는데 적지 않은 이바지를 했다. 필자도 집에서 한동안 텔레비전이나 영화, 영상물을 통해 무료한 시간을 달래곤 했지만, 곧 그게 그거라는 생각에 다시 책으로 들어간 시간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그러기에 이번 주말로 다가온 세계 책의 날에 관심이 생기고 책의 효용이나 미래에 대해서도 궁금해지는 것이리라.

 

사실 책은 세대를 이어주는 가장 좋은 수단인데도 우리는 그동안 우리의 자녀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간을 내지 못했다. 자녀가 장성해서 손주들이 집으로 찾아오는데도 그 습관이 안 들어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 손주들에게 제대로 못 해준 것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것도 바로 그런 까닭 때문이다. 세계 책의 날을 정한 유네스코에서 특히 강조하는 것은 자녀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책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그들이 더 많은 책을 읽도록 이끌려면 어른들이 책을 읽어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주변에 도서관이 많이 생기고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도 늘어나는 것은 다행한 일이기는 한데 가장 우려가 되는 것은 책이 점점 그 속의 내용물을 읽는 저장고가 아니라 마치 벽의 장식용 소품이 되어가는 현상이다. 서울의 시청 등에 마련된 공공도서관이나 책방들, 또는 평생 지식인들이 소장했던 도서를 기증받아주는 곳 등등에 가보면 책장을 짜서 책을 넣어야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하겠지만 사람 키도 닿지 않는 까마득히 높은 곳까지 책을 넣어두어 도대체 어떤 책들이 있는지 알 수 없게 한다는 것이다.

 

책이라는 것이,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사람들은 목록을 보고 미리 내용을 검색해 찾지만, 일반 시민들은 손이 닿는 책장에 꽂혀있는 책들을 손으로 만지고 페이지를 넘겨 그 글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를 보는 것이 기본일 텐데, 시각적으로 멋지게만 보이기 위해 사람 키 몇 배나 되게 쌓아놓고 거기에 책을 둔다면 결국 그런 책은 아무 의미나 필요가 없다는 뜻이 되니 대량으로 폐기장으로 들어가서 소각될 운명을 암시하는 듯하다. 책이 살아나려면 손에 닿는 곳에 책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튼 평소에 책을 가까이하지 않던 자신을 반성하며 이번 주말에는 모두 자녀나 손주들의 손을 잡고 도서관이나 책방에서 하는 강연회도 참석하고 책장에 같이 가서 책을 사서 선물로 주는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나라 전역에서 펼쳐지기를 소망해본다. 그게 곧 책의 드림이 아니겠는가? 모든 책의 꿈은 좋은 주인을 만나 사랑을 받는 것이라면 책을 선물로 드리는 것이야말로 책의 드림(Dream)을 이뤄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